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루 만에 다 읽은 책
그러고는 광고업계에서는 사람의 뒷모습을 쓰는 것이 일종의 터부라고 가르쳐줬다. 뒷모습은 어떤 식으로 써도 외롭거든, 하고.
2. 표지가 마음에 드는 책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쨍한 태양 아래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방울의 찝찝함과 꿉꿉함 사이에서도 이렇게나 유쾌하고 경쾌하고 상쾌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
3. 가장 얇은(또는 두꺼운) 책
(33) 삶과 죽음의 샌드위치
본격 전지적 샌드위치 시점의, 이런 선택과 집중 혹은 광기와 집착... 사랑해
4. 제일 오랜 시간 읽은 책
이것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불공정하다.
"진실을 듣게 되면 인간은 불끈 화를 냅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5. 내년을 위해 아껴둔 책
6. 내가 뽑은 올해의 문장이 수록된 책
열정은 좆까고 돈이나 주서
하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이 고작 원룸에서 투룸으로, “잘 때는 음식 냄새를 맡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면? 욕심이라고도 꿈이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그것을 ‘희망’해야 하는 우리는, 여기서 얼마나 더 프로가 되어야 하는가.
7. 솔직히 이해 못 한 책
그들은 평생 섹스를 위해 옷을 다 벗어본 적이 없다.
한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떠오르는 중인 세계의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빼앗겼거나 리모컨 배터리가 떨어졌거나 스쿠터를 도둑맞았거나 새로 산 운동화를 잃어버린 소년처럼" 괴롭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것들을 구경해본 적조차 없다는 사실이 더 참담"한 사람들에게, 근본주의자가 되거나 더럽게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8. 나를 구원한 책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그렇게 기나긴 번아웃의 끝에서, ‘노오력과 열쩡’의 신화 혹은 “생산성의 복음”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
9.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게 만든 책
우리가 말라비틀어진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거나 끼니를 건너뛰지 않을 만큼 자신을 사랑하면 좋겠다.
볼리비아에 있을 때, 숨 쉬듯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했지만 역시나 사실은 주말 마다 일주일 치의 국과 반찬을 만들고 퇴근길에 길거리 핫도그와 빠세냐아이스 혹은 제철의 체리 한 봉지와 싸구려 와인을 사가는 일상들이 참 좋았더랬다. 시간이나 허기를 때우기 위함이 아닌 목표로서의 먹기란 그런 것이었을까.
10. 정주행을 부른 만화책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과연 이것은 인류의 사춘기였구나.
11. 환경/기후위기에 대한 책
제로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다.
"아무리 자기 것이라 하더라도 그 근원을 추적해보면 다른 누군가가 가져야 할 것을 도중에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다.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2. 읽으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책
어느 쪽이 오른쪽 신발일까 골똘히 생각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나는 짜부라지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나는 비를 맞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느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건 나도,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3. 여행지에 가지고 간 책
세상에 누가 촛대에 82달러나 쓰지? 혹시 이거 일종의 남근 집착인가? 불건전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나아가라.
스스로가 못생김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꽤 자주 개성 있는 그 눈코입에 감탄하며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한다. 아이스핫초 같고 여름니트 같은,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14. 다른 책에서 언급되어 찾아 읽은 책
아아, 역시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요.
"말하자면 뒷모습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5. 서점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구입한 책
고태경 선생님보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없다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상 우리가 내뱉는 대부분의 말들은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일 때가 많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들도 그것이 화자 스스로를 향한 것이라고 느껴질 때에는 청자에게 쉽게 가닿는 듯하다.
16. 동물/식물이 등장하는 책
우리는 쇠똥구리란다.
상상도 못 한 정체!
17. 발견의 기쁨을 안긴 책
다 큰 여자 둘이서 세상을 함께 걸어 나갈 때 드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자유로운 기분, 그것이 선물이었다.
ㄴㅇㄱ
18. 나만 알고 싶은 책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어쩌다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허겁지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는데 아무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가 태어난다면 그의 프로페셔널한 삶을 위해 분서갱유해야 할 책과 영화들이, 있다.
19.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책
예를 들어, 당신이 세상에서 다섯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우리도 사랑일까>
20.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던 책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국에는 항상 최악의 코앞에만 머물게 되는 느낌. 하지만 이 모든 걸 선택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21. 내 마음을 담은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22. 제목만 보고 산 책
나에게 있어서 누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마감에 맞추어 일을 하게 만드는 긴장감,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데서 느껴지는 안도, 한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물리적 온기. 그래도 역시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서비스의 최고 셀링 포인트는 대리만족이 아닐까,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치 있다는 위로나.
23. 계절을 담은 책
이 향긋함
용산 IMAX 부럽지 않은
24. 좋아하는 작가의 추천으로 읽은 책
당시에는 하기 싫다고 말하기보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나를 탓하는 것은 언제나 쉽고, 빨랐다.
25. 가장 좋았던, 올해의 책
나는 과연 그렇구나 생각하며,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리스트를 작성하며, 예상외의 책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 즐겁기도 했고 카테고리를 찾지 못한 책들이 있어 아쉽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이 이 글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는 건, 역시, 낭중의 추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