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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랭 Aug 12. 2021

[너라는개행복해]1.벌써 열한 살이랍니다.

쿤이, 미뤄뒀던 건강검진을 받다.


2019년 여름이었다. 

쿤이가 자꾸만 앞을 못 보고 넘어지고 부딪치는 일들이 많이 생겼다. 자주 가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핵경화 진단을 받았다. 핵경화는 수정체가 뿌옇게 변하는 병인데 눈으로 보기에만 하얗게 될 뿐 시력은 소실되지 않는다. 쿤이도 눈이 하얗게 되는 것뿐 시력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고 몇 개월쯤이 더 흘렀다. 


부딪치는 일들은 더 많이 생겼고 밤 산책을 하면 나나 오빠를 못 보고 지나치거나 깜짝 놀라 짖는 일도 생겼다. 느낌이 좋지 않았고 강아지 정보공유 카페를 통해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안과 전문 동물병원에 가게 되었다. 역시나 백내장이었다. 한쪽 눈은 망막박리의 위험이 있어 가능하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하셔서 유지하기로 하고 나머지 한쪽만 수술을 했다. 그렇게 또 2년이 흘러 쿤이는 열한 살이 되었다.


열한 살이지만 내 눈에는 한 살인 쿤이!


건강검진은 나이가 많을수록 매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차일피일 미뤘던 이유는 겁이 나서였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강아지가 마취를 한 번 할수록 수명이 깎인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오빠가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병원에 가기 어렵다는 핑계와 카드값을 내야 한다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을 핑계 삼아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하게 된 이유는 때마침 집 근처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큰 병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걱정하던 부분, 무마취로 검사가 가능한 곳이었다.


상담을 기다리며 얌전한 쿤이


쿤이는 열한 살, 그러니까 분류하자면 노견이다. 

노견은 모든 부분에서 병이 찾아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검사도 조금 더 많이 한다. 쿤이는 7세 이상에게 추천한다는 건강검진 C를 선택했다.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비롯해 항체가검사, 혈액검사, 호르몬검사, 분변/소변검사 방사선 검사, 복부초음파, 심장초음파를 보게 된다.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던 지난 2년 동안 쿤이에게는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가끔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켁 하고 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졌고 몸 이곳저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피부에서 삐죽 튀어나와있었고 어떤 것은 피부 안쪽에서 동그랗게 잡히는 그런 것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희한하게도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봤지만 '악성종양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않아요'와 '나이가 들면 으레 많이 생깁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몸에 생기는 종기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답답함만 계속 늘어갔다. 


또 좋아하는 황태, 닭가슴살, 시저 캔을 줘도 밥을 거부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젖은 수건처럼 몸을 늘어뜨린 채 침대에서 해가 뜨는지 해가 저무는지도 모르게 잠을 자기도 했다. 이상한 기침과 몸에 늘어나는 종기들 그리고 식사 거부까지 나이 들어가는 강아지들에게 자주 보이는 모습이라지만 이 모든 것을 처음 겪는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걸어 나왔던 것을 후회했다.


이런 걱정들을 이번 건강검진을 통해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진료예약을 했다. 

건강검진 비용은 병원 시설이 좋은 만큼 꽤 비쌌다. 하지만 돈은 아무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쿤이가 덜 힘든 곳에서 진료를 받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확실한 결과를 듣는 것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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