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단주 콘텐츠 목차의 마지막 글을 쓰게 되었다.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참 오묘하다. 단주와 함께 생긴 수많은 변화를 돌이켜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단주를 추천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여전히 "아니요"이다.
나는 지금도 술을 좋아한다. 편의점에서 네 개에 11,000원인 캔맥주를 담을 때나, 해산물을 앞에 두고 소주 한 잔을 따를 때, 해외에서 사 온 수정방을 친애하는 지인들 앞에서 오픈할 때, 힘든 하루의 끝에서 하이볼을 만들기 위해 얼음 가득한 잔에 제임슨과 토닉워터를 따를 때의 그 행복함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나에게 한정하여, 나는 단주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단주 후에 오히려 늘어난 술자리에서 그간 내 주량에 비해 얼마나 많이 마셔왔는지에 대해, 동석한 지인들의 술 마시는 속도를 보며 새삼 깨달은 바도 있다. 술을 잘 마시는 체질로 태어났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하긴 그것은 내가 키가 180을 넘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과 별 다를 바가 없겠지) 그래도 이제라도 내가 술 체질이 아닌 것을 알고 단주를 하는 것은 참 행운이자, 다행인 일이다.
그리고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상으로 3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지인이 "술 마시기 전, 후"가 얼마나 달라지는 지를 봐왔던 나는, 자신의 최대 술 용량을 넘기며 무리하게 마실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또 새기고 새긴다. 술로 풀어지지 않는 것을 마치 술이 풀어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 시작이니, 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술이 유일한 낙인 당신에게 하고픈 말
미성년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본인의 술에 대해서 자유롭게 정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전혀 당신을 모르는 내가 술을 마셔라 마라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또는 가까운 이가 "술만이 유일한 낙이라면" 아래 이야기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유한다.
1. 살면서 무엇을 할 때가 기뻤던 가?
"네!"라고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지만, 다른 활동을 통한 행복과 보람을 느낀 사람이라면 "술"만이 유일한 낙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많은 경험을 권유하는 편이다. 비록 그 모든 것을 내 체험으로 풀어줄 수는 없다 할지라도, 행복은 생각보다 작은 것에 달려있고 그리 거창하지 않은 것이란 것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살면서 '나는 죽기 전에 이런 것을 꼭 해봐야 하지~'라는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혹여 버킷리스트가 이미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장 심장이 두근 거리는 일을 (적어도 도덕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번 달 안에 실행해 보기를 추천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함께 간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이야기는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적당하면 괜찮지만, 술을 먹어서 핑 도는 그 즐거움이 마치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함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면...
다른 행복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보다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65세 이상 인구 중 10%가 치매다. 65세 이상 중에는 우리의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고, 점점 나이를 들어가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내 친구 10명 중에 한 명은 치매라는 이야기이요, 그 친구는 나를 비롯한 가족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치매라는 질병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는 가까운 이들의 가족분들을 통해 느껴왔다. 그런데 그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면? (물론 치매의 원인이 다양하기에 술만이 원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마치 무단횡단처럼 죽음의 확률을 높이는 행동을 돈과 에너지를 써서 할 필요가 있을까? 는 생각해 볼 일이다.)
약 5,6년 전부터 치매인구가 10명 중에 한 명이니, 앞으로는 (이렇게 멀티태스킹이 심화되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머리가 멍~해지는 시대에) 10명 중에 3,4명 정도는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나는 내 지인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고 싶다. 죽기 전까지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다. 그러니 소중한 당신의 사람들을 당신의 기억에서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독이 당연시된 세상이다. 사실 술 중독이면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도 한다. 술보다 몇 배의 쾌락을 맛볼 수 있는 마약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것뿐인가? 각종 미디어의 범람과 자극적인 영상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것들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많은 중독을 겪어왔고, 지금도 몇몇 중독들은 없애지 못하고 함께 가는 중이다. 다만 심각한 중독은 없도록 스스로와 대화를 통해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일을 모두 다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브런치 작가 지원을 할 때 첫 다짐은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단주 중이다. 그리고 술 없이 여전히 잘 논다.
단주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나 도움이 될만한 분들이 있다면, 댓글이나 인스타 메시지로 남겨주시면 언제든 편히 알려드리겠다는 다짐을 하며, 본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