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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y 19. 2015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구요?!

사춘기 아이의 마음에 다다르는 길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 2 때문이다!”


좌충우돌, 세상 어떤 나라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벼랑 끝 외교전술을 선보이는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집단이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격하게 공감했던 농담 아닌 농담입니다. 61만 명 정도의 중학생이 70만 명의 현역 군인의 역할을 대신 감당해준다니 고마워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으슥한 길거리에서 만나서 제일 무서워해야 할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생이 된지 오래라고도 합니다. 요즘 고등학생은 세상사 알 거 알고 자기 인생에 대해 걱정을 하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데, 중학생 아이들은 겁나는 것이 없어서 막무가내에다 사고도 무섭게 친다고 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면 욕과 은어가 뒤범벅되어 듣기조차 거북합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학교나 밖에서 큰 사고를 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닙니다. 무엇을 물어도 꾹 다문 입은 열리지 않고 툭하면 짜증을 냅니다. 조금만 뭐라고 하면 문을 꽝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이 왜 이리 들쑥날쑥 널뛰기를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울면서 하소연합니다. 폭풍 같은 감정 상태를 보이는 그들은 바로 중학교 2학년입니다. 초등학교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들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착하던 내 아이는 사라지고 새로 나타난 외계인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모처럼 가족들과 바람 쐬러 가자는 요청은 깔끔히 거부하고 친구들과 PC방이나 노래방 가는 것을 더 즐기는 사춘기 아이들. 아침에 엄마는 잠투정하는 아이를 깨워 학교 보내기에 바쁘고, 저녁에 아이들은 방문을 닫고 핸드폰만 들여다 봅니다.


내 품에 안겨 방실방실 웃는 갓난쟁이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장아장 걸으며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어린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미운 네 살과 더 미운 일곱 살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돌아보면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의 작은 고비였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말만 해도 좋겠다 싶던 때가 지나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단계도 지나서 어느새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 키웠구나 싶어서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십대에 접어들면 ‘악!’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 애가 정말 내가 십 년 넘게 키운 내 애가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도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 예전 우리 자랄 때랑 완전히 달라’입니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진 걸까요? 세상이 정말 달라졌다면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바뀐 아이들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본인들이 많이 컸다고 온 몸으로 주장해도 부모 눈으로 보면 아직 어설픈 것들 투성이 입니다. 부모는 해주고 싶은 말도 많고 나누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들과 어떻게 하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부모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잔소리일 뿐이며, 아이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로 끝없이 이야기 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더욱 질리게 할 뿐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아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식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하기가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본능이고 그것을 자제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엄마는 그저 살아있기만 하면 되는 존재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고 살아있기만 하는 것이 좋지, 자식을 위한다고 이것저것 자꾸 하지 말라는 것이죠. 아이를 위해서란 명목으로 행하는 수많은 부모의 간섭과 잔소리를 없애달라는 것입니다. ‘예쁜 엄마’, ‘멋진 엄마’, ‘바쁘고 쿨한 엄마’, ‘건강한 엄마’, ‘아파도 좋으니 곁에 있어주는 엄마’, 엄마에 대한 기대상이 이맇게 나이에 따라 변한다고 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상은 이 중 ‘멋진 엄마’ 내지는 ‘바쁘고 쿨한 엄마’랍니다. 반대로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라고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춘기 자녀들이 바라는 대로 멋지고 쿨한 엄마가 되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돕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사춘기 아이를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를 어긋나게 한 탓에, 정말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때에도 아이는 부모의 손길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잘 돕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열심히 도끼질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도끼날을 세워야 하듯이, 아이를 잘 도와주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부모 먼저 지쳐 떨어지고 맙니다.


또한 부모의 도움이 효과가 있으려면 자녀와의 관계가 좋아야만 합니다. 부모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조차도, 관계가 좋지 않은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 닿지 않습니다. 오로지 부모에게 반항하기 위해서 부모의 말 반대로 행동하기도 하는 것이 사춘기 청소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돕기 위해서는 우선 부모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행동요령을 안내해 줍니다. 비행기 내의 기압에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는데, 보호자는 자신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자신이 돌봐야할 아이나 노약자의 산소마스크를 씌우라고 합니다. 행복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를 돕기는커녕, 자신의 불행으로 아이들을 전염시킵니다.



뜬금없이 왜 청소년소설이냐고 묻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정말 바빠집니다. 학교시험과 수행평가 준비도 해야 하고 틈틈이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각종 대회에도 응시해야 합니다. 시험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학원에 갔다가 9시, 10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시험을 앞둔 주말에는 ‘10-10’(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학원에 있는 것)이란 것이 유행이랍니다. 정신없는 아이들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괜스리 부모의 마음도 바빠집니다. 늘 피곤해하는 내 아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다가도 ‘현실이…’라는 한 마디를 되씹으며 그런 마음을 접습니다. ‘기-승-전-공부’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모든 결론이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 로 끝난다는 의미입니다. ‘공부, 학원, 시험’, 이 세 가지를 제외한 주제로 자녀와 30분 이상 대화할 수 있다면 아이와의 관계는 성공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무릎 위에 앉혀놓고 읽었고, 자러가는 아이들은 꼭 엄마가 읽어줄 책을 골랐습니다. 졸다가 책을 떨어뜨린 적도 있지만 누워있는 두 아이 사이에서 책을 읽어주던 기억은 아직도 제 마음에 따스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이 커짐에 따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행복했던 시간도 점차 사라져갔습니다. 어느새 다 자란 아이들은 혼자서 책을 읽지만 아이들의 세상이 궁금한 저는 아이들 방을 기웃거립니다. 한 권, 두 권, 아이들 책상 위에서 발견한 책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읽던 책들과 많이 다릅니다. 어린이 명작동화, 세계명작소설을 읽던 부모 세대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각종 추천도서를 참 많이 찾았습니다. 좋은 책을 읽히고 싶어서 엄마들끼리 책정보도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춘기 아이들이 읽는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권해줄 만한 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믿을만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말고도 사춘기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부모들이 많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춘기 아이들의 세상으로 함께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겪고 있는 세계는 우리 부모들이 겪었던 세계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도 결코 만만한 세상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방황합니다. 그들의 고민은 어른들에게도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현대 청소년소설입니다. 국내외 여러 작가들이 열심히 그려낸 청소년소설들을 읽다보면 몇 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우리 아이들이 웃고 우는 십대들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이해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이 공감하는 그들의 이야기인 청소년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왕따, 학교폭력, 성적고민, 인터넷, 친구고민, 이성 친구, 진로, 외모, 가정불화 … 요즘 아이들의 고민이 모두 이 안에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을 통해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아이들과 진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게 된다면, 아이들도 부모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이들이 진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우리는 손을 내밀 수 있고 아이들도 기꺼이 그 손을 잡을 것입니다.


덤으로, 청소년 소설들 아주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읽기 시작하지만 부모가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으며 행복한 부모는 분명히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육아의 최고 의미라고 믿습니다.


p.s. 대상도서들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많이 빌려가고 선호하는 책 중에서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주로 청소년 소설 등 청소년 대상 산문집 위주로 함께 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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