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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Sep 25. 2019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

면접을 앞둔 청년들에게 기증받은 정장을 대여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창업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꼭 이 모델을 실행해보고 싶다면 절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마십시오."


신선하고 매력있는 아이디어이지만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우려였다.


일단, 기증을 받아야 공유옷장이 존재할 수 있을텐데, 정장과 같은 고가의 의류를 기증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람들의 생각을 조사해보기 위해 SNS에 '청년을 위한 정장 공유옷장이 있다면 기증하시겠습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해보았더니 40여명의 사람들이 기증하겠다는 서명을 하였으나 실제로는 단 한 명도 옷을 보내지 않았다. 역시 우려할 만 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할만큼의 옷을 기증받아 보관하면서 대여하고 반납받아 관리를 하려면 상당히 큰 공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사업이 될 것 같은데 고정비용 대비 수익이 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잠깐 계산을 해보니 역시 고개를 푹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들의 정서상 입사면접 같이 중요한 자리에 과연 남이 입던 오래된 옷을 입고 가겠느냐 우려했다. 특히 피부에 닿는 옷의 경우, 대부분은 중고의류를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우려를 극복해낼 문제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열린옷장이 시도한 첫번째 해결책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기증받은 옷이 그저 '누군가가 입던 중고 정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과 메시지가 담긴 응원 정장'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정장을 기증받을 때 '응원'을 함께 기증받기 위해 기증자에게 보내는 기증박스 안에 빈 편지지를 넣어서 보내보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손편지를 쓰겠나,,,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기증자들이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고 있다.  


'저도 취업에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잘 될거에요.' '3번이나 합격했던 정장입니다. 저의 기운을 받아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장을 대여할 때는 옷마다 담겨있는 기증자의 응원편지까지 함께 전달했다. 그리고 옷을 대여해가는 청년의 수트케이스에 기증자의 이름을 적은 빈 편지지를 함께 넣어드리며 옷을 대여할 때마다 기증자에게 감사의 답장을 써주기를 부탁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펜을 잡는 것조차 어색하다는 요즘 청년세대가 종이 편지지에 무언가를 써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반납받은 수트케이스를 열어볼 때마다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청년들이 편지지를 채워서 옷과 함께 돌려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짧은 한마디도 있었고, 합격했다는 성공 스토리도 있었고, 또 실패했지만 누군가 응원해주는 것 같아 든든했다는 안타깝지만 기특한 인사도 있다.  


기증자가 쓰는 '나의 정장 기증 이야기'와 대여자가 쓰는 '나의 정장 대여 이야기'는 오직 열린옷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현재 열린옷장에 쌓여있는 3,800여개의 기증이야기와 16,000여개의 대여이야기는 웹 에서 이야기옷장을 통해 누구나 바로바로 만날 수 있다.




열린옷장이 생각한 두번째 해결책은 '어쨌든 좋은 옷'이다.


아무리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의미있는 옷이라도 입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용자에게 좋은 서비스로 기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유옷장을 '좋은 옷'으로 채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있다.  


우선 기증받은 의류 중 정말 퀄리티가 좋은 옷 만을 엄선해서 사용한다. 기증자가 보내온 모든 옷이 소중하지만 공유옷장에 걸릴 옷을 선별할 때만큼은 정말 냉철하게 기증의류를 대한다. 조금이라도 올이 나갔거나 손상이 있거나 핏(fit)이 예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다. 내 친동생이 입사면접을 보러간다면 자신있게 챙겨줄 수 있을 법만 옷만을 사용한다.   


또한 어떤 체형의 대여자가 와도 잘 맞는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일반 정장 매장보다 훨씬 세분화되고 폭넓은 사이즈를 구비하는데 집착한다. 수천명의 다양한 체형을 가진 기증자가 기증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양할 수 밖에 없는데, 한발 더 들어가서 기증이 들어오기는 어려운 사이즈라면 제작을 해서라도 없는 사이즈가 없도록 한다. 그러다보니 남성 기준으로 키 160~190cm / 몸무게 45~150kg까지 한국에 존재하는 웬만한 체형은 누구나 입을 옷이 있는 '모두를 위한 옷장'이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열린옷장에서는 흔하게 이런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사이즈를 1cm만 작게 드려볼까요?"




누구나 멋질 권리.


열린옷장을 이용하는 모든 이들이 누렸으면 하는 것이 '누구나 멋질 권리'이다. 우리가 열린옷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모든 마음을 이 한 문장에 담았다. 열린옷장이 지속가능한 곳이 되려면 항상 같은 마음으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다른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공유옷장을 통해 얻어진 수익은 '청년들 누구나 멋질 권리'를 누리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나눔사업을 통해 환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열린옷장에 들어섰다면 당당히 요구해주기 바란다. 당신의 멋질 권리를.




* 본 글은 [스타트업,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글쓰기] 프로그램 참여로 작성된 글입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함께 글쓰기'를 통해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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