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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Nov 02. 2023

오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거야?"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동료 피엠이 불만을 토로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잖아요. 우리가 이해해요."

'니 말이 맞아' 추임새를 던졌지만, 저는 사실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양반이 왜 그러는지 짜증나지만 조금 이해가 갔거든요.


(두달 전, 오션 회의실 앞)

"어떻게 되었어요?"

회의실에서 팀장과 방금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P에게 물었습니다.

"된통 깨졌어요."

"왜요?"

"아시잖아요. 이 프로젝트 PLM(설계영역 관리)이랑 ERP(회사전체 자원관리) 영역이 같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고객이 기간을 길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리는 PLM 영역 컨설턴트를 먼저 투입하고 우리 ERP 영역은 몇 달 후에 들어가는 형태로 투입계획(인력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시기를 계획)을 만들었거든요. 그거 펴자마자 난리치잖아요. 정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타이밍이 안 좋으셨네. 지금 사무실에 노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러셨겠죠."


그 일이 있고나서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가 떴습니다. 규모가 천억이 넘는 메가톤급이었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 프로젝트로 쏠리고 사무실에서 유유자적하시던 형님들을 다 쓸어 갔습니다. 한참 그 프로젝트 제안이 진행되던 시점에 수면에 가라앉았던 P의 프로젝트도 수면 위로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P는 다시 팀장에게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제반 사항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오늘 그 회의가 있었던거죠.

P는 그 사이에 이 프로젝트에는 변경사항이 전혀 없었으니, 두 달전 팀장님의 지적을 반영해서 프로젝트 시작시점부터 ERP와 PLM을 같이 투입하는 형태로 보고를 한겁니다. 그랬더니 저번보다 더 험악한 말이 오간거죠. P는 변명을 합니다. 그때 그러시지 않았냐고? 그건 기름에 물을 붓는 격이었죠. 얼굴이 벌겋게 되어 당황한 P를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조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에게 조언을 받는 건 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일이 될 것 같아서죠.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그때는 우리 인력이 놀고 있었고,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 당장 다음 달에 컨설턴트를 투입하는 계획을 들고가면 팀장은 화가 나죠.'




상사가 싸이코라고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이런 시츄에이션입니다. 회의 할 때마다 말이 바뀐다고.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상황이 바뀐거고, 그걸 설명해줄 시간이나 정성이 모자라는 거라고. 회사일은 항상 바쁘고 윗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에 연루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그 전에 자기가 그 사안에 대해 했던 발언은 정말 잊기도 합니다. 그러고서는 지금 바뀐 오늘의 상황에 맞춰 의견을 제시하는거죠.

이런 사실을 알고나면 조금은 그 사람을 덜 미워하게 되더군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런 해석놀음도 나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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