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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미상 Nov 18. 2021

곁에서 무심하게, 멀리서 다정하게

새로운 감정 밀착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전 처음 보는 말이 익숙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적응력이 전세계적 비상사태라는 특수 현상에 신경을 풀가동 시키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새로운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시키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밥 한 번 먹자, 언제 한 번 보자, 라는 인사는 잠시 그 인사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의 유채꽃들은 땅에서 솟아나자마자 갈아 엎혀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빼앗긴 봄에 백신은 언제 오는가, 기약없는 기현상에 숨 죽인 채 우리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삶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전 티비에서, 어린 아이들의 실제적 교류가 줄어드는 현상황 속 사회적 교육을 걱정하는 우려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 사태가 무사히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거리감이 온전히 예전처럼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접촉으로 인한 이번의 치명적인 경험들은 향후에도 우리에게 무의식적 경계심을 남겨둘 것이라는 의견이다. 대다수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배워왔던 우리는, 정 반대의 상황 속에서 혼란을 소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어제와 오늘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중요하지만, 이 시간이 길어진다면 사람 사이의 거리감으로 생기는 문제점들 또한 변이된 바이러스처럼 생각지도 못한 방법들로 새롭게 속을 썩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느다란 평균대 위에 놓인 듯한 이 위기 속에서도 인생이 용케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것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마이너스를 향해 가는 듯한 이와중에, 전에 없던 플러스를 뿜어내는 부분들도 생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생활이 바빠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할 겨를조차 없었던 사람들의 안부가 문득 걱정처럼 스쳐가기도 하고, 실제로 그중 몇은 갑작스레 내게 연락이 닿아오기도 했다. 별 일 없냐, 건강은 어떠하냐, 가족들은 괜찮냐...... 다른 때 나누었다면 그저 진부하다 넘겼을 안부들이, 작은 카톡창에 진하게 담겨 오가는 일들이 제법 커다란 위안으로 바뀌는 심리적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사회성을 억압하자 뜻밖의 저항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곁에 둘 수 있을 땐 별 걱정 없던 사람들인데, 강제로라도 멀리 두어야하는 상황에 처하자 우리는 이제야 빼앗긴 서로를 떠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적친밀감’이라는 용어가 있다. 비록 직접 본 적 없더라도 몇 번 주고받은 댓글로도 서로가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만약 온라인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아마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온도일 것이다.

이 글을 보게 될 당신의 얼굴을 나는 모르고, 이 글을 적은 내 얼굴 또한 전혀 모르는 당신이지만, 나도 당신도 분명히 안다. 우리는 서로가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이 시간을 건강히, 그리고 가능하면 희망을 잃지않고 최대한 행복하게 헤쳐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최전선에서 우리를 대신해 싸우고 있을 의료진에 대한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의 마음은 모두 그들의 등에 가닿아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가깝고 뜨겁게. 그 영역은 코로나가 제 아무리 변신을 거듭한다 해도 결코 감염시키지 못할 성역이며,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할 정신적 백신이 있다면 바로 그 영역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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