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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전쟁

서로의 마음에도 비밀번호 전쟁이 있을 것이다.

by 이단단

오랜만에 랩탑을 꺼낸다. 근 한 달 만이다. 지난번 북카페에서 글을 쓰고 나서는 계속 열어보지 않았다. 열어보기 겁났다고 할까. 핑계일까.

1년 동안 일을 하고 퇴사를 앞두니 그동안 묻어두었던 글을 쓰고 싶어졌다. 카페를 찾고 있는데 이런! 럭키다. 집 앞 도보 1분 거리에 새로운 장소가 생겼다. '비문'이라는 뜻을 가진 멋진 서점 겸 카페다. 나는 이곳의 분위기에 홀딱 반했고 자주 오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다. 이제는 글을 쓰려고 고민 끝에 짐을 쌀 필요도, 그날의 효율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대충 씻고 슬리퍼를 끌고 와도, 생각해 보니 놓고 온 물건이 있을 때도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만난 것이다!


책을 고르고 말을 적고 내 몸에 차오른 글을 쓰기 위해 랩 탑의 전원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그런데 비밀 번호를 계속 틀린다. 나에겐 자주 쓰는 비밀번호가 한 세 종류 이상 되는데, 그것들을 돌려 써보아도 맞는 비밀번호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제 진짜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 틀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얼음상태가 두려운 탓일까. 아니면 카페인으로 인한 손 떨림이 지속된 탓일까. 틀린다. 계속 틀린다.... 한 10회 정도 틀리니까.. 계정이 잠겨버렸다.

'참조된 계정이 현재 잠겨 있으므로 그 계정으로 로그온 할 수 없습니다.'

머리를 감싼다. 모든 게 멈춘 느낌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지금 글을 써야 하는데, 초조해진다. 사람이 조급해지면 늘 그렇듯 시야가 좁아진다. 앞의 상황만 생각하게 된다. 당장 휴대폰을 켜 검색했다. 내가 본 글자 그대로 쳐 넣었더니 나보다 먼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이 올린 질문이 여럿 뜨고 성실히 답변해준 사람들의 글 또한 주르륵 뜬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10분이나, 한 시간을 기다리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다.

어떻게든 기다려 본다. 책을 읽으며 10분. 다시 10분. 그러다가 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결국 쓰고 있었던 비밀번호는 찾지 못했고, 새로운 암호를 설정했다. 접속은 겨우 됐다.



접속창이 뜨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문득 생각했다. 사람들의 마음도 비슷한 거 아닐까.

각자의 접속 비밀번호가 다른데, 그곳에 들어가려면 패스워드를 쳐야 한다. 그중엔 맞는 번호도 있지만 대부분 틀린 번호를 반복해서 친다. 그러다가 계정은 잠겨버리고, 차단되어 버린다. 자신감은 점점 떨어진다. 운이 좋으면 오해를 풀고 다시 새로운 암호설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에 접속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차단된 계정 그대로 포기하며 지내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새로운 암호설정은 글 쓸 때만큼 집요하게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 인간의 마음 속에서도 오늘 같은 비밀번호 전쟁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어떠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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