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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Sep 15. 2019

우리를 '스타트업'이라 말해도 될까?

열린옷장을 소개할 때마다 그게 늘 궁금했다.


'스타트업'이라 함은 몇 년차 조직까지를 말하는 거지? 규모는? 구성원수는? 얼마 전 '비영리 스타트업' 연구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어느 10년차 비영리조직 대표님이 "저희는 더 이상 스타트업 단계는 아니구요"라고 소개를 하는 것을 보고 '오, 멋있다!'싶었지만 결국은 "저희는 아직 스타트업 단계인 것 같고요,,,"라고 자신감 부족한 소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열린옷장은 쌓인 연차에 비해 외견은 크게 성장하지 않아서 누가 봐도 스타트업스럽지만, 어느 덧 8년차가 되다 보니 2,3년차의 스타트업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혼자 나이먹어 입학한 늦깍이 입학생처럼 좀 민망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 '스타트업'이라고 규정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타트업 정신'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기가 어려운 현실이 매일매일 펼쳐진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졸업했습니다. 이 정도면 안정세랍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는 날은 과연 올까...




2013년에 열린옷장 이야기를 쓰면서 참 힘들었었다.


2011년 11월~2013년 9월까지의 열린옷장 이야기를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라는 제목 아래 20개의 글로 정리해서 다음 스토리볼에 연재를 했었다. 20개의 이야기를 1주에 하나씩 연재하는 것을 계약한 후에 썼던 거라, 일러스트 그릴 시간을 고려해 1주에 2개 씩의 원고를 미리미리 넘겨야했다.


당시에는 대표들을 포함해 4명의 인원이 대여, 다림질같은 의류 관련 업무부터 홍보물 제작, 기증 관리같은 업무까지 모든 일을 다 해야했기 때문에 매일 11시, 12시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을 해도 맘 편히 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 원고를 쓰다보니 3개월 여 동안 주말 하루도 편히 쉰 날이 없을 정도로 부담이 컸다.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되면서 스토리볼 페이지가 사라지는 바람에 일러스트가 포함된 원본은 볼 수 없게 되어, 글은 브런치로 옮겨와 포스팅해두었다.




그 후 6년이 지나, 무려 2019년이다.


그 동안 열린옷장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들을 겪어왔다. 무보수 열정페이의 4명이던 구성원은 17명이 되었다, 행거 2개에 여유롭게 걸리던 30여 벌 정장은 100평 이상의 공간이 필요한 3천여벌로 늘어났다. 하루에 서너명밖에 되지 않던 이용자가 쌓이고 쌓여 12만명이 넘었다.


그 만큼 책임져야할 것도 많아졌고 무거워졌다. '지속가능'의 다른 말은 '책임'일 것이다. 지구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사람에 대한 책임, 조직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지속가능은 가능해진다. '열린옷장, 비영리로 지속가능하기'라는 제목으로 다시 시작하게 될 이야기는 '열린옷장은 어떻게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 하다. '나는 어떻게 책임을 다 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겠다.




한 때 유행했던 뇌구조 그리기로 지난 8년간의 나의 뇌를 그린다면 열린옷장 95%에 (어쩔 수 없이) 가족 5% 정도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로 몰두해온 시간이었다. 다만, 예전에는 열린옷장을 소개하는데 목적을 두고 전개했다면, 이번에는 열린옷장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보다 솔직하게 풀어가보고 싶다.  


막상 펜을, 아니 키보드를 여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알 수가 없어 쓰고 지우고만 반복하기를 며칠이다. 어쩌면 몇 페이지의 글로 정리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더 쌓이기 전에 오늘부터라도 다시 열린옷장을 기록하는 일을 '책임'지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열린옷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무 계획도 목표도 없이 일단 해보자 했던 것처럼.


  


* 본 글은 [스타트업,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글쓰기] 프로그램 참여로 작성된 글입니다.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함께 글쓰기'를 통해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을 극복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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