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령님, 문제가 생겼어요"
옷장지기 중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할 때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답하려고 노력한다. 부디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오전 대여 업무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여하신 분한테 전화가 왔는데 치마에 문제가 생겼대요. 지금 면접 보러가려고 입었는데 지퍼가 닫히질 않는대요."
면접은 12시 10분, 현재 시각은 11시 35분.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전해줄 치마와 휴대폰만 챙겨서 면접장소로 향했다. 제일 가까이 있는 타다를 호출해보니 9분이나 걸린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택시를 잡아탔다. 면접보는 취준생에게 옷을 전달해야한다는 사정을 들은 택시 기사님이 최선을 다해 달려준 덕분에 12시 5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가보는 회기동의 대형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를 채용하는 면접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똑같이 쪽진 머리에 검은 자켓과 검은 치마,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면접 대기자들이 큰 강당에 가득했다. 어림잡아도 150여명은 되어 보였다. 아마도 병원 운영상 일요일에 면접을 보는 모양이었다.
화장실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며 전화를 거니 한 손으로는 흘러내릴까좌 치마 뒤춤을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는 전화를 받으며 뛰어오는 간호사 지망생이 보인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가져온 치마와 함께 화장실로 밀어넣고 일단 갈아입도록 했다. 치마를 갈아입고 나오는데 신발이 슬리퍼 차림이다. 구두는? 구두 가져오셨어요? 뛰어오려고 구두는 따로 챙겨온 모양이다.
"일단 오늘 면접 잘 보세요. 치마는 제가 확인해볼게요."
문제가 생긴 치마를 보니 지퍼가 빠져버려서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다. 아마도 혼자 입다가 얼마나 암담했을지 상상이 된다. 혹여나 옷 때문에 면접을 못 왔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정장이 10여벌 밖에 되지 않던 열린옷장 초기에는 맞는 사이즈의 옷이 없어서 면접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어쩔 수 없이 더러 보게 되었었다. 맞는 옷이 딱 한 벌 밖에 없어 8월 삼복더위에 한겨울 모직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가는 경우도 있었다. 옷 때문에 면접을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3천여 벌에 가까운 정장을 구비한 지금은 물론 그럴 일은 없지만, 오늘같은 돌발상황은 항상 걱정된다.
이렇게 날 좋은 일요일 날 초긴장한 표정으로 면접 대기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 한 편으로는 안 쓰럽다. 면접장을 슬쩍 들여다보니 10명씩 한꺼번에 면접을 보는 모양이다. 늘어선 의자와 줄지어 앉아있는 면접관을 보니 나까지 괜히 긴장된다.
졸업사진 촬영 시즌이라 방문객이 많은 옷장으로 다시 급히 돌아오면서 마음 속으로 살짝 응원해본다. 부디 오늘 액땜은 이걸로 다 하고 운수대통한 면접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