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31. 2019

저희를 왜 도와주시는 거예요?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1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 

열린옷장에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틀림없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홍반장이 여러 분 계신다. 엄밀히 말하자면 열린옷장을 찾아오는 청년구직자들을 아낌없이 돕고자 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 홍반장님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으신다. 그저 이번에 주신 도움이 이런 이런 분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말씀드리면 그것으로 충분히 즐거워하신다. 


아마도 좋은 일 한다고 세상에 큰 목소리 내기를 바라셨다면 홍반장님들은 열린옷장과 인연을 맺지 않으셨을 것이다. 홈페이지에 로고만 올라가도 홍보가 되고, 작은 기부를 해도 이슈가 되는 일들도 많다. 그런데 열린옷장은 2015년 ㅇl전에는 기부금 영수증 조차 챙겨드리지 못했었다. 아주 가끔 기증을 하고 싶다고 문의했다가 기부금 영수증 발행이 힘들다는 얘기에 그냥 전화를 끊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열린옷장의 홍반장님들에게 가끔은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첫 번째 홍반장님은 하남에서 인수네세탁소 (현,나룰명인세탁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배동석 사장님. 열린옷장이 가진 거라곤 20여벌의 기증정장 뿐이었던 2012년 10월쯤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다. 


"어제 신문에 나온 열린옷장 기사를 보고 한참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어요. 저희 집이 작은 세탁소거든요. 옛날에는 세탁소에서 양복을 빌려 입었잖아요. 요즘은 그런 문화가 없어져서 양복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정말 너무 좋은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근데 대여가격을 보니까 겨우 세탁비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세탁비를 쓰고 나면 운영을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어서요.... 남편이랑 의논했는데 혹시 우리가 세탁을 좀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데..." 


연락을 주신 분은 배동석 사장님의 사모님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모님은 매일 신문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히 읽으시는 습관이 있으신데, 한겨레신문에 나온 열린옷장의 기사를 인상 깊게 보신 것이다. 


사모님의 전화를 받고 우리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상 세탁비 때문에 큰 고민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대여가격을 책정할 때 우리의 기준은 '청년구직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선을 넘지 말자' 였다. 그런데 의지는 훌륭했으나 그 가격으로 운영은 막막하기만 했다. 세탁비와 택배비를 부담하고 나면 오히려 적자가 났다. 여기저기 저렴하게 세탁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 세탁을 도와주겠다는 사모님의 전화를 받았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당장 세탁이 급한 정장 몇 벌을 챙겨들고 하남에 자리한 인수네 세탁소로 달려갔다. 


세탁소는 두 내외분이 왔다갔다 일하시기도 비좁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잘 생긴 아드님의 이름을 딴 그 곳에서 두 분은 바쁘게 일하고 계셨다. 그런데 모든 세탁과 다림질을 사장님 손으로 한땀한땀 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니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다. 사장님께서는 능력되는 데까지 돕다가 힘들면 주위의 세탁소 친구들에게 함께 하자고 부탁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시작해보자고 호쾌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동안 배동석 사장님으로부터 받은 도움은 다 적기도 어려울 정도다. 세탁은 물론이고 다림질하는 법, 바지 길이 수선하는 법도 사장님께 배웠다. 전문가용 스팀 다리미부터 셔츠나 바지를 다릴 때 사용하는 우마, 수선에 필요한 초크, 수선 테잎 등등 뭐가 필요한지도 모두 사장님께 조언을 들었다. 진짜 전문가가 되려면 꼭 필요하다고 하시며 전문용어로 '후앙'이 달린 다림질대도 문 닫은 세탁소에 물어물어 구해주셨다.


사모님은 세탁물을 찾으러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고구마도 삶아놓으시고, 과일도 챙겨놓으시고... 뭐라도 챙겨주지 못해 안달이시다. 얼마 전에는 열린옷장 식구들을 전부 댁으로 초대해 저녁을 한 상 차려주셨다. 인수네 세탁소에 한번 다녀올 때마다 깨끗해진 세탁물과 함께 마음까지 따뜻해져서 돌아오곤 한다. 


배동석 사장님 외에도 셔츠와 타이, 구두를 부족할 때마다 계절 바뀔 때마다 챙겨주셨던 더셔츠스튜디오 김맹규 대표님, 고가의 여성정장을 신상이 나올 때마다 기증해주셨던 발렌시아 김영일 대표님, 특이한 사이즈의 정장이 필요할 때마다 속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해주는 맞춤정장 디자이너 지현 님, 우리가 갈 곳이 없어 고민할 때 공간을 제공해준 유용빈 대표님, 뉴스레터와 리플렛 제작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도움을 주었던 혜인 디자이너.....이렇게 수많은 홍반장님들 덕분에 열린옷장은 잘 버텨가고 있다. 


아마도 이 분들께 다시 한 번 "도대체 저희를 왜 도와주시는 거에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실 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나눔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진리를 

오늘도 우리는 홍반장님들께 배우고 있다. 





Tip for your start. 

기부를 받는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물품 기증, 후원금 기부, 재능 기부 등의 도움과 나눔을 받을 때에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부분에 도움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받은 도움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고, 기부한 사람도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준비없이 기증 받아 창고에서 썩히거나, 애써 받은 재능기부가 흐지부지 되는 일이 없도록 '기부를 받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보자.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1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힐링'이 주요업무인 인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