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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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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Dec 27. 2021

2021년의 영화들

2021년에 본 영화는 장편 42편, 단편 1편, 작년에 본 장편이 23편이었으니 작년과 비교하면 거의 2배로 늘어난 건데 작년이 좀 특이했던 거고, 대략 한 주에 한 편 정도는 챙겨봤던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1. 2021년 영화 베스트3



올해는 별 다섯 개 엉엉 ㅠㅠ 하는 인생작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 기준 만점(4.5)인 작품이 세 편! 모두 영화관에서 보았고 눈물깨나 쏟았다.


먼저 <세 자매>는 극중 누군가 한 사람에 공감하기보다는 이야기에 몰입한다는 느낌으로 봤는데 정말 여러 차례 울컥했다. 재료도 맛도 다르지만 <벌새>와 같은 향을 풍기는 영화다. 특히 클라이막스의 감정 폭발씬은 두말할 필요 없는 올해의 장면.


<소울>은 째즈라는 음악을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서사와 훌륭하게 버무려냈고, 무엇보다 내 마음 속의 빈 공간을 감싸준다는 점에서 포근해지는 작품이었다.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을 때와 비슷한  감각느꼈다.


마지막으로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은 MCU라는 프랜차이즈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찍지 않았나 싶다. MCU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영웅의 탄생 – 각성 – 완성이라는 문법을 따라가면서도 또 다른 축으로는 역으로 피터 파커의 세계가 좁아지는 듯한 구성을 보여줬는데 두 방향의 힘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피터 파커 –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 맨'라는 캐릭터에 마지막 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성취라고 생각한다.


세 자매 / 우리는 모두 불행하고 병들었지만 서로의 상처를 핥아줄 수는 있지

소울 / 마음 속 구멍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선율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 / 우리가 스파이더맨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이유


2. 이것이 스타일



영화를 보는 시간, 그리고 그 여운을 즐기는 시간까지 감각적인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들. 원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환상의 마로나>는 특히 그 표현방식이 뭐랄까 참 ‘예술적’이었고,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는 그야말로 현란하게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리는 서사에 이렇게 스타일리쉬한 표현이 붙으면 시너지가 좋은데 <더 랍스터>도 그런 작품 중 하나. <크루엘라>는 거꾸로 이야기의 구성은 아쉬웠지만 화려한 스타일은 인정할 만했고, 이제야(!) 본 <화양연화>는 정말 농밀하다못해 찐득한 감정의 여운을 남겼다. 또 참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베놈> 시리즈는... 그냥 딱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에는 전혀 무리 없었다. 한국 영화 중엔 <모가디슈>의 카체이싱 씬을 보며 촬영/편집 맛집이 여기있네 싶 만족감을 느꼈다.


환상의 마로나 / 너를 향해 달려간다. 오늘도, 내일도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 화려한 불꽃과 금속의 부딪힘이 만들어낸 '귀칼 스타일' 눈과 마음을 쉴 틈이 없다

크루엘라 / 한번쯤 가보고 아 거기 눈과 귀가 참 즐거웠지, 음식은... 글쎄? 싶은 인스타 맛집 같은 영화

화양연화 / 결핍으로 타들어가는 태양보단 충만하게 빛을 밝히는 촛불이 좋더라. 그것이 나의 화양연화

더 랍스터 / 누구 한명 빼놓지 않고 낭만적 사랑을 부정하는 세계. 타협이나 게임, 생존이 아니라 적당히 취하는 것이 사랑이거늘.

베놈 / 앞만 보고 내달리는 환장의 짝꿍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 결혼이야기x아드레날린24

모가디슈 / 회색 빛깔 이야기에 색을 입히는 방법

애니 매트릭스 / 감각적으로 배부른 매트릭스 해설본


3. 순한 맛이 주는 위로



책 ‘키키 키린의 말’을 읽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을 들춰봤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위에 꼽은 베스트3와 함께 가장 좋았던 이야기로 꼽을 수 있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표정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디 갔어, 버나뎃>은 처음엔 ‘케이트 블란쳇이 이런 작품을?’이란 물음표로 출발했지만 내가 현실에서 앓고 있는 결핍에 대한 느낌표를 남겨주었는데 이 작품과 메시지 면에서 가장 닮아있는 건 재밌게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였다. 이래저래 위로가 필요한 시다보니 따뜻한 영화들에 끌렸나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 하늘에서 터지는 화려한 불꽃보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나누는 막대기 끝의 불꽃이 더 따뜻하고 밝을 수 있음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어떤 감정은 아이들의 표정에서만 길어낼 수 있다

태풍이 지나가도 / 비바람에 젖고 지친 가운데에도, 뽀송뽀송 남아있을 법한 순간들

걸어도 걸어도 / 나를 채운 사람들, 나를 만든 시간들, 그리고 내가 남긴 흔적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 세계의 달콤함도 삶의 짭조롬함도, 물어삼킬 때야 느낄 수 있는 것

남매의 여름밤 / 그렇게 눈물과 웃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감싸며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저 하얀 설원 위에 영화 같은 꿈을 짓고

어디갔어 버나뎃 / 당신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

루카 / 함께 살아볼 수밖에, 이미 그렇듯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특별한 당신이 된다는 것

카페 뤼미에르 / 인류학 수업이 듣고 싶어지는 기분

눈물이 주룩주룩 / 웃는다거나, 눈물 짓는 그 순간의 표정이 담아내는 시간

나츠메우인장 이시오코시와 수상한 방문자 / 무해하고 따뜻한 긴장감이 필요할 때


4. '살풀이' 프랜차이즈



MCU 페이즈4에 나오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살풀이’ 아닐까 싶은데, 죽여놓고(ㅠㅠ) 단독영화 뽑아준 <블랙 위도우>, 양조위를 최고의 로맨틱 빌런으로 만들어놓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서사 자체가 자신들의 원죄에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굴러간 <이터널스>, 여기에 스파이더맨 영화 20년에 걸쳐 쌓인 트라우마 치료소(?) 같았던 <노 웨이 홈>까지.. 이 정도면 히어로들이나 창작자들은 뭔가 상담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다.


<매트릭스4: 리저렉션>도 마찬가지. 중반까지는 오히려 신선했지만, 정작 빨간약 먹고부터는 이거 하려고 4편 만들었어? 라는 의문이 계속 떠올랐고, 3편까지의 이야기에서 물음표로 남아있던 부분이 해소되긴 커녕 정합성 없는 상징들이 넘쳐나 필요 이상으로 의미가 파편화된 건 아닌가 싶다. 뭐 애초에 그런 거 따지지 말란 얘기에 가까우니 그렇다치는데, 어떤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굳이 바꾸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


반면에 나도 이런 살풀이는 응원한다 싶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바이올렛 에버가든 극장판>의 달리기 씬은 정말 이 이야기의 모든 단점을 무색케 할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듄 파트1>은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듄 파트1 /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는 마음에 대하여

블랙 위도우 / 이렇게! 만들 수! 있었으면! 진작! 좀! 하지!

이터널스 / 때론 한명 한명의 매력이 전체 팀보다 더 진한 맛을 내기도 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양조위가 슬픈 눈으로 나오는데 나머진 무슨 상관

매트릭스4: 리저렉션 / 차라리 죄다 게임이었더라면... 그래도 고양이 만세

블레이드 러너 /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블레이드 러너 2049 / 사이버펑크 세계 속의 헤드윅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애니메이션) / 단단한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동화 속 조제는 이런 모습이구나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II / 약하고 외롭고 못남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단단하고 따뜻해질 수 있음을

바이올렛 에버가든 극장판 / 클리셰조차 아름답게 만드는 그 목소리, 그 표정


5. 아카데미 정주행



어쩌다보니 올해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된 작품들이 쏟아져나올 때 마침 영화를 한창 찾아보던 때

시기라 평소라면 안 봤을 작품들도 많이 챙겨봤다. <미나리>는 한국에서 엄청 난리긴 했지만 솔직히 작품상은 <노매드 랜드>가 받지 않을까 싶었던 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펀에게 '해피 뉴이어'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순간의 감정도 꽤 오래 여운을 남겼다. <더 파더> 속 창 밖을 내다보는 앤소니 홉킨스의 몸, 나에겐 블랙팬서가 아니라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속 자신감과 야망이 넘치는 연주자로 기억될 채드윅 보스만의 마치 랩을 하는듯한 대사, 그리고 <미나리>의 벌건 불빛 앞에 선 윤여정의 얼굴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모리타니안 / 어떤 미소는 억만겁의 고통을 딛고 떠오른다

더 파더 / 기억의 숲이 미로가 되자 눈앞에는 낯설고도 익숙한 막다른 길 뿐이다. 익숙해서 지겹고 낯설어서 두려운, 그런 막다른 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 / 사실과 경험에 대한 말×해석이 바로 정치이고 또한 예술임을, 아론 소킨이 다시 한번 증명한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좌절과 투쟁, 그리고 슬픔이 새겨진 블루스의 선율은 왜 그리도 따뜻한지.

맹크 / 트럼프 시대에 말을 거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 '좋게좋게'를 못견디는 어떤 '고집스러움'에 대한 찬사이기도.

노매드랜드 / 지붕 아래 잠들 수 없는 건 저주일까 자유일까. 아무튼, 당신에게도 Happy New Year

미나리 / 어디서나 잘 자라지만 아무데서나는 아니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 just remember,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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