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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미상 Nov 18. 2021

디스코 팡팡 서서 타기

운명의 수레바퀴를 운전하는 방법




조언 자리에 놓인 마지막 카드를 뒤집으며, 성현은 작게 웃었다. 맞은편에 앉아 사뭇 긴장한 소원의 얼굴에는 그 카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얼른 해석해 달라는 재촉이 잔뜩 서려있었다. 동그란 수레바퀴 그림과 함께, 'The Wheel of Fortune'이라고 적힌 카드의 이름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 너, 디스코 팡팡 알지?"



진지한 해석이 나올 거란 기대를 밟고 나온 뜬금없는 말에 소원이 대답 대신 눈을 흘겼다. 그녀의 시선에 묻은 '그게 뭐'를 정확히 읽은 성현이 말을 이었다.



"그거, 보는 사람은 웃겨도 타는 사람은 아주 죽을 맛이잖아. 왠 줄 알아?"

"왜긴 왜야... 쉴 새 없이 돌아가니까 그렇지."



설마 계속 이렇게 죽을 맛일 거란 얘긴가. 눈을 내리깔고 이미 한차례 눈물로 눅눅해진 휴지를 만지작 거리는 소원의 손 끝에, 바싹 마른 새 티슈가 소리 없이 얹어졌다. 소원은 한숨과 함께 말없이 그 무언의 위로를 그러쥐었다.



"그렇지. 근데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가장자리에 앉아 있어서야."

"가장자리...?"

"너 가끔 DJ들이 기구 퉁- 튕겨줄 때, 그 가운데로 걸어가 본 적 있어?"



소원은 친구들과 갔던 월미도를 떠올렸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난생처음 타 본 놀이기구가 체험시켜준 기억은 이름만 들어도 팔다리에 금세 되살아날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원심력을 결국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눈을 꼭 감았던 기억,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먼저 미끄러지던 친구의 까만 머리통과, 죽을 둥 살 둥 매달려 있던 두 팔이 덜덜 떨리던 기억, 그러다 어느 순간 쿵 하며 크게 튕겨 나와 원판의 한가운데에 엉거주춤 서 있게 되었던 기억까지.



"해봤으면 알 텐데. 그거 막상 가운데가 제일 덜 힘들잖아 사실. 아무것도 붙잡지 않아도 서 있을 수 있고."

"......"



먼 기억들이 마저 떠올랐다. 디스코 팡팡을 타던 중 가장 짧지만 오아시스 같았던 기억. 타의에 의한 일이긴 했지만, 한가운데에 서 있을 때가 오히려 훨씬 탈 만한 기분이었다. 중심만 잘 잡으면 얼마든지 거기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안내에 따라 다시 자리로 돌아가야만 하긴 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면 소원은 내내 가운데 자리에 서 있기를 선택했을 터였다.

생각에 빠져 있던 소원의 눈 앞으로, 성현은 카드를 집어 들어 내밀었다.



"이건 '운명의 수레바퀴'라고 불리는 카드야. 근데 저절로 돌아가는 건 아니고, '네가' 더 좋은 방향으로 회전시킬 수 있다는 걸 의미해."

"내가?"

"맘 약하게 가장자리로 빠져있으면 더 휘둘리니까, 가운데로 걸어가서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게 되면, "



성현은 '네가'를 강조하려 소원을 향해 뻗었던 손가락을 접고는, 길게 팔을 뻗어 소원이 양 손으로 카드를 잡게끔 만들어 보였다.



"그때는 이 수레바퀴가, 네가 탄 배의 키가 되는 거지."

"......"



소원은 양 손에 마치 운전대처럼 쥐어진 10번 카드를 바라보았다. 턱을 괸 채 더 질문 있느냐는 눈짓을 보내는 그에게, 카드 리딩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소원이 웃으며 답했다.



"나, 디스코 팡팡 서서 잘 타."

"그러니까 그 카드가 나왔지. 복채는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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