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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미상 Feb 16. 2020

제가 운전할게요

홀로 서기 아닌, 홀로 가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체 없이 면허를 땄었지만 나는 꽤 오랜 기간-1번의 갱신이 있을 때까지-운전을 하지 않았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거리가 늘 운전에 적합한 거리도 아니었거니와 운전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상태였던 점도 작지 않았다. 강산이 한 번 탈바꿈을 한다는 그 시간 동안, 굳이 운전이 아니어도 내 삶은 수많은 복잡한 신호들과 체증들로 늘 과부하 상태였으니까.


퇴사와 이별. 인생에서의 크다면 큰 방향들을 일순간에 전부 정지시켜 놓고서야 나는 한 숨 돌리며 찬찬히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무언가 처음부터 몰두해서 배울 것이 있었으면 했기도 했고 무엇보다 집과 회사 외엔 아무것도 몰랐던 좁디좁은 인생 반경을 물리적으로도 넓혀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더랬다.


내 면허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3만을 갓 넘긴, 여전한 실력을 가진 엄마의 자동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20대엔 가져본 적 없었던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한 번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것이 크게 어렵지 않게 익혀지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금세 매일 운전을 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두어 달 뒤, 재미와 여유가 무탈하게 스며들던 그쯤에야 생전 처음으로 그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내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스스로 목적지를 설정하고 내 방향과 속도를 결정해 나아가고 원할 때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능동적 주체감을.




'가다 벽에 박더라도, 제가 핸들을 잡고 달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큰 사거리에서 유독 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아주 오래전, 팀원으로 있던 친구가 퇴사할 때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심지어 당시 면허가 있던 친구도 아니었는데...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비유를 할 수 있었을까. 덕분에 살다가 종종 생각나는 말 중 하나가 됐다. 당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곱씹던 말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삶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임을 본능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운전을 할 여력조차 없었던 내 삶의 한 시절 동안, 나는 남의 목표를 내 목표와 같다고 착각하며 달렸다. 아니, 운전석에 탄 사람을 예의 주시하며 조수석에서 내내 가슴 졸여야 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함께 달렸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그의 목적지는 나의 목적지와 다르게 변질되어 있었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끌려간다는 것을 깨닫는 비극의 순간이 왔다. 목적지를 설정해 두었다면서도 자주 내비게이션에서 벗어났고, 누가 보아도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서기도 했고, 심지어 음주운전일 때도 있었으며, 갑자기 강물에 뛰어들겠다는 그를 진정시키느라 갖은 애를 쓰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그저 허송세월 했다기엔 지금 내가 갖게 된 침착함과 인내심, 기지와 판단력은 그 조수석에서 대부분 길러졌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긴 하다.


다 차치하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조금 지치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고 그 차에서 너무 늦지 않게 내렸다는 점이고, 내내 보고 지냈던 그 난폭한 운전습관을 나도 모르게 닮는 쪽이 아니라 타산지석 삼게 되었다는 점인데 이 부분은 직접 운전을 해 보니 더더욱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부분이 됐다. 핸들을 잡는 사람에게 부과되는 책임감은 그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그리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었기에.


예상했던 대로 결국 사고는 사고답게 났고, 눈 앞에서 사이렌처럼 빨간 불이 크게 켜지자마자 나는 지체 없이 그 차에서 내려 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바로 옆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겨 앉아 바라본 세상은 참 많은 것이 달랐다. 출발하고 싶을 때 출발하면 되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면 된다. 엑셀도 브레이크도 모두 내가 컨트롤할 수 있으며, 컨트롤해야만 하는 시절이 시작된 것이다.


목적지의 재설정과 인생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결정, 수많은 크리티컬한 신호들과 그를 무시했을 때의 책임까지, 낱낱이 절실히 깨달은 지금에서야, 운전석에 올라 직접 핸들을 잡고 달리게 된 지금에서야,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롯이 '길 위에 두 발로'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어디로 갈까, 어떻게 갈까, 어디를 들릴까, 무슨 음악을 들을까, 누구를 태울까, 하나부터 열 까지 모든 것이 고민이고 선택이고 걱정이지만 이제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인생이라는 한 번뿐인 여정에서는 비록 가다 벽에 박을지라도, 반드시 내가 내 손으로 핸들을 단단히 잡고 스스로 달려야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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