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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드백프로 Dec 01. 2022

헤어진 다음 날 (feat.꿈에)

단주 211일 차

술과 헤어지고 나서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 가지 않아 나에게도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왔다.


한 잔은 약이야


"치킨에 맥주 어때?"

스트레스가 쌓이면 치맥을 찾으시던 부장님의 간만의 호출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이후로도 몇 차례 호출이 있어 하루는 날을 잡고 술을 끊게 된 사정을 솔직 담백하게 말씀드렸다. 직원들의 건강을 우선시 하시는 부장님이셨기에 다행히도 이해해 주셨다.


그렇지만 지인들이 문제였다.

"야, 한 잔 해, 이건 약이야."

"아니, 내가 안마시기로 했다니깐?"

"에이, 니가 술을 어떻게 끊어."

저녁 자리에서 만난 친구들은, 처음에는 건강이 중요한 시기라며 술을 끊은 것을 칭찬까지 해주다가도 술에 취하자 슬슬 시비 아닌 시비를 걸어온다. (물론 친구랑 한 잔 하고 싶은 마음, 것도 이해는 된다.)


금연을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이 '지인들의 끊임없는 권유'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술에 관해서는 이상하게 단호했다. 내 사정을 솔직히 이야기 하면, 또 이해는 해준다. 그러다가도 술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딱 한 잔만 해~"라며 묻는다. 그렇다. 내가 술을 평소에 얼마나 좋아했는지, 술자리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아는 녀석들이기에 이해한다. 그러나 이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 한다.


나 단주 중이잖아. 일단 더 참아 볼께



나를 믿지 마세요


지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지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나 스스로 흔들리는 것이었다. 전두엽을 지나 깊숙이 존재하는 변연계 어디에선가에서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한 모금' 마신다고 무슨일이 생기겠어? 술 안마신다고 누가 상을 주니? 누가 알아봐 주기는 해?
 딱, 한 모금만 마셔봐~ 살짝 마시는 건 괜찮아~


그러다 일이 나고야 말았다.


변연계 쪽에 사는 드백이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 가던 날, 대학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갑자기 닥쳐온 감정적인 변화에 고민이 많았던 친구에게, 나 역시 여러 번의 감정 시소를 탔던 입장에서 녀석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해주고 싶었다. 백 마디 말 보다 한 가지 행동이 더욱 힘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 이 녀석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건, 함께 한 잔 마시는 것일 수 있어'라는 확신이 들어 말했다.


"친구야, 니가 다시 회복하는 날을 위해서, 내가 끊었던 술, 오늘 한 잔 한다. 나 내일부터 단주 1일차 새롭게 시작하는거야. 그러니깐, 힘내라 친구! 짠~! 한잔 해!" 그러고는 입에 술잔을 탁 털어넣었다.   


삶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친구에게, 나 역시 여러 번의 감정의 시소를 탔던 친구의 입장에서   행복할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힘들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나는, '그래, 이 녀석을 진심으로 위로 할 수 있는 , 함께 한 잔 하는 것일 수 있어' 라는 생각"자, 내가 너때문에 끊었던 술, 오늘 한 잔 한다. 짠~!" 이라고 외치고는 입에 술을 탁 털어 넣었다. 간만에 내 몸속으로 들어간 알콜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고,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마셔도, 마셔도 안 취하는게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단주의 효과였단 말인가??




그렇다.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결심한 단주가 끊어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술을 마신다는 핑계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나에게 박수와 존경을 표했다.


이후로도 잠재의식은 종종 나에게 현실에서 마실 수 없는 술을 마음껏 마시는 모습을 꿈속에서 보여주었다. 늘 패턴은 비슷했는데,  한 잔 들이키고 마구 괴로워한 후, '에라이, 이왕 마신거, 그래! 먹자~!!'라며 신나게 술을 마시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211일 동안 '5번' 정도 꿈을 꾸었으니, 약 '42일' 마다  한번 꼴로 꿈에 술이 나타났던 셈이다. '꿈에'라도 술을 마실 수 있음에 단주를 선언한 나는 감사했고, 다행히 지인과 나 스스로의 유혹을 잘 이겨냈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단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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