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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국 Nov 19. 2016

에필로그, 쑥국 한 그릇

내 생애 그 어떤 시간에 대하여

그때였다.

회오리치던 나의 삶이

어느 순간 잠잠해진 그 어느 아침.

그전에 쭉 해 오던 명상을

아무리 시도해도 할 수가 없었던 그 날.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던 그 어떤 장소.

그 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팔 룸비니에서의 일주일은

헌 나를 벗고 다시 새로운 나를 입는

하루하루가 되었다.

매일매일 새벽 예불을 드렸고,

밥도 꾹꾹 눌러 담아 한 그릇씩 비웠으며,

시간이 날 때면 마야데비 사원에 가서

명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떠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일출을 보던 그 순간을

내가 눈감는 그 날까지 기억할 것 같다는

어떤 예감이 들었다.



중국에 남아야 할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에게 히말라야는

어떤 커다란 위안을 주는 것 같았고,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일을 벌였다.




2007년 크리스마스,

삼성 원유유출 사건이 있던 그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 태안으로 갔고,

바닷가를 뒤덮어버린 기름을

헌 옷으로 닦아 가며 말했다.

"나 이제 한국에 안 살 거야."




2006년 가을,

내 인생에

단 하나의 이유이자 목적과 같았던

엄마가 나를 떠나 버렸다.

어린 시절,

내가 아파트 화단에

친구들과 나가 쑥을 캐오면

엄마는 쌉싸름한 쑥국을

기가 막히게 끓여주곤 했었다.


그런 우리 엄마는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며

병원에서 같이 지내던 나를 두고,

'oo대를 나와

기자를 하는(혹은 했던) 자랑스러운 우리 딸',

그 딸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이승에서는

만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다.




원유에 찌든 헌 옷가지를 들고

요리조리 구석구석 돌려가며 기름을 닦던,

마스크 두 개를 겹쳐 끼고 추위에 떨던,

그 날 따라 더 작아 보이던 나의 친구는,

엄마 잃은 아기새처럼 처량하기만 했던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헛소리 하지 마" 라며

묵묵히 기름만 닦을 뿐이었다.




나는 2007년 끝자락에,

정말로 홍콩행 비행기표를 끊어버렸고

홍콩에서 할 일이 없어 건너간

중국 심천을 시작으로

중국어 니하오 밖에 모르면서

중국을 두어 달 간 여행 다니다

중국에서 살 작정을 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중국 살이는 순탄치 못했고,


한인 교포가 운영하던 회사에서

한 달 만에 잘렸으며,

현금도 도둑질당하고,

심지어 여권도 도둑맞았지만

내 중국 생활은

가늘고 길게 2013년까지 이어졌다.




생애 첫 해외여행도

혼자 떠난 홍콩이었고,

연휴가 많은 중국의 분위기 덕에

그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도 혼자 많이 다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대 물려가며 다니던 나지만

나름 반골 기질이 있어

배낭여행자라고

유세 떠는 인간들은 싫어하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니, 무엇보다도 남들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다.

대부분의 세상사가 나에게는 '그러든 말든'이다.





나보다 중국에 오래 살았고,

나보다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한

딴 나라에서 온 남자와 인연이 되어

중국에서부터 

현재 베트남까지

별 탈 없이 살고 있으며

나의 하루하루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베트남 하노이로 온 것이 2013년,

하지만 아직 여기서는

 한국행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봤으며

이제 중국이 내 제2의 고향이고

친구들도 거기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영원한 세계의 부랑자처럼 살 테지만,

내 발길 닿는 곳이 내 집이요,

내가 가는 곳이 내 새로운 고향이 된다.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열심히 살고 있다.

아주 처절하게.


늘 지금 이 자리에

지금 이렇게

다시 피어나는 꽃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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