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암사자 Apr 21. 2023

인재를 모시고 싶은 건 회사니까

초단편 소설 #8. 금요일

"여보. 왜 빈손으로 들어와요."

"아, 준우 면접이 내일이구나. 오늘 인천까지 면접 다녀오느라, 지쳐서 홀랑 잊어버렸네. 금방 요앞 마트 가서 사올게요."

"저번에 준범이 취업 면접 때 사왔던 썬키스트 병음료 세트는 별로였어요. 한 병당 가격은 꽤 나가는데, 면접 보러 온 대표들이 긴장해서 반도 안마시고 남겨 놓기 일쑤고. 나중에 일일이 남은 음료 따라내고, 재활용하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그럼 그냥 옥수수수염차나 포카리스웨트 2리터짜리 서너병이랑 종이컵 한 줄 살까요?"

"그래요. 급한 게 회사 대표들이지, 인재들이 아니니까요. 너무 겉치레로 돈 쓰지 맙시다. 대신 엄마손파이랑 마가렛트 같은 상자과자들 좀 넉넉히 사오고요. 아차차, 카라멜 사탕은 됐어요. 준우 취직하는 회사들은 IT 스타트업이라 대표들이 젊대. 당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아. 면접 때문에 너무 돈을 많이 쓰는 것도 좋게 보이진 않아요."

"이번엔 면접비 봉투가 몇 개려나... 준우 현금도 넉넉히 뽑아뒀대요?"

"준우가 현금 필요 없대요. 면접 보고나서 바로 토스페이로 쏜대."

"준범이 때랑 다르네. 업종이 달라서 그런가."

"그리고 우리 셋째 신입 인재로 면접 보면, 집에서 말고 대관을 해요. 요 옆에 결혼식하고 돌잔치하는 건물있지요. 거기서 요즘은 면접 대관도 한대. 돈만 더 내면 면접자들 대기공간도 따로 주고, 사람 한 명 더 쓰면 순서대로 면접자 입장도 시켜주고. 전업 가정 채용 지원팀을 인재 부모 중 한 사람이 해야 된다는 것도 옛말 됐대요. 외주를 줘야지."


초옥빌라 501호는 다음날 있을 면접 준비로 부산한 분위기였다. 준우의 부모 세대의 경우,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쓰고, 그 이력서가 간신히 통과되어야만 직접 찾아가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졌었다. 회사 몇 십군데를 돌고서야 간신히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다. 출산률 저하로 인구가 급감한 것도 이유였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인재에 대한 가치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여 존엄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사들은 발빠르게 채용문화를 바꿔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 회사 중 몇몇은 꽤 규모가 있는데도, 인재들로 대를 잇지 못하는 바람에 무너져버렸다. 초창기엔 과장급의 '인사담당자'들이 인재 면접을 위해 가정 방문을 했다. 그러나 각 회사들의 인재 채용 경쟁이 치열해지자, '인사담당자'의 방문이 '성의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그에따라 대표가 직접 움직이는 수 밖에 없었다. 회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많은 수의 신입 인재가 필요한 경우엔 대표의 주요 업무가 '면접 외근'이 되었다. 면접 외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대표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더라도 가차없이 쫓겨났다.


"엄마, 아빠. 죄송한데 목소리 좀 낮춰주세요. 저 지금 서류 최종 검토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네요. 요즘 회사들에서 매출 자료를 일부러 부풀린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대표가 직접 회사 소개서, 인재 채용 사유서를 작성하지 않은 성의 없는 곳들도 눈에 띄고요. 대행사 껴서 대필한 곳은 너무 티가 많이 나는데, 왜 이렇게 한심하게들 하는지..."


준우는 줄곧 예민한 상태였다. 2주 전 국내 최대 공채 사이트인 '삼고초려'에 '회사 공개 채용' 공고를 올린 이후 그랬다. 첫 회사는 한 인간의 인생과 경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준우의 비전이나 실력에 맞지 않는 수준 낮은 회사들도 제안서를 무지막지하게 보내왔던 것이었다. 그는 자격미달인 회사들을 걸러내는데만 꼬박 7시간을 써야했다. 그렇게 걸러내고도 백여 곳이 넘는 회사가 준우의 수중에 남았다. 그는 꼼꼼하게 회사가 보내온 매출 자료와 최근의 성과들을 살폈다. 특히 대표가 직접 작성해야만 하는, '인재 채용 사유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리 제안서 내용이 좋더라도 사유서 중 오타가 두 개 이상 발견되면 그 또한 면접 대상에서 가차없이 제외됐다.  


라벨이 제거된 생수 묶음을 조용히 뜯던 준우의 엄마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준우 아빠에게 말했다.


"당신, 며칠전에 회사 대표 대신해서 면접 다녀왔다면서요?"

"어휴. 대표가 일부러 면접 일정 맞춰서 해외 출장을 도망치듯 가버린 탓에, 이사인 내가 급하게 인재 모셔오려고 면접 다녀왔었죠. 대단한 인재이긴 했어요. 나 바로 앞 면접 회사는 여든 된 회장이 직접 왔는데, 얼마나 압박 면접이었는지 우는 것 같았더라니까. 물론 나랑 눈 마주치고서, 안검하수라 눈물이 자주 흐른다고 둘러대긴했지만 분명히 압박 면접 때문이었어."

"그래서, 인재는 모셔왔어요?"

"그럴리가. 일단 대표가 아니라 이사가 왔다는 데서 마이너스. 게다가 압박 면접에 준비도 안되어 있던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였겠어요. 인재의 취미, 특기까지는 어찌어찌 외워서 갔는데... 시력을 홀랑 잊어버린 거예요. 대충 0.8이나 0.9 정도로 말했더니, 바로 '수고하셨습니다' 하더라고. 대기실로 나와서 물어보니까, 알고보니 그 인재 양쪽 눈이 모두 2.0이래. 일부러 도수가 없는 안경을 끼는 걸 선호한다고."

"날이 갈수록 인재 모셔오기가 쉽지 않네요."


준우 엄마는 프린터한 종이 몇 장을 꺼내들었다.


"당신 이제 마트 갈거니까, 가는 길에 이걸 좀 잘 보이게 붙여둬요."


스카치 테이프를 챙겨든 준우 아빠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종이 위엔 커다랗고 빨간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면접 가는길'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는 이 화살표만 봐도 지난 압박 면접의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골목이 시작되는 담벼락에 화살표가 인쇄된 종이를 붙이는데, 한 남자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면접 있나봐요."

"아, 예."


준우 아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면접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인재를 채용하지 못한 회사들 혹은 헤드헌터들이 집적거리곤 했다. 남자는 준우 아빠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얼쩡거리다, 결국 준우 아빠의 바지 주머니에 명함 한장을 꽂아넣고 달아나듯 떠났다. 회사에서 이사인 준우 아빠도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주머니에 넣어둔 명함을 보지도 않고 구겨 바닥에 던져버렸다. 바닥엔 온갖 전자 명함들이 구겨지거나 밟힌 자국이 있는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각종 회사들의 제안서를 열람할 수 있는 전자 명함이었다. 


날이 밝았다. 준우는 늦게 잠이 들었는지, 면접 시간이 다 되어서야 느즈막히 일어났다. 전업 가정 채용 지원팀의 팀장인 준우 엄마는 준우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첫 번째 면접 회사가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이르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열의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네요.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회사의 브랜드 컬러가 그린인 IT 회사였다. 대표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형광 녹색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창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에 그의 옷 색깔이 더 번뜩이는 듯 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준우를 향해, 방아깨비 같은 회사 대표가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소리치듯 얘기했다.


"꿈을 그린(green) 회사, 초록애입니다!"


준우가 그리 주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회사였다. 준우는 회사의 제안서를 뒤적이며, 그에게 1분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초소형 빔프로젝터와 태블릿PC를 꺼내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화면에 띄우기 위해 꾸물거렸다. 준우는 그저 회사의 서류를 간단히 훑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데, 그가 꽤 오랜 시간을 쓰는 바람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냥 말로 하세요. 1분 자기소개서 모릅니까?"

"다른 회사와 차별화를 위해, 인재님을 위해 밤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는데요... 그게, 배터리가..."

"인재 채용 후에도 이러실겁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잘봤습니다. 그냥 나가셔도 좋습니다."


대표는 거의 울먹이는 듯 했다. 준우의 바지가랑이라도 잡으려는 때, 방문이 열리며 준우 엄마이자 전업 가정 채용 지원팀 팀장이 들어와 그를 문 밖으로 끌어냈다. 1분 뒤 다음 회사 대표가 들어왔다. 그의 복장은 과하지 않은 정장 차림이었다. 준우는 지난 밤 서류를 검토하며, 이 회사와 관련해 자신이 메모해둔 것을 발견했다. 준우는 역시 회사 대표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류만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삼십대네. 젊은데, 회사 끝까지 책임질 자신 있어요?"

"당연합니다!"

"요즘 작은 회사 대표들은 끈기가 없잖아요. 어느 정도 성장했다 싶으면 팔아버리고, 도망가다시피 하는데. 인재 입장에선 그런 게 보기가 좋지 않아요."

"그럴 리 없습니다!"

"좀 체격이 커보이는데, 건강 관리는 해요? 보기엔 안해보이는 것 같은데..."

"운동 좋아합니다! 요즘 큰 투자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좀 부은겁니다."

"대표는 회사의 얼굴인데, 이건 큰 마이너스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준우의 압박 면접이 이어졌다. 거실에 마련된 임시 대기실에, 차례를 기다리는 대표들이 긴장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그 중 몇몇은 이번 인재 채용을 실패하면, 대표직이 위태로운 사람도 있었다. 오전 반차를 내어두고 면접 일을 돕던 준우 아빠가, 부엌 벽에 기대고 있던 준우 엄마에게 살며시 다가가 속삭였다.


"내가 준우 모시러 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네요."

"인재를 모시고 싶은 건 회사니까, 이정도는 감수해야지요."


현관문이 열리며,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대표 하나가 또 들어왔다. 준우 엄마는 거실에 놓인 의자 중 하나에 그를 안내했다. 오늘 면접은 늦은 밤까지 예정돼 있었다. 준우의 체력이 모자라면, 그 마저도 내일로 미뤄질 일인지도 몰랐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먹어,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