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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꺾자 Dec 01. 2023

그 사람이 시작한 단주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단주 600일 기념

일 년에 두 번 정도 "반차"를 내고 낮부터 만나 식도락을 즐겨왔던 애정 하는 모임이 있다. 11월 진행된 모임에서 어김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야, 드백이 너 아직까지 술 안 먹어? 징하다 징해. 나는 담배는 끊어도 도저히 술은 못 끊겠던데, 무슨 낙으로 사는 거냐? 참 너도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다, 나는 신기하게도 여전히 단주 중이다. 약 85주간을 단주하면서 내가 들었던 단 하나의 생각은


나는 단주와 참 잘 맞는다는 것이다.


단주 후 85주간의 일을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단주하는 것에 더 도움을 주고 스스로를 공부하게 만들었던 브런치와의 만남, 아침마다 브런치 글을 쓰는 재미에 들려 한 시간씩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시간, 늘 말로만 떠들었던 심리상담사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끝에 덜컥 시작해버린 방송통신대 3학년 편입까지... 내 의지력은 무한하다는 착각에 빠져 동서남북으로 분주하게도 다녔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었고, 중간고사와 출석 수업까지 모두 해놓고는 1학기 기말고사를 목전에 두고 학교 자체를 드롭해 버렸었다. 이후 급속도로 떨어진 에너지 때문에 칼퇴 하면 침대와 일심동체가 되었던 길고 지루한 시간, 의미 없는 유튜브 시청과 게임만 하며 부인님과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컸던 시절을 보내며 소진된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보충했고, 한두 달 전인 최근에서야 새롭게 잡은 목표를 통해 '슬로 스타터'인 내 체질에 맞게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단주를 시작한 지 600일이 돌파한 기념으로, 드백이가 느낀 단주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드라마'에나 있다.


술을 끊는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도파민을 촉발했던 물질이 없어지면서 약간의 공허함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미 파괴된 해마 세포'도 술을 끊었다고 해서 "마블 코믹스의 울버린"처럼 무한하진 않아서,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게 기적처럼 회복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활적인 면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  2,3시간이 걸려 부인님을 비롯한 가족의 속을 썩인다거나, 다음날 숙취로 인해 약국에서 숙취해소제를 사 먹는다거나, 심할 경우 쾌속 회복을 위해 내과를 방문해서 링거를 맞는다거나... '제정신이면 이렇게 했을 것인데, 왜 나는 그때 그랬을까'라며, 이불킥을 한다든지의 일은 내 인생에서 싸악 사라졌다.


그리고 술자리 자체가 많이 줄었다. 지금도 애정 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것은 여전하지만, 한 달에 술자리가 포함된 약속은 평균 2회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 개인 시간이 크게 증가하였다. 예전엔 '오늘 뭐 술 마실 곳 없을까?'라며 두리번거리는 일도 있었고, 특히나 저녁 약속이 생겼다가 취소되면 그날은 이상하게 오기가 발동해서 어떻게든 술 약속을 만들고 말리라..라며 사방에 전화를 돌리며 시간을 낭비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취소가 되더라도 '음, 그렇군. 오늘 집에 가서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할 수 있겠다'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조속히 집으로 돌아간다.


과욕으로 인한 방전과 재충전의 시간


단주를 하고 브런치를 시작해서 무엇인가에 홀린 듯 하루 한 시간 이상은 글 쓰는 데에 몰입하면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었다. 글을 쓰니 여러모로 이해도가 높아져가며 회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생활 효율이 매우 높아져갔다. 물론 그렇게만 계속되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지만, 인간은 늘 실수를 반복하며 배우는 것이기에 '무리한 계획'을 짜고, 그 모든 것을 해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다시 한번 바닥끝으로 떨어지는 일을 겪었었다.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하고, 여기저기에 내가 말한 다짐과 계획들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나서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찾아왔었다. 회사 출근을 제외 하고는 모임을 나가거나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등등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의미없이 핸드폰을 클릭하는 단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의식에 흐름에 따라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하루하루 늘어났다. 


이렇게 시간들을 호탕하게 쓴지 한 3개월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 정도 나의 "의지력"이 충전되었는지, 너무나 심심한 상태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진짜 이렇게만 지내도 되는걸까?'라는 의심이 들었었고, 다행히 모든 활동을 접으면서도 단 하나 접지 않았던 "독서모임(독하당)"을 위해 꾸역 꾸역 책을 읽어가던 어느 날,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며 다시 내 삶의 "의욕"이 돌아왔다. 아, 물론 위에서 말한 그로기 상태에서의 3개월 간의 독서 발제는 그간 읽어놓은 책으로 적당히 땜질했었다. ㅎㅎ


삶의 페이지를 다시 써가는 중입니다.


육체적 - 술을 끊은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돌아온 의욕을 잡고서 신중하게 생활을 하다 보니 '얼굴이 좋아졌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도 생각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쉽지가 않아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최근에 3가지 처방을 개인적으로 테스트해보는 중이다. 


1) 비타민 메가도스 - 물론 부작용과 체질에 따른 문제를 꼭 확인하고 진행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몸과 잘 맞아서 오늘로 46일째 시행 중인데, 평소 물속을 걸어가던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적어도 머리는 물 밖으로 나와있는 느낌이다. 2) 커피 끊기 - 이건 2주 정도 되었는데 '명현 현상'때문인지 최근 며칠간 수면 흐름이 매우 심각하게 나빴다. 하지만 모든 끊기가 그렇듯이 한두 달은 더 실행해 볼 예정이다. 3) 운동 - 맨몸 스쿼트 15회, 팔굽혀펴기 15회, 최소 3세트 반복하기와 지하철 탈 때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로 관리 중에 있다. 


정신적 - 삶의 목표가 명확해지고 있다. 아직 상세하게 말하기는 이른 시기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목표를 정하고 도움이 된 책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력"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고, 내 소중한 시간은 소중한 곳에 집중해서 쓰는 것을 계속 지켜 나갈 것이다. 


나에게 "단주를 해볼까요?"라고 묻는다면


그동안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술은 먹고 나서 누군가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고, 본인이 괜찮다면 굳이 술을 끊지 않을까? 다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드백이처럼 상태가 안 좋은 상황이 온다면 큰 고민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카톡에 디데이 설정을 한 뒤 '며칠간만 해보자'라고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새로운 습관 역시도 가볍게 시작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쌓이는 시간들을 보면서, 앞으로 술을 '절주'할지, '금주'할지, '단주'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자연스럽게 잡힐 것이다. 체질과 맞지 않은 술로 어디선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단주 600일 기념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치는 글 | 술이 유일한 낙인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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