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할 때
창업자의 잘 정리된 IR자료(투자자용 Pitch Deck)로 많이 연습한 사업 설명을 듣는 자리도 있지만, 나는 지인들과 차 한잔 마시면서 가볍게 듣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때는 지인이 많은 시간 자세히 설명을 했음에도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려는지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의 분석력과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고, 잘 구성된 데모데이나 평가위원으로서 들을 때와는 다르게 긴장을 덜 하고 집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몇 번을 다시 만나 반복된 얘기를 듣고 나서야 스스로 쉬운 말로 정리하곤 했다.
몇가지 사례를 들면, 공유 경제(Sharing economy)가 한창 유행일 때, 모빌리티(Mobility) 산업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려는 후배가 있었다. 똑똑한 유학파 친구였고, 훌륭한 주변 지인들 도움으로 짧은 시간에 미국 법인 설립과 고객 실증 사례(PoC)를 잘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했기에 IR을 지속적으로 했다. 그 후배는 나를 통해서 투자를 받거나 적절한 투자자를 소개받고 싶어 사업에 대해 여러 번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그 서비스의 핵심가치와 차별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보다 스타트업 투자 경험이 훨씬 많은 글로벌 엔젤투자자를 후배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투자자에게 후배 사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솔직히 말해서 본인은 그 창업자가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고 했다. 나만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네 안도하였다.
재미있던 점은 얼마 후 투자 검토를 하는 또 다른 선배도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하루에 평균 7~10개의 업체들 솔루션과 사업에 대해 분석하고 투자 검토를 했던 분이었다. 그 선배는 ‘그 후배 아무개가 하는 사업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그래서, 내가 쉽게 설명해 주길 원했다. 결국 영어, 모국어의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오랫동안 활동한 마케팅 모임에서도 있었다. 20여명의 업계 마케팅 CMO 모임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대부분 자기 사업을 하고 있어 서로서로 사업 소개를 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어떤 대표님은 본인 사업을 몇 번씩 설명하였으나,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 또한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A사업을 하려고 하시는 거죠?’라고 물으면,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한다. ^^.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창업자가 핵심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 설명할 때 또는 최신 트렌드와 키워드를 예로 들며 본인 사업을 설명하려 하지만, 듣는 사람 설득에 실패했을 때, 투자자들은 이렇게 요청한다. “지금 우리가 유치원생이라고 생각하시고 다시 한번 설명해 주세요”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물론, 전문가들도 각 산업분야가 다르고 직종이 다르기 때문에 짧은 설명만 듣고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자는 본인의 사업을 한마디로 쉽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타겟 청중에게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경험한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은 IR Pitch 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지 IR에 최적화된 것 같았다. 영어가 능숙한 이유도 있지만, 그들은 명확한 비즈니스 정의와 시장분석 그리고 본인들이 필요한 것을 분명히 설명했다. 그중 몇몇은 인상 깊게 남아서 아직도 실리콘밸리 IR 사례 때 내가 예로 들곤 한다. https://eent.tistory.com/69
Susie는 IR발표도 잘했지만, 본인에게 관심을 보였던 투자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리스트업 하여 (나도 거기에 포함)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보내주었는데, 참 인상 깊었다. 그 내용은 지난 IR 미팅 이후 팀이 했던 제품 개발, 마케팅, 투자 등 각 영역에서 진행된 진척상황 그리고 고객 사례를 정리해서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물론 한국 창업자들도 수준이 높아져서 이제는 주기적으로 사업을 업데이트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 않은 창업자들은 한번 IR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 파트너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품뿐 아니라 IR도 업데이트가 경쟁력이다.
Jason Calacanis의 “Angel” https://www.angelthebook.com/ 이라는 책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업데이트해주는 창업자는 사업에 실패를 해도 이해하겠지만, 반면에 가장 골치 아프고 화가 나게 만드는 창업자 유형은 일단 투자를 받고 난 후에 한동안 업데이트가 없다가 투자금이 필요할 때만 도와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폐업 소식을 전했을 때였다고 했다.
사람관계에서도 잘 나갈 때는 연락하지 않다가 꼭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