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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드백프로 Dec 08. 2022

단주 적응기 1탄 (부제: 술 없이 회)

단주 219일 차

술을 끊고 나서 가장 적응이 안 되던 것이 있었다. 지인을 만나 저녁을 먹거나,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 '술 없는 음식 먹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회를 참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회가 단연코 1위였다.  좀 마셔보았다면, 소주에서 나오는 그 헛헛한 쓴 맛이 목구멍을 스치고 난 뒤, 고추냉이와 간장을 살짝 묻힌 채 입속으로 직행하는 회 한 점이 얼마나 깊은 풍미를 주는지 알 것이다.


게다가 천성적으로 약한 소화기관 덕에 배가 부르면 쉽사리 지치는 체질이었던 터라, 술을 먹을 때면 고기보다는 회를 훨씬 더 선호했고, 나는 내가 진심으로 회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단주 후에 '회'가 심하게 당긴 금요일, 퇴근길에 동네 앞에 금요일마다 와있는 이동형 횟집(나는 이것을 회 트럭이라 부른다.)에서 싱싱한 광어와 우럭을 포장하여 집으로 향했다.


목욕재계 후 경건한 마음으로 사이다, 소주잔, 회, 재미있는 최신 TV 프로그램을 준비 한 뒤, 소주잔 가득 사이다를 부어 입속으로 털어 넣고는 '캬~'하는 소리와 함께 회 한 점을 씹기 시작했다.


'음, 역시 회 트럭 회가 참 신선하단 말이지. 음... (우걱우걱) 음.... (우걱우걱) 음??...'


이상했다. 분명 같은 집에서 샀던 회였고, 같은 모양으로 썰어져 있고, 씹는 질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뭔가 달랐다. 밍밍 하다고 해야 하나? 그 고유의 맛이 느껴지질 않았다.


이후 구선생님(https://www.google.com)에게 수차례 '술 없이 회'에 대해서 여쭤보았고, 여러 커뮤니티와 게시글에 적혀있는 '어떻게 해야 술 없이 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를 다각도로 실행하며,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단주 한지, 200일 즈음 지난 지금에서야 내린 결론은, "내가 좋아하던 맛은 회가 가진 본연의 맛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주의 시큼한 쓴 맛을 달래주는 '배부르지 않은' 회의 질감과 비린 맛의 조화를 좋아했던 것이었다. 런 내가 회를 좋아한다고 이야길 했으니, 하, 나, 원, 참...


그래도 단주를 시작or 시작할 분들을 위해,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술 없이 회"를 먹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공유해 본다. 


1. 음료를 적당하게 섭취할 수 있는 소주잔은 '필수'(음료 잔에 따랐더라도, 본인이 잘 분배해서 먹을 수 있다면 소주잔은 없어도 된다.)

2.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제로 사이다, 탄산수, 맹물" 중 하나를 골라 시원하게 소주잔에 따른다.

3. 고추냉이와 간장, 초고추장과 깻잎을 준비 한 뒤 두툼한 회 한 점을 입맛에 맛게 찍어 먹으면 된다.

4. 먹다가 회 맛이 식상하다 싶으면 따뜻한 밥을 뭉쳐 초밥으로 먹어도 되고, 상추 등 야채가 있으면 가위로 슥슥 잘라 회덮밥으로 먹어도 된다.

5. 입가심을 위한 컵라면이나, 매운탕도 함께 곁들이면 더 좋다.


'그게 일반적인 회를 먹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른 거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내가 내린 결론은 소주를 마시며 먹었던 회 맛에 대한 기대를 하루빨리 버리고, 회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내가 알고 있었던 회의 맛은, 쓴 약을 먹고 비명을 지르는 혀의 미각 세포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입에 넣는 사탕의 단 맛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회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길어졌다. 다음에는 단주 적응기 2탄으로, '술 없이 회식자리 즐기는 법'을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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