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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드백프로 Dec 12. 2022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프로 아싸 직장러 관점에서 본 직장인 이야기

"자, 주목! 다시 말하지만, 이 문장이 가지는 중요성은 또 말해도 부족하다. 혹시 이해가 되지 않은 친구들이 있으면 꼭 질문해주기 바란다. 궁금하거나 이해가 안 되는 사람 손!"


선생님의 말씀에 교실 안은 마치 '아침고요 수목원'이 된 듯 조용해진다.


"그래.. 다들 이야기 안 하는 걸 보니, 다 이해했나 보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자체'모르는 걸 인정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 대 부끄럽게 여기고, 또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모르는 문제가 있어 선생님께 질문을 할 때, 그 질문으로 인해 혹여 수업 시간을 길게 만들어 여러 친구들(특히 일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눈치를 봤었고, 또 그걸 묻자고 교무실로 가는 것도 뭐랄까... 애매모호했었다.


("I형"인 내가 찾은 해결책은, 반에서 공부를 매우 잘하면서 남에게 알려주기를 좋아하는 '현인'과 같은 친구를 찾아, 물어보는 것이었다.)


회사 생활도 학교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선배가 알려주는 업무 지식에 대해서 놓친 것이 있어도 신입은 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스펀지처럼 업무 지식을 쑥쑥 빨아들이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스리슬쩍 아는 척하고 넘어갔다가 뒤에서 곤욕 치른 적도 있다.


상품의 기획, 요금제 출시 등 마케터 업무가 하고 싶어 과장 3년 차에 힘들게 옮겼던 새로운 부서에서는 후배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모닝커피를 사드리기 위해 메신저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맛있는 점심 또는 저녁 자리에서 만나는 좋은 후배님들과 쌓인 유대감이 있어 겨우 가능했다. 하지만 한 번 물어본 것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당시 약 회사 10년 차인 내가 또 물어보기에는 나 스스로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또, 물어보아야만 했다. 물어보지 않으면 일 진행 자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아는 척의 문제점


실제로 내가 겪었던 일이다. 앞서 언급한 새로운 부서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업무는 물론, 대내외의 많은 기관과 부서의 이해관계 속에서 쉴 새 없이 일을 하는 것(+그 외의 힘든 이야기는 하나씩 풀어가겠다.)에 지친 나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원래 있던 부서로 돌아간다고 손을 들었다.


익숙한 일을 하면서 육신을 위로하던 어느 날, 상무님께서 우리 팀 근처로 오셔서는 내가 이전 부서에서 만들고 온 제도에 대한 문의를 하셨다.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아는 내용이기도 해서 '조금 있다가 답변은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순간...

상무님, 그거 제가 아는데요


불쑥 등장한 K는 유창한 입담으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제도는 ㅇㅇㅇ 때문에 시작이 되었고, 이런 기준에서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됩니다. 지금 궁금하시는 ㅇㅇㅇ 부분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희 실적에는 이러이러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척 모니터를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자세히 귀담아듣던 나는,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 백 개가 떠올랐다.


'어떻게 그렇게, 교묘하게 하나도 맞지 않은 이야기를 저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관련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아.. 저런 거구나 하고 믿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건 내가 유일하게 이전 부서에서 일다운 일을 한 것이었고, 3년 이상 대외기관과 개발부서를 통해 매뉴얼까지 다 제작해놓았던 것이기에, '모조리' 틀린 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 있게 답변을 하면, 맞고 틀리고의 검증 없이 질문하는 사람의 궁금증은 대부분 풀리기 마련이고, 느~~응력 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오히려 자세히 알아보고 말씀드리겠책임감(?) 가득한 말은 '이 녀석 이것도 모르는 구만'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책자/관리자가 틀린 데이터를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아는 척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리고 아는 척하는 사람은, 본인이 잘 모르는 문제일지라도 일단 답변을 해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오판으로 인해 쉽게 평지로 갈 길을 지나치고, 형세가 험한 산속 길로 전 직원들이 올라가게 되는 일도 있다. 힘을 가진 분 주위에서 끊임없이 오답을 던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인정을 받는 일을 보면서, 묵묵히 뒤에서 백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허탈함은 더욱 커져만 간다.




내가 지독하게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프로 오답러들에게는 내가 모르는 특별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아, 물론 나처럼 지나치게 자신 없게 이야기하는 모습도 문제가 많긴 하다. ㅎㅎㅎ


그렇지만 "모르는 것을 어설프게 안다고 말함으로 인해 전체가 힘들어지는 일들"은 최소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답과 오답을 걸러 낼 줄 알고, 팩트 체크를 챙겨서 하는, 스마트한 리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 이건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힌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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