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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won Dec 03. 2015

차별이란 무엇인가 2

열망으로서의 인권 ⑧

차별해도 괜찮아      


나는 직립보행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했고 축구경기에 참여해 다른 선수들과 치열하게 경쟁해보고 싶다. 나는 축구팀에 가입하고자 신청서를 냈는데, 감독은 내 장애를 이유로 축구선수로 선발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은 셈이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 아닌가? 


그럴리가.  당연하게도 금지되는 영역에서 금지되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하여 모두 위법하지는 않다.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는 고용 과정에서 차별을 한 바로 그 이유가 해당 직업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다. 이를 ‘진정직업자격’이라고도 부른다. 그 업무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격이라는 말이다. 여성들을 위한 대중목욕탕의 목욕관리사를 채용하는 곳에 어떤 남성이 지원했다가 성별을 이유로 선발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탕 목욕관리사에게 여성이라는 성별은 진정직업자격에 해당한다. 


그러나 주의하도록 하자. 고용에서 장애나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는 우리 사회와 법규범이 달성하고자 하는 중대한 목표이므로, 무엇이 진정으로 그 직업에 필요한 요소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까다롭다.     


고객님들의 취향           


 한 여성이 홍보대행사에 취업하기 위해 입사원서를 냈다. 그는 좋은 성적으로 서류를 통과했고 면접에도 합격했다. 그의 오른쪽 손에는 화상 자국이 있고 장애로 인해 손가락이 일부 없었다.      


홍보대행사 사장은 신입사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다 이 여성의 손 모양을 확인했다. 그는 이 업무에서 해야 할 역할이 직접 고객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홍보상품 계약을 따내야 하는 고객 유치 업무이기 때문에, 그의 손 모양이 고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은 정말 장애에 대해 편견이 없고, 그 손 모양에 별다른 거부감도 없지만, 고객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어쩔 수 없이’ 그를 합격시킬 수 없다고 통보하고, 그와 채용계약을 맺지 않았다.      


위 사건에서 채용이 거부된 여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자신이 장애를 이유로 고용상의 차별을 당했다며 진정을 접수하였다. 우리는 위에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격’(진정직업자격)을 충족하는데 성별이나 장애가 문제 된다면 이를 이유로 차별을 하더라도 정당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보업체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 자신들에게 서비스를 맡기라고 설득할 때, 손에 있는 화상 자국과 손가락의 개수가 영향을 미칠까? 적어도 몇몇 고객에게 손의 모양은 무의식적으로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홍보대행사의 사장, 즉 이 진정사건의 피진정인은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하는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게 진정인과 채용계약을 맺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렇게 말한다.  


"피진정인은 진정인의 장애 존재와 업무수행 성질상의 불가피한 인과관계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단지 고객 중심인 서비스업 특성상 왼손에 장애가 있는 진정인이 위 업무를 수행하기 곤란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는 단순히 고객의 선호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에 해당할 뿐 특정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없다." (2009. 11. 6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08진차1213)      


(밑줄은 내가 그었다) ‘단순히 고객의 선호’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고객 중 누군가는 장애인을 싫어할 수 있다. 화상 입은 손을 가진 홍보대행사 직원,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전화받는 상담원, 휠체어를 탄 변호사를 싫어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때문에 ‘죄 없는’ 사업주는 일정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우리는 이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고객의 선호는 설령 사회 전반에 퍼져있어 우리들을 지배하더라도, 이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차별은 누군가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부당하게 기회를 빼앗으며, 자신이 바꿀 수 없거나 바꾸기 아주 힘든 속성이나 신념체계에 대한 자부심을 훼손한다. 따라서 고객님들의 취향이 설령 일정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자격’에 고객님들의 취향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건 고객님들이 취향을 바꾸셔야할 일이다.          


161센티의 스튜어디스          


항공사 스튜어디스를 꿈꾸던 여성의 신장은 161센티였다. 그러나 2008년 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공사들은 모두 입사기준 162센티 이상의 신장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스튜어디스로 일하는데 키는 꼭 필요한 조건일까? 앞서 말했듯 이것이 ‘진정직업자격’이어야 함을 사업주는 입증할 의무가 있다. 스튜어디스를 꿈꾸었으나, 162센티 보다 조금 작은 키를 가진 여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최근까지도 남아있던 승무원 채용 조건 162cm 이상의 키. 161. 5cm의 키를 가진 용기, 전문성, 사명감 넘치는 승무원 지원자들은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항공사들은 162센티의 키를 요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항공기 내부는 사용 가능한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승객 수하물, 구급장비 등을 기내 상층부에 위치한 적재함에 수납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객실 승무원은 일상적으로 적재함 개폐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비상상황 발생시에는 적재함에 비치된 용품들을 꺼내어 신속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적재함의 높이는 대개 200cm를 넘고 기종에 따라 최고 214cm에 이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스튜어디스의 키는 162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      


타당한 이유처럼 들린다. 그러나 주의하자. 어떤 일에 ‘꼭 필요한 자격’인지를 인정하는 일은 아주 까다롭다. 이 사건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음의 사실을 검토한다. 1) 만약 상층부의 적재함을 열고 닫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키뿐만 아니라 팔을 위로 뻗었을 때(arm rich)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2) 외국항공사들도 진정을 당한 국내 항공사들과 유사한 비행기 기종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왜 162센티 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가?  다른 나라 항공사들은 아예 신장기준이 없거나 있어도 157센티 정도인 경우가 많았다.                   


위의 질문을 검토한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는 항공사들이 162센티미터로 고정된 채용기준을 모든 지원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162센티 보다 키가 작은 지원자들에 대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항공사들은 사실 지원자들을 의도적으로 차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차별이 주는 파급력은 크다. 161센티미터의 키에, 순발력과 외국어 능력, 비상상황에 대한 침착한 대응력을 가진 수많은 지원자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키를 이유로 항공 승무원이 절대로 될 수 없었다. 


인권위원회는 이렇게 덧붙인다.            


"피진정인들이 차별의 의도를 가지고 객실 승무원의 신장 기준을 정하였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별판단에 있어 이와 같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이유는, 국내의 대표적 항공사인 피진정인들의 채용기준이 국내의 소형항공사 및 승무원 양성 교육기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등 사회적 파급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객실 승무원에게는 신장 조건 외에도 체력조건, 외국어 능력, 비상시 대처능력, 서비스 정신 등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피성이 입증되지 못한 신장 조건을 근소한 차이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신장 162cm 미만인 사람이 응시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2008. 3. 24.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07진차436(병합))


차별은 악의적이지 않은 의도로 일어날 수 있지만, 차별을 받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2015년에는 대한항공마저 162센티 기준을 삭제함으로써, 이제 몇년전에 태어났다면 스튜어디스가 절대로 될 수 없었을 161센티미터의 재능있는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결과는 좋았지만, 사실 162센티 기준은 정말 높은 곳에 비치된 물건을 꺼낼 사람을 뽑기 위해서인가? 우리는 '고객님의 취향' 따위는 차별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가 아님을 확인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아름답고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로부터 서비스를 받기 원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162라는 숫자는 적재함에 닿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움의 수치이다. 


다음 글에서 외모에 따른 불평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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