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주지 못한 것들
살면서 이렇게 많이 울었던 생일이 있었을까.
9월 25일 나의 생일.
생일 전날 일부러 백신을 맞았다. 생일이 주말에 끼어있어서 백신을 맞은 김에 푹 쉬어야지- 라는 심산으로 일부러 일정을 그렇게 잡은 것이었다. 쉰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서두를 것도 없었다. 백신을 맞는 시간은 10시였고 접종장소도 집에서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라서 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쿤이 공원 산책+첸 뒷산 산책을 시킨 뒤 청소를 하고 여유롭게 백신을 맞으러 갔다 왔다. 화이자를 맞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오후에는 강아지들을 양쪽에 끌어안고서 행복하게 낮잠을 푹 많이 잤고 저녁에는 '생일 전날이니까 내가 쏜다!'라며 식이와 마약 옥수수 피자를 시켜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건은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 그 시간에 갑자기 터졌다.
저녁 10시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쿤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함을 느꼈다. 허공에 발짓을 하는 게 전에 망막박리가 와서 실명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쿤이를 급하게 잡아 눈을 보았더니 왼쪽 눈이 온통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필시 출혈임이 분명했다.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어버렸지만 혹시나 응급처치를 하면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부랴부랴 24시 병원을 찾아갔지만 안과 장비와 안과 전문의가 없어 고혈압 확인이나 외상은 없는지 정도의 확인밖에는 불가능했다. 쿤이를 안고 뛰느라 백신을 맞았던 팔이 얼얼한 것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세요. 선생님!
울다가 잠이 들었는지 아침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침이 되어 9시부터 진료지만 제일 처음 가서 진료를 받으려고 7시 20분쯤 병원에 도착했다(나도 정말 일찍 갔다고 생각했지만 7시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신 분도 있었다). 다행히 두 번째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안압 체크와 눈물양 검사, 초음파 검사, 안저검사를 했다. 예상대로 안내 출혈이 발생했고 망막박리가 보이는 듯하는데 앞쪽에 피가 고인 것이 빠지지 않아 정확한 체크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하셨다. 안약 4종류와 먹는 약 3일 치를 받아왔고 월요일까지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때 한 번의 실명으로 이미 겪었던 마음이었지만 경험했다고 해서 태연 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또다시 병원 정기점검에 늦은 것을 후회했고 눈 영양제 구매를 미뤘던 것을 후회했다. 집으로 돌아온 쿤이는 앞이 보이지 않아 몸을 잔뜩 낮춘 채 조심스레 걸어 다녔고 이곳저곳을 쿵쿵 부딪쳐가며 공간을 익혀나갔다. 나는 일단 쿤이에게 위험한 작은 가구들과 물건들을 치우고 급하게 온라인에서 벽 쿠션이나 부딪침 방지 꼬깔을 폭풍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넣었다.
'내가 쿤이를 지켜줘야 해'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나는 당장 일을 하러 월요일부터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앞이 안 보이는 쿤이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잘못되어 안구 적출을 해야 한다면 어쩌지, 이제야 조금 살만해지나 했는데 쿤이가 또 수술을 해야 한다면 이제 정말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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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생일(하) 편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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