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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y 19. 2015

인정, 우리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예요

까칠한 중학생이 재석이를 좋아하는 이유

“엄마, 재석이 시리즈 3권이 나왔데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호들갑을 떱니다. 엄청 재미있게 읽었던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의 재석이 시리즈 세 번째 책이 나왔다고 합니다. 벌써 대기자가 밀려서 자신이 열 번째 순서라고 아쉬워합니다. 학교 도서관 사서선생님께 물어보니, 학생들이 신간 발간 소식을 먼저 알려줘서 다섯 권을 주문해 놓았다고 합니다. 


‘완전 재미있다’, ‘개그다’, ‘재석이 짱이다!’ 

책을 읽은 아이들의 첫 반응입니다. 책을 펼치면 욕이나 은어가 날 것 그대로 툭툭 등장해서 살짝 놀라게 되지만 그렇다고 흥미 위주 책일 거라는 생각은 선입견입니다. 시리즈의 첫 책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는 2009년 출간 이래 매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아이들이 주인공인 책이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아이들만의 것은 아닙니다. 쉽게 표현되었을 뿐입니다. 작가가 창조해낸 생생한 캐릭터에 호응하며 깔깔대며 재미있게 읽고 난 후 마음에 남는 여운은 어른에게도 동일합니다. <까칠한 재석이>시리즈는 판매부수가 20만부 이상에다가 매년 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에 오르는 책입니다. 중학생 61만 명 중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사서 읽고 빌려서 읽었는지 짐작할 만하지요? 특히 책 안 읽기로 유명한 중학교 남학생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짐작하기 위해 책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고등학교 1학년 재석은 자신이 움직이면 복도에 가득 찼던 아이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비켜주는 맛을 은근히 즐기는 교내 폭력서클 ‘스톤’의 싸움꾼입니다. 입만 열면 욕설과 은어가 튀어나옵니다. 홀로 고생하는 엄마에겐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집을 나가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가득 찬 아이입니다. 당연히 공부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담임은 대놓고 그를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사고치지 말고 고등학교나 졸업하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는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춘기 아이들이 재석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부모에게 대들고 세상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고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에 짜증과 불만인 것이 중학생의 일상일지라도 그들 대부분은 재석의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폭력조직의 일원도 아니고 언제 반지하 셋방에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한 상황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편 사춘기 아이들에게 재석이가 처한 상황은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가정폭력, 부모의 불화와 이혼, 경제적 어려움,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 가난으로 인한 차별과 멸시, 학교 내 폭력조직과 패싸움 등은 모두 청소년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 속의 일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와 영웅 이야기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름답지만도, 어른들이 모두 훌륭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른들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 앞에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왔던 사람들에게 대들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우리도 알만큼 다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재석은 앞장서서 이렇게 외치는 사춘기 아이들의 대변인입니다. 


재석은 싸움꾼이지만 폭력배가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폭력배로 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어릴 때 부잣집 아이와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혼자만 혼나고 기합을 받은 후부터 재석은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주먹으로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불공정한 어른들이 개입하지 않는 세상에서 재석은 강자입니다. 어른들이 봤을 땐 문제아지만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캐릭터입니다. 재석의 라이벌이자 끊임없이 재석과 부딪치는 병규는 같은 폭력서클의 멤버지만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잔인한,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악역입니다. 그러나 의리에 죽고 사는 재석은 주먹을 쓸 때에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힘없는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멋진 녀석입니다. 알아주는 싸움꾼이지만 재석이가 때리는 아이는 같은 쌈꾼이거나 잘난 척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병규 같은 아이들입니다. 힘에 대한 동경이 강한 남자 아이들의 세계에서 이런 재석은 내가 한 명쯤 가지고 싶은 친구이자 동시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입만 열면 욕이고 불평불만이 가득했던 ‘까칠한’ 재석과 친구 민성은 어느 날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사회봉사를 하게 됩니다. 반신불수가 된 노인들을 보고 자신은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자살할 거라고 막말을 내뱉던 재석은 점차 변해갑니다. 작은 도움에 고마워하는 노인들, 장애가 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 자신보다 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주변의 상황만 탓하고 불평만 늘어놓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한 팔과 한쪽 다리에 의수와 의족을 하고도 삶에 강한 의지를 가진 부라퀴 영감님을 만나자, 재석의 마음은 크게 흔들립니다. 부라퀴 영감은 재석을 때로는 혼내고 때로는 감싸 안으며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그들을 이끌어갑니다. 자신의 자리보전에 급급한 ‘공무원 같은’ 담임, 휘황찬란한 언변을 앞세우는 꼰대 교장,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한 엄마... 재석의 주변에는 그동안 재석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앞날을 의논할 ‘어른’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걸 아 다는 것처럼, 이제 다 큰 것처럼 행동하던 재석과 민성이도 사실은 그들을 이끌어줄 멘토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은 부라퀴 영감을 만난 후에야 진짜 ‘어른’을 만났다고 느꼈습니다. 


마음이 움직이자 바로 실천하기 시작하는 재석은 너무도 멋진 녀석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읽어나고 약속을 꼭 지키고... 재석은 작은 습관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작지만 나쁜 습관부터 하나씩 스스로 고쳐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더 이상 문제아가 아닙니다. 작은 것부터 바로잡기 시작한 재석은 드디어 자신의 결핍을 힘과 폭력으로 채우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학을 가도 도망칠 수 없다는 폭력조직에서 탈퇴하기 위해 삼백 대를 맞겠다고 자원합니다. 기절할 정도로 맞고서 스톤에서 탈퇴하는 재석과 매를 나누어 맞겠다고 나선 친구 민성. 중학생 아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굴레를 스스로 깨고 나오는 재석과 아이들의 성장이 웃음과 함께 찡하게 전달됩니다. 


“사람은 항상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야 된단다. 어제 잘못한 거 오늘 고치고, 또 오늘 잘못한 건 내일 고치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게 인간이야.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 죽는 게 운명이란다.”       (115쪽)


대부분 아이들은 책의 저자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 책은 저자 고정욱님의 이야기를 빼놓으면 너무나 아쉽습니다. 아이가 재석을 좋아했다면 책 속의 부라퀴 영감처럼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온 작가의 이야기를 꼭 함께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재석이의 저자 고정욱님은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입니다. 의대에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지만 고3 막바지가 되서야 장애인은 의대에 지원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알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국문과에 진학해 문학박사가 되었고 신춘문예에 등단해 작가가 되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등 수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고 첫 청소년소설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192여 권의 저서와 350만부 가량의 발매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성공 뒤에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을 업어서 등교시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학교생활 12년을 개근했던 그 힘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 해 수 백 건의 강연을 하며 특히 청소년 대상의 강연에 힘을 쏟고 있는 그를 아이들과 함께 만나보세요. 유투브를 찾아보면 고정욱 작가의 강연이나 인터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 장애로 인해 아무 짝에도 쓸모없으니, 해외 입양이나 가라는 말을 들었다는 작가, 그러나 이제 스스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나서고 있다는 고정욱님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들어보면 부모가 굳이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느낍니다. 부모는 함께 보고 함께 감동하는 것, 그리고 그 감동을 아이들과 나누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어떠한 경험이나 환경도 그 자체는 우리의 삶을 결정짓지 못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고정욱 작가는 한때 장애라는 스스로의 ‘유일한 흠’을 원망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장애의 아픔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작가가 된 자신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작가의 특별한 경험은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읽어버린 화가지망생 예나(안내견 탄실이)와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종식이형(아주 특별한 우리 형)처럼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들은 깜깜한 세상에 맞닥뜨리려 절망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외면 받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세상과 화해하게 됩니다. 안내견 탄실이와 동생 종민은 이들이 세상과 화해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에서 재석은 장애인은 아니지만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탓하며 세상과 불화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이 불행의 원인이 아니라, 환경에 원인을 돌리는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 이곳에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바꾸기 시작한 재석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친구입니다. 몸이 멀쩡한 재석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오히려 장애를 가진 부라퀴 영감입니다. 한쪽 팔과 다리 대신 의수와 의족을 달았지만 마음과 정신은 누구보다 건강한 부라퀴 영감은 고정욱 작가의 분신이자, 재석의 변화를 돕는 진정한 지원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고 아이들 삶에 개입하기 보다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는 계속 넘어지지만 부모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무서워 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기가 있다면 한 발 떨어진 곳에서 격려하고 기운을 돋구어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아기는 부모가 언제든지 자신을 도울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요. 사춘기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그들은 어른이 되기 위한 또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힘든 걸음입니다. 아이가 자란만큼 걸음마를 떼는 아기 때보다 더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역할입니다.   



* 함께 읽은 책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고정욱, 애플북스, 2009년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2014 

 고정욱 작가 인터뷰 (주간동아, 2013-02-26)



<TIP 1.> 대화의 물꼬트기 “재석이 멋지더라”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와 굳이 따로 자리를 만들어 책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책 내용도 자세히 물어보고 독후활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중학생에게 정색을 하고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그냥 쿨한 척 이렇게 말을 던져보세요.

 “중학생에게 인기라고 해서 엄마도 한 번 읽어봤더니, 재미있던데? 재석이 멋지더라”

 정도면 충분합니다. 물론 빌려온 책도 식탁 한 쪽에 슬쩍 놓아둡니다. 

 “엄마도 재미있으셨어요?!”

 이런 반응이 나오고 아이와 마주앉아 이러쿵저러쿵 책이야기도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리진 말아야 합니다. 따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부모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같이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은 살짝 말랑말랑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직 읽지 않는 아이라면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이렇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넌 스톤이라고 들어봤어? 요즘 학교 일진들은 이름도 있네!”

 “넌 친구 대신 엉덩이 백대 맞을 수 있니? 민성이란 애 대단하더라”

 “이런 여자친구가 진짜 있을까? 우리 00 여친은 이런 애면 좋겠다”

 “너희 담임쌤도 이런 분이니? 이런 선생님이 많으면 학교생활이 정말 답답하겠다”


아이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세요. 부모가 대신 열심히 책을 읽으세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자녀를 둘러싼 세계를 한 조각이라도 들여다보게 된다면 투자한 두 세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많은 학교 도서관들은 학부모는 물론 지역사회 주민에게도 책을 대출해줍니다. 신분증 하나면 등록 끝! 



<TIP 2.> 잔소리는 금물! 최대한 짧게, 객관적으로 말하라


사춘기 그들에게 잔소리는 금물입니다. 부모는 충고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비난으로 듣습니다. 꼭 해야 할 충고가 있다면 감정이 앞서는 단어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를 인용하여 사실을 알려주는 느낌으로 접근해 보세요. 담배에 대한 부라퀴 영감의 말은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운운 하는 말보다 아이들 귀에 더 쏘옥 들어갈 것입니다. 


부라퀴는 결코 다른 노인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반복해서 하지 않았다. 간단간단하게 요점만 집어 말해서 참고 들을 만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면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폐암 발생률이 여섯 배란다. 너희처럼 어린 나이에 피우기 시작하면 나중에 피운 사람보다 폐암 발생률이 다섯 배가 높아. 그러니 너희는 삼십 배나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거다.”

부라퀴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흡연의 폐해에 대해 으름장을 놓았다. 심장근육에 문제가 생겨 협심증에 걸리고, 뇌출혈 가능성이 크고, 위에도 나쁘고, 심지어는 불임이 될 수도 있다. 담배 연기 안에 16종류 이상의 발암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재석과 민성은 막연히 흡연이 나쁘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어가며 그 해악에 대해 접해본 적이 없었다.       (99쪽)


명령과 부탁의 차이


“~좀 해 줄 수 있니?” “~해주면 좋겠는데”같은 말투가 부탁입니다. “~해라”는 당연히 명령이지만, “~해주라”처럼 부드러운 말투도 명령인 경우도 있습니다. 명령과 부탁의 차이는 상대방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거절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중한 말투여도 명령입니다. 부탁을 들어준 경우, 꼭 잊지 말고 ‘고마워’라고 말해야 합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깔끔하게 물러서야 합니다. 


우리들은 대화를 할 때 손쉽게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가르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순수하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나누려고 할 때도 있지만,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나보다 열등하거나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그다음에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야말로 상대방을 믿는 태도입니다. 


칭찬하는 대신 고마워하기


아이가 집안일을 거들었을 때 ‘아이고, 착해라’, ‘대견하네’ 등의 표현은 칭찬입니다. 그런데 ‘덕분에 엄마가 편해졌네, 고마워’ ‘00가 청소를 하니까 집안이 환해졌네, 고마워’는 칭찬이 아닙니다. 칭찬은 능력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고마워’는 상대의 공헌에 주목하는 말입니다. ‘네 덕분에 엄마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어’ 같이 상대가 공헌해 준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까칠한 재석이> 속 숨은 고전 들여다보기

아무도 읽지 않아 ‘고전’이라는, 제목만 널리 알려진 명작들. 논술시험 대비로라도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만 부모가 읽기도 쉽지 않습니다.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는 어떤 요약본보다 훌륭하게 고전의 핵심을 전달합니다. 친구 같은 재석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고전의 메시지는 친밀하게 아이들에게 스며듭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원전을 읽고 싶어진다면 더욱 고마운 일이지만 좋은 책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만 느끼더라도 충분합니다. 


너를 둘러싼 껍질을 깨고 성장하라 (데미안, 헤르만 헤세)

엄마는 나쁘고, 자신은 가정불화로 인한 희생자일 뿐이라는 단순 논리는 데미안을 읽고 깨졌다. 이 세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엄마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에 떠밀려 온 사람이었다.   (124쪽)

“사람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알껍질에 싸여 있는 거잖아. 그걸 깨고 나갈 수 있어야 되거든.”   (161쪽)


너의 삶을 살아라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동안 꿈속을 헤맨 것만 같았다. 마땅히 자신이 누려야 할 세상의 달콤함을 재석은 알지도 못했다. 부끄러웠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자연과 하나되어 영혼과 육체가 모두 즐거울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조르바가 숨 막히는 존재감으로 다가왔다.‘내 인생은 내 건데 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며 어리석게 살았어.’옳고 그른 게 문제가 아니었다. 삶을 열정을 다해 느끼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가슴 터질 듯한 젊음이고 재석이 갈망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과연 얼마나 자신을 불사르며 지냈었던가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단 하나뿐인 삶을 열심히 살지 못한 회한에 재석은 자신에게 미안했다. 새벽까지 책을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은 재석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166쪽)


불가능을 믿지 말아라 (빠삐용, 앙리 샤리에르)

“너는 너의 젊음을 함부로 낭비한 죄다.”   (189쪽)


<작가 인터뷰_휠체어를 타고 세상을 향해 외치다>


“장애에 관한 얘기를 쓰면서 그동안 장애인으로 살아오며 쌓아뒀던 울분과 설움이 다 쏟아져 나온 거야. 어렸을 땐 내 유일한 흠이 장애라고 생각했거든. ‘걸을 수만 있다면…’ 하고 억울해했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지나가는 사람마다 나를 보면서 혀를 차고, 수학여행도 못 가고, 가고 싶은 의대도 못 가고, 군대도 못 가고, 취직도 못 하고, 결혼할 때도 반대에 부딪혔던 게 너무 억울했거든.” 


하지만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쓰면서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한다. 


“내 재주를 아까워하면서 장애를 원망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깨달은 거야. 장애 때문에 인생이 거지 같아진 것이 아니라, 장애 아픔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다른 재능이 옵션으로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게 됐지. 예전엔 성경을 읽으면서 기적을 바랐어.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일어나 걸어라’고 말씀하시는 기적을 바랐는데, 지금은 아니야. 그런 얘기를 들어도 ‘그냥 냅둬유. 딴 사람이나 걷게 만들어유. 그냥 이렇게 소명을 다하고 갈 거예유’ 하고 말이야.”


- 작가 인터뷰 (주간동아,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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