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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국 Nov 19. 2016

인도 갠지스 강 뱃사공의 노래

바라나시의 그 어떤 시간

인도 바라나시




축축하고 습한, 그리고 오묘한 냄새와 죽음의 기운. 나에게 바라나시는 그런 곳이었다.


론리플래닛 추천 숙소였던 강변의 멋들어진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밤마다 악몽을 꿨으며, 방이 여러 개인데 혼자 지내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날 휴식한 뒤 갠지스 강 일출을 보기 위해 나갔던 새벽.


희미한 빛줄기만 있는 선착장에 발을 딛는 순간 어떤 인도인 남자가 다가와 나는 꼭 자기 배를  타야 할 운명이라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다.




 

해가 뜨기 전의 선착장





'인도에서는 무조건 반 이상 깎고 봐야지'


중국에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나에게 그런 바가지가 통할쏘냐-라며 그 사람을 무시하고 가려는데 내 팔을 잡고 흥정을 해보자 한다.


어차피 그 아저씨의 배를 탈 마음이 없던 나이기에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을 불렀더니 아저씨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나는 다른 배를 탈거라고 튕기며 떠났더니 그 아저씨도 기분 상한 상태로 


"네가 정 그 가격을 원한다면 타"


그러길래 나도 머쓱해서 배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앞도 거의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곳에서 괜히 이 사람의 배를 탔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들었지만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잠깐 배 타고 내리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그 아저씨와 나. 

내 침대의 반만 한 사이즈였던 그 작은 보트에 몇 분간의 실랑이로 인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서로 마주 보며 앉았고 나는 내 가방을 부여잡으며 혹여라도 있을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내 가방 안에 무기 비슷한 거라도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느라 일출을 보기도 전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배는 곧 출발했고 우리는 서로 말없이 그렇게 찰싹찰싹 노 젓는 소리만 들으며 쭉쭉 나아갔다.


내 머릿속은 여전히 거미줄처럼 꼬일 대로 꼬였다.

누구는 갠지스강에서 화장이 덜 된 시체 손목을 봤다더라-

인도에서 험한 일 당한 서양 여자도 있다더라-

갖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뒤덮었고 나는 걱정하느라 배가 앞으로 가는지 옆으로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좀 전까지 내 바로 정면에서 나를 째려보던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는 거다.

'뭐야 이 아저씨...' 

하는 찰나에 갑자기 눈물이 툭 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갠지스강에서 그 인도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노랫가락은 신기하게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이 난다. 인도 노래, 네팔 노래 몇 번 들어봤지만 그 노래는 게 중에 신나는 분위기의 곡이었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나랑 돈 몇 푼에 싸웠던 아저씨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크게 크게 인도 노래를 불러젖혔다. 정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엔 자기도 민망했는지 약하게 시작하더니 점점 정신을 놓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났고 아저씨의 노랫소리는 내 귓속에, 내 머릿속에, 내 추억 속에 콕콕 처박혔다.


내가 평소 존경해마지않는 류시화 작가님의 하늘나라로 떠난 여행을 읽고 인도 여행을 결심했었는데, 갑자기 그 책의 일부분을 몸으로 체감하는 것 같았다.


신이 정해놓은 순서를 바꿀 수는 없으니 화를 내든 마음의 평화를 얻든 둘 중의 선택은 마음의 평화가 낫다는 것.


그 아저씨는 마음의 평화를 택했을 것이고 나는 걱정하는 편을 택했었나 보다. 일출 보러 나온 여행자들과 매일 돈 때문에 실랑이하며 살아갈 그 보트 아저씨가 나름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하던 나보다 훨씬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이런저런 걱정들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동안 이미 5분 전의 일들은 잊고 신이 나게 엉덩이를 들썩이며 노래를 부르던 그 인도 아저씨에게 나는 인생에 한 자락 가르침의 빚을 졌다.



노래를 불러준 뱃사공
꽃을 팔고 있는 상인



누군가의 생명이 묻힌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빨래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몸을 씻으며 새로 태어난다.


 

# 2010년 2월 인도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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