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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혁건 Feb 03. 2017

제3장 아버지가 전하는 아들이야기

나는 오늘도 너의 힘으로 걷는다.

얼마 전 아들 공연을 위해 청주에 다녀왔다. 

무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몸살이 났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결렸지만, 아들이 속상해 할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아들 공연이 지방에 잡히면  늘 내가 운전해서 이동하곤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더 빨리 지치는 것 같다. 



한 번은 안동에서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점심을 잘못 먹었는지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식은땀이 계속 났다. 

아들은 당장 어디 병원 응급실에라도 가자고 했지만, 내가 병원에 가면 아들이 혼자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꾹 참고 서울에 도착해 응급실을 찾았다. 

아들이 사고를 당하고 나는 당연히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아들을 뒷바라지 하겠다고 결심했다.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그저 살아만 준다면, 내 곁에 있어준다면 뭐든 하겠다고 한 맹세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10년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내 나이가 벌써 66세이니 금방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아들이 노래도 하고 강연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놀라운 기적을 이룬 거지만 아직도 조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목 앞뒤에 사다리 모양의 지지대로 생명줄을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목을 한 번 더 다친다면 바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혹시 다시 목이 부러지진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하다. 

몸을 단단히 묶지 않으면 휠체어에서도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질 수 있고, 쓰러져도 자기 힘으로는 몸을 조금도 일으킬 수가 없으니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아들을 지켜봐야 한다.      



한번은 보험금을 예치하려고 아들을 데리고 은행에 간 적이 있었는데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를 타고는 은행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는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아주 불쾌해 했다.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다. 


장애에 대한 인식과 편의시설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말이 무색할 때가 많다. 

이동로 확보가 안 되어 갈 수 없는 곳도 많고, 경사로가 없어 식당도 편히 들어가지 못한다. 

식당에 들어가서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식사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한다. 

세상이 조금만 더 친절해진다면 장애 자식을 가진 부모도 마음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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