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 혼자만 남았다.
그동안 열린옷장에 들고 나간 이들을 모두 합하면 몇 명쯤 될까. 열린옷장의 맨 처음부터 모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조직 내에 이제 나 밖에 없는 듯 하다. 초기 2년여 동안은 제대로된 보수를 지급할 상황이 되지 않아, '열정'만 가지고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미래를 고민하며 떠났다. (흠...단지 보수의 문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건이 떳떳하지 못하다 보니 채용의 기준을 높게 잡을 수 없었고, 채용을 위해 누군가를 만나도 냉철하게 서로를 판단하는 '면접'이라기 보다는 그저 만나서 반가운 '상견례' 같은 분위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이 열린옷장에 이로운 '인재'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저 우리랑 분위기가 맞는 사람,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만 시선이 갔다.
경영의 관점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되면서 열린옷장에 꼭 필요한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별별 시도를 다해보았다.
같이 일할 사람이니까 다같이 면접을 보고 채용하자는 취지로 전 직원이 참여하는 1: 8 면접을 본 적도 있었다. 전 직원이 참여하기 위해서 일정을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원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긴했지만, 면접을 보러온 입장에서는 꽤나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면접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1일 동안 직접 같이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열린옷장 투어데이'라는 채용과정을 만들기도 했다. 1차 면접을 통과하면 출근해서 하루 동안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경험해보았다. 단점은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정이 들었는데 누군가에게 불합격 통보를 하는게 쉽지 않다. 통보를 받은 지원자 중에는 하루종일 그렇게 분위기 좋았는데 왜 불합격이냐며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초에는 성수지역의 몇몇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인 <조직관리>스터디 모임을 통해 '열린옷장, 열린원칙'이라는 업무 원칙을 만들었다. 홈페이지 '채용정보' 페이지에 내부적인 업무원칙을 공개적으로 공유해놓고, 우리의 원칙에 뜨겁게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상시적으로 입사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조직에 가장 오래 몸 담았고, 가장 나이가 많다 보니 그래도 제일 잘 보시지 않겠어요? 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여전히 나에게 채용의 최종적인 결정권이 쥐어지곤 한다. 여러 번의 채용과정을 치르면서 깨닫게 된 건 안타깝지만 '사람을 잘 보는 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세세한 이력서와 장문의 자기소개서를 받고 1시간이 넘는 면접시간을 통해 대화를 나눠도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없다. 나중에 보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은 면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 면이 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때는 정말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어려운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뼈 아픈 경험들을 통해 몇 가지 기준은 생겼다.
첫 번째 기준은 '투명한 사람인가' 이다.
내가 생각하는 '투명한 사람'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상식적인 사람'이다. 광고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상식적인 사람'은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같이 일할 크리에이터를 뽑을 때는 최대한 상식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더 점수를 주었다. 지나고 보니 참 어린 편견이었구나 싶다.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니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판단하며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않다. 열린옷장이 원하는 인재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늘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두 번째 기준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다.
"옷장지기는 어떤 기준으로 채용하시나요?"라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농담처럼 "외모 보고 뽑았습니다" 라고 답하곤 한다.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미남미녀를 채용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내면의 결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을 채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옷장지기가 하는 일이 고민 많은 청년들의 시작을 응원하는 일이니 만큼, 바르고 정직한 생각과 따뜻한 배려의 마음, 그리고 넘치는 긍정에너지를 표현하고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 옷장지기였으면 한다.
열린옷장을 운영하며 가장 행복한 점 한 가지를 묻는다면, 언제나 대답은 하나다. 내 상상을 뛰어넘는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나를 반성하게 만들고 내가 노력하게 만들어 해주었다. 채용의 과정은 늘 힘이 들지만, 이번엔 또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는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한다.
열린옷장이 후퇴하지 않고 반보씩 반보씩 거북이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역시 '좋은 사람의 역사'였다고 믿고 있다. 우리와 함께 그 역사를 이어나갈 '좋은 사람' 어디 없습니까?
* 본 글은 [스타트업,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글쓰기] 프로그램 참여로 작성된 글입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함께 글쓰기'를 통해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을 극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