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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리 Oct 26. 2020

데미안은 멘토였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람들

대학 졸업을 위해 썼던 독후감을 연재합니다. 당시 졸업만을 위해 분량만 채웠던 글이라 제 경험, 평소의 생각들이 여과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글입니다. 묵혀둔 초고에 약간의 수고로움을 들여 단 한 번의 첨삭을 통해 올립니다. 오직 아카이빙의 목적으로 올려봅니다. 꽤나 긴 글이라 재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미련 없이 패-스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데미안


 내가 ‘데미안’을 처음 읽은 건 아마 중학생 때일 것이다. 책을 읽고 쓰는 흔히 말해 논술 학원이라 부르는 곳에 엄마가 나를 등록시켰다. 그때의 나에게 이 책은 그저 재미가 없고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책에 흥미도 없었고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아마도 다 읽지 않고 수업에 갔을 것이다.

 이후에 데미안을 읽게 된 기회가 있었다. 군 복무를 끝내고 시드니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을 때였다. 사촌누나에게서 책을 빌렸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었다. 아마 그때는 중학생 때와 다른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성장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나와 비슷한 부분을 찾기도 했으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다. 학점을 얻기 위해 한 번 더 읽어본 지금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간단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주인공 싱클레어의 학교에 데미안이라는 전학생이 오게 된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점점 친해지고 싱클레어보다 정신연령이 높은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멘토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싱클레어를 괴롭히던 질이 나쁜 학생 크로머로부터 더 이상 괴롭힘 을 당하지 않게도 도와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부터 카인과 아벨에 대한 생각을 듣게 되고 놀라게 된다. 세상에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고 선과 악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둘은 다툼을 통해 사이가 나빠지게 되고 싱클레어는 방학 때 전학을 가게 된다. 이후에 싱클레어는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 모습이 데미안과 꼭 닮음을 알아차린다. 데미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싱클레어에게는 피스토리우스라는 임시적인 멘토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대학교에서 데미안을 만나고 데미안의 엄마인 에바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후 에바와 사랑도 우정도 아닌 애매한 관계 속에서 전쟁이 터지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이후 데미안은 죽고 싱클레어는 살아 돌아온다. 데미안이 죽을 때 싱클레어에게 에바의 키스를 전해준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많은 멘토가 있어왔다. 한 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멘토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어떤 멘토가 정말 도움이 되는 멘토인가?

 이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시드니에서 2명의 형 A와 B를 만났을 때이다. A는 한국에서의 오랜 사회생활 때문인지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무언가 일을 시작할 때 미리 많은 생각을 하고 계산을 통해 시작할지 하지 않을지를 말해주었다. 한 가지 예로 시드니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프라하의 한인민박 매니저로 가는 기회가 생겼었는데 A는 이것저것 따져보라고 말해 주었다. 그때의 나이, 금전 상태 등 현재 처한 환경에서 이것이 어떠한 가치를 불러올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나라에 갔을 때 어떠한 것을 경험할 수 있고 또 어떤 것을 잃을 수 있을지 이러한 문제들 말이다.


 B는 A에 비해서 낭만주의자였다. 간단히 말해 젊을 때 도전해 보라. 네 심장이 뛰는 일을 하라.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부채질을 해주었고 격려해주었고 응원해주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따뜻한 공감을 해주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과연 어떤 멘토가 정말 좋은, 정말 도움이 되는 멘토인가? 나는 이 질문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불변의 진리는 없듯이 각자 환경에 맞는 그러한 답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또한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에 대한 평가는 항상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결정이 궁금하다고? 내가 판단하기에 나는 이 두 멘토의 충고를 적절히 받아들였고 결국 프라하로 향했었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고 두 명의 멘토는 아직까지 나에 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또 어떤 멘토가 있었을까? 이 두 멘토의 격려로 향했던 프라하에서 또 다른 멘토 C를 만났다. 그녀 또한 많은 사회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젠 퇴사를 했고 낭만을 찾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프라하로 왔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C는 이성적인 면과 낭만주의적인 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연애, 결정, 고민들에 대해 많은 상담을 해주었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마 C는 이런 이야기들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D라는 멘토가 생겼다. 최근에 취업과 관련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된 멘토이다. 아직 한 번의 통화와 카카오톡이 전부인데 느껴지는 점은 A보다 훨씬 이성적이라는 거다. 개인적으로 피가 섞인 가족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압박을 주는 느낌이다. 아마 만나고 보면 크나큰 자극이 되어 열정이 불타오르거나 혹은 주눅이 들어 힘이 빠지거나 둘 중 하나이지 싶다.


 멘토라는 존재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살아오면서 주변에 많은 멘토들이 존재 해왔다.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고 나는 그들이 말해준 것들에 대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뽑아서 나의 삶에 적용시켰다 생각한다.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알듯이, 내 주관은 너무나도 강해서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점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자주 단점이 된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왜 헤르만 헤세는 주인공인 싱클레어 대신에 그의 멘토인 ‘데미안’을 소설의 제목으로 지었을까? 하지만 작가 헤르만 헤세는 책의 표지에 데미안의 이름만 넣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책을 출판할 당시, 이 책의 저자로 자신의 실명이 아닌 싱클레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이름을 표지에 쓰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이 두 인물 간의 이야기를 그리듯이 두 사람 모두의 이름이 표지에 실렸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제목이 데미안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인 싱클 레어의 청소년기에 정말 중요했던 데미안이라는 것이다. 아마 작가는 데미안의 말이, 데미안의 가르침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며 데미안이 살아가는 것이, 데미안이 말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투쟁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아브락사스에 대한 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 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이 하나라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이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 또한 선과 악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떠오르는 것이 교황청이다. 그들은 중세, 르네 상스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처형했고 무력을 이용해 그들의 권력을 세상에 뽐냈다. 이론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은 백번 맞고 올바르다. 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자가 인간일 때 이것은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


 사람마다 책을 읽고 느끼는 점은 다양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멘토에 대해서 생각했고 지금 까지 나에게 가르침을 줬던 멘토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정말 많았고 세상은 역시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벅차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경험, 지혜, 지식들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고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직까지 나는 남들에게 멘토가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 한 명이 있다. 내 동생, 이번에 대학교에 진학했는데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나는 내 생각을 강요하는 현실에 치중하는 그러한 멘토는 아닌 것 같다.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격려해주는 정도이다. 아마 내가 가진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만약에 내가 어떤 한 분야에 전문가이거나 기술이 있어 그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성장시키면서도 이러한 점이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데미안을 읽으며 또 한 번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좋은 미래가 다가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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