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2화.
열린옷장에는 전설처럼 이야기되곤 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일명 '고속터미널 사건'
2013년 3월, 봄이 서둘러 온 듯 유난히 푸근한 어느 금요일의 일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듯 힐링인턴들이 어딘가에 전화를 열심히 걸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정장이 도착을 안 했대요"
"어? 어디?"
"어제 강릉에 도착했어야할 정장이 도착을 안 했대요. 오늘 면접이신데......"
아....입사면접을 위해 강릉에서 정장을 신청하신 청년구직자 분이 어제 받았어야할 정장이 도착을 안 한 것이다. 설마설마 하고 기다리다 바로 오후에 면접인데 도착을 안 하자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열린옷장이 문을 연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언제 다시 올 지 알 수 없는 소중한 면접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대형사고였다.
다행히 면접은 오후 4시라고 하니, 우선 택배박스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그런데, 택배회사에서도 어찌된 건 지 박스의 행방을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서울사업소의 택배기사님 누군가가 실수로 트럭 구석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만 내놓았다.
우와좌왕 하는 사이에 시간은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 택배기사님 찾기는 포기하고 최대한 빠르게 강릉에 정장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번뜩 예전에 지방에 물건을 보낼 때 고속버스 기사 아저씨께 음료수 한 병 사드리며 부탁했던 기억이 났다. 요즘도 그런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선 신청하셨던 정장과 비슷한 사이즈로 2벌을 골라 포장을 했다. 원래는 1벌을 신청하셨지만 혹시 사이즈가 안 맞을까 걱정이 되어 1벌을 더 포장하고 고속버스터미널을 향해 달렸다.
면접을 앞두고 그렇지 않아도 초긴장 상태일 구직자분이 이 상황을 당하고 얼마나 멘붕 상태일까 생각을 하니 도무지 침착해지기가 힘들었다. 택시를 타고 달려가며 강릉의 청년분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강릉버스터미널이 집에서 멀지 않으니 나와서 픽업하겠다고 했다.
안도의 숨을 쉬며 강릉가는 고속버스 시간도 알아볼 겸 고속버스터미널에 전화를 했다. 아, 그런데.... 안내데스크에서는 요즘은 그렇게 버스기사님께 부탁하면 법에 걸린다며 통합 수하물센터에서 정식으로 택배신청을 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다시 수하물센터에 문의하자 수하물이 버스를 타기까지 1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으니까 시간 여유를 두고 보내야한다고 답해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열린옷장 사무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다.
"수하물센터를 통해서 보내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그냥 내가 정장이랑 같이 고속버스 타고 강릉에 다녀올게. 그게 제일 빠를 것 같아......"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강릉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표가 만석이면 입석이라도 타야하나? 기왕 간 김에 바다는 보고 와야 하나? 면접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장을 다시 받아서 서울로 올까?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별별 걱정과는 달리 강릉 가는 버스에 직접 오르지는 않아도 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버스를 타기 전에 혹시 몰라 수하물센터에 들렀다. 가장 빠르게 강릉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고 접수창구에 다시 한 번 문의했다. 역시 전화로 들었던 대로 1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마음으로 한번 더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게 정장인데요, 오늘 입사면접을 보는 청년구직자 분이 입어야하는 거거든요."
이 한 마디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접수창구의 까칠해보이던 아가씨가 "그래요?"하더니 쓱쓱 뭔가를 쓰면서 하는 말! "5분 후에 버스 태울 테니까 빨리 결제하세요."
우리 청년구직자들의 절실함을 우리만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코끝이 다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강릉의 청년구직자 분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무사히 정장을 픽업할 수 있었다. 사이즈도 잘 맞아서 자신 있게 면접 잘 봤다며 고맙다는 문자를 저녁에 보내오셨다.
그리고 다음 날.... 사라진 택배가 돌아왔다. 열린옷장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는 반전은 또 한 번 있었다. '도대체 어떤 택배기사님이 실수하신 거야!'하고 흥분했던 우리 스스로가 심하게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운송장에 보내는 분과 받는 분 주소를 거꾸로 쓴 것이다.
일명 '고속터미널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그 후로 운송장을 잘 못 쓰는 실수는 열린옷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실수만큼 확실한 훈련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Tip for your start.
실수는 실수일 뿐, 실패가 아니니까 좌절하지 말자!
고객이나 클라이언트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보면 그 조직의 문화가 보인다. ➀실수한 사람을 찾아내어 책임을 추궁한다. ➁실수를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을 찾아낸다. ➂무조건 사과하고 또 사과한다. ➃실수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해결한다. 우리 조직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각자 한번 선택해보기를.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2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