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조용한 나의 집
본가에도 가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즐겨가던 식당에도 가고 싶고, 친구들이 메신저에서 말하는 힙한 식당, 맛있다는 카페에도 가고 싶고, 코엑스에서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싶고.
그냥 그런 마음으로 8일 정도로 길게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 가면 하루에 약속은 두 번씩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오겠다는 각오로 갔는데. 막상 서울에 가니 또 부모님이랑 집에서 도란도란 대화하는 게 좋아서 약속도 거의 잡지 않았다.
본가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면 아랑이가 그립다. 지금쯤이면 집에 햇빛이 캣타워로 들어올 시간인데, 우리 아랑이는 거기서 햇빛 받으면서 그루밍하는 걸 좋아하는데. 애를 두고 너무 혼자 나와있는 건가 싶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오시면 생각이 환기가 되면서 갑자기 조금 들뜬다.
아버지는 바로 씻고 나오셔선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하고 설거지를 시작하시는데 그러면 나는 식탁에 앉아서 업무를 마저 마무리하면서 오늘 있던 일들을 아버지와 얘기 나눈다. 아버지의 주방정리가 끝나고 내 하루 업무도 종료가 되면 나와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뉴스를 보면서 어머니를 기다린다.
어머니까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셋이 분주하게 저녁을 준비해서 식탁에서 식사를 시작한다. 오늘 있던 일, 내일 있을 일, 친구들과 나눈 대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한 가지 예전과 바뀐 건 식사 자리에 술이 올라온다. 술을 못 드시는 아버지는 식사 시간에 음주를 하시지 않으셨는데 서울에 내가 가끔 오면서 달큼한 모스카토 와인이나 잣 막걸리 한 병 정도는 셋이 나눠마시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면 우리 가족은 과일을 꼭 먹는데 어떤 날은 황금향, 어떤 날은 배, 또 어떤 날은 오렌지. 과일 좋아하는 나는 배불러도 사양하지 않고 베어 먹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행복한 시간.
평범한 시간인데 집안에 사람 사는 소리가 가득 차고 온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이제 조금은 불편한 잠자리인데 부모님이 혹시나 추울까 봐 챙겨주는 걸 받는 게 좋다. 아침에 평소보다 빨리 눈을 뜨게 되는데도 밥 냄새로 눈을 뜨는 게 좋다.
부모님 아래에서 살 때는 못 느끼던 것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 막상 서울에 한 번 가면 그렇게 아랑이가 보고 싶고 우리 집에 가서 편하게 자고 싶은데, 정작 제주에 내려오고 나면 한동안 그 사람 사는 소리가 그리워서 괜히 먹먹하다.
정작 서울 집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때는 아랑이가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 싶으면서 막상 제주집에 와있으면 부모님이 보고 싶다.
오늘 야근을 해서 그런 건지, 오늘따라 아랑이가 보채지 않고 조용히 있어서 그런 건지. 오늘따라 집이 참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