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22. 2019

회사 말이야, 나부터 그만둘게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8화.

가끔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에 갈 기회가 있다. 

엔젤투자사의 투자를 받아 엄청난 규모로 시작하는 사람부터 오로지 열정과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흔히 말하는 1인 기업으로 시작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태어날 때부터 창업을 준비한 듯한 노련함과 당당함에 살짝 기가 죽고는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열린옷장 사람들은 '창업'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창업가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한다는 도전정신, 결단력, 추진력, 승부근성 등등의 자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단지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는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졌던 사람들일 뿐이다. 누구나 가슴 한 켠에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그렇고 그런 소망 말이다.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그런 소박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남들처럼 대찬 창업 스토리 따위 나올 리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우리는 '창업'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창업의 개념이 없었으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일' 정도로 생각했다. 그 '좋은 일'을 '업'으로 삼아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모여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준비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실행단계로 들어가자 여러 가지로 갈증이 생겼다. 늘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서두르지 말고 마치 직장인 밴드처럼 틈틈이 시간되는 대로 해보자고 했었던 그 단계를 이제는 지나버린 것이다. 상근하는 사람이 한 사람 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누구 회사 그만 둘 사람 없나?' 하는 무언의 텔레파시를 서로 보내고 있었다. 


그 텔레파시에 가장 빨리 반응한 사람은 현재 열린옷장에서 'man of action'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는 행동대장. 다니고 있는 회사에 휴직제도가 있으니 1년 휴직계를 내볼까 한다고 했다. 잠시 쉬면서 열린옷장도 돌보고, 자신의 인생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곧 첫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어서 아기와 아내를 위한 시간을 좀더 많이 갖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겉으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아이도 곧 나올텐데...'하고 걱정을 했지만 내심으로는 살짝 안도했다. 아무튼, 누군가는 먼저 사표, 아니 출사표를 던져야 할 상황이었다.


열린옷장 사람들 중 제일 젊고 행동력 있는 그가 100% 에너지를 투입하자 조금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공유경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을 위한 코업 쉐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다양한 스타트업 포럼에 다니며 열린옷장 아이디어를 발표하며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게 된 건 다 그 때 몸 사리지 않고 발품을 팔았던 행동대장의 열정 덕분이다.    


열린옷장에서 'story tailor'라는 직함으로 일하고 있는 나로 말하자면,  'man of action'보다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해온 일인 광고만드는 일과 열린옷장 일을 병행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마음도 몸도 100% 열린옷장에 와 있었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  

한 부류는 그냥 회사 다니면서 조금씩 하지...그걸로 생활이 되겠어? 하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이들. 또 한 부류는 정말 잘 했다! 꼭 성공하는 걸 보고 싶다! 라며 자기 일처럼 응원해주는 이들. 


남들도 해주는 걱정을 우리 스스로라고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앞에서 소개한 '태어날 때부터 창업가'들이라면 '무조건 잘 될거야!'라고 낙관하겠지만, 역시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될까? 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괜찮을까?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계산하고 고민한 후에야 "스타트 업!"을 외쳤다.  


2011년 겨울, 우리가 처음 모여 이야기 나눴던 꿈들은 일단 이룬듯 하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내 일터를 만들고 싶다는 꿈... 내 아이에게 이렇게 사는 법도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다는 꿈... 


이제, 우리는 "정장 공유를 통해 더 많은 꿈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열린옷장의 꿈을 함께 꾸고 있다. 그 꿈에 동의하고 동참하려는 열린옷장의 가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직 성공은커녕 안정을 말할 단계도 전혀 아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바로 당신에게 말이다.   





Tip for your start.

오늘 사표를 내면 당장 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한때 대한민국 청년들의 대표 멘토이던 안철수 님은 의대박사 과정과 군의관 시절까지 7년간 새벽 3시에 일어나 백신 개발에 매달렸다고 한다. 어느 날 문득, 내일부터 안철수 연구소를 열어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인고의 준비가 있었기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사표를 내려는 당신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는가? '일단 사표 먼저 내고 그 다음에 준비하자'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사표는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는게 어떨지?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8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분이 우리 옷을 대여하겠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