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 적응기 1탄 (부제: 술 없이 회)

단주 219일 차

by 피드백프로

술을 끊고 나서 가장 적응이 안 되던 것이 있었다. 지인을 만나 저녁을 먹거나,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 '술 없는 음식 먹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회를 참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회가 단연코 1위였다. 술을 좀 마셔보았다면, 소주에서 나오는 그 헛헛한 쓴 맛이 목구멍을 톡 스치고 난 뒤, 고추냉이와 간장을 살짝 묻힌 채 입속으로 직행하는 회 한 점이 얼마나 깊은 풍미를 주는지 알 것이다.


게다가 천성적으로 약한 소화기관 덕에 배가 부르면 쉽사리 지치는 체질이었던 터라, 술을 먹을 때면 고기보다는 회를 훨씬 더 선호했고, 나는 내가 진심으로 회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단주 후에 '회'가 심하게 당긴 금요일, 퇴근길에 동네 앞에 금요일마다 와있는 이동형 횟집(나는 이것을 회 트럭이라 부른다.)에서 싱싱한 광어와 우럭을 포장하여 집으로 향했다.


목욕재계 후 경건한 마음으로 사이다, 소주잔, 회, 재미있는 최신 TV 프로그램을 준비 한 뒤, 소주잔 가득 사이다를 부어 입속으로 털어 넣고는 '캬~'하는 소리와 함께 회 한 점을 씹기 시작했다.


'음, 역시 회 트럭 회가 참 신선하단 말이지. 음... (우걱우걱) 음.... (우걱우걱) 음??...'


이상했다. 분명 같은 집에서 샀던 회였고, 같은 모양으로 썰어져 있고, 씹는 질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뭔가 달랐다. 밍밍 하다고 해야 하나? 그 고유의 맛이 느껴지질 않았다.


이후 구선생님(https://www.google.com)에게 수차례 '술 없이 회'에 대해서 여쭤보았고, 여러 커뮤니티와 게시글에 적혀있는 '어떻게 해야 술 없이 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를 다각도로 실행하며,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단주 한지, 200일 즈음 지난 지금에서야 내린 결론은, "내가 좋아하던 맛은 회가 가진 본연의 맛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주의 시큼한 쓴 맛을 달래주는 '배부르지 않은' 회의 질감과 비린 맛의 조화를 좋아했던 것이었다. 그런 내가 회를 좋아한다고 이야길 했으니, 하, 나, 원, 참...


그래도 단주를 시작한 or 시작할 분들을 위해,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술 없이 회"를 먹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공유해 본다.


1. 음료를 적당하게 섭취할 수 있는 소주잔은 '필수'(음료 잔에 따랐더라도, 본인이 잘 분배해서 먹을 수 있다면 소주잔은 없어도 된다.)

2.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제로 사이다, 탄산수, 맹물" 중 하나를 골라 시원하게 소주잔에 따른다.

3. 고추냉이와 간장, 초고추장과 깻잎을 준비 한 뒤 두툼한 회 한 점을 입맛에 맛게 찍어 먹으면 된다.

4. 먹다가 회 맛이 식상하다 싶으면 따뜻한 밥을 뭉쳐 초밥으로 먹어도 되고, 상추 등 야채가 있으면 가위로 슥슥 잘라 회덮밥으로 먹어도 된다.

5. 입가심을 위한 컵라면이나, 매운탕도 함께 곁들이면 더 좋다.


'그게 일반적인 회를 먹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른 거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내가 내린 결론은 소주를 마시며 먹었던 회 맛에 대한 기대를 하루빨리 버리고, 회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내가 알고 있었던 회의 맛은, 쓴 약을 먹고 비명을 지르는 혀의 미각 세포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입에 넣는 사탕의 단 맛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회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길어졌다. 다음에는 단주 적응기 2탄으로, '술 없이 회식자리 즐기는 법'을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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