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랭 Nov 13. 2021

[너라는개 행복해]4. 눈물의 생일(하)

기적의 강아지


쿤이의 첫 번째 시력 소실, 눈앞에 있는 나를 찾지 못하고 허공에 발짓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었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늦은 시간 안과 진료가 된다고 하는 병원을 찾았지만 '시력이 없다'는 말뿐, 특별히 치료방법이 없었고 밤새 울다가 

부산에 있는 유일한 동물 안과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쿤이를 안고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하지만 쿤이는 치료를 시작하고 1주일 정도가 지났을 즈음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았다.

우리는 그것이 대단한 기적이라고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기적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적이라거나 운명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처럼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두 번의 기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쿤이의 두 번째 시력소실은 더 이상의 기대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더욱더 절망적이었다.

'왜 하필 쿤이에게 이런 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절망의 틈에서


3일 치 약을 받아 먹이고 약을 넣고 또 진료를 보고 또 5일 치 약을 받아오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눈이 보이지 않는 쿤이를 집에 둘 것인가, 아니면 차를 태워서 사무실에 데려올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기도 하고

(익숙한 공간에 두는 것이 좋다고 하여 집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해 주었다)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는 넥카라가 있어 주문제작을 시키고 

벽이나 뾰족한 모서리에 부착하는 쿠션도 열심히 찾아보고 주문을 했다. 매일 택배가 집 앞에 쌓였다.

그러면서 안과 질환에 도움을 주는 영양제를 해외직구로 구입하고 첸과 쿤이가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분리 산책을 시작했다.


주문제작한 부딪침 방지 넥카라. 하지만 무겁고 불편해 해서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하던 일들도 제쳐놓고(사실 집중을 못했다에 가깝다) 쿤이의 생활에 집중했다.

특히 하루 종일 머물러야 하는 집 공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켰는데 나중에는 혼자서 화장실도 찾아가고 소파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대변을 보고 밟고 나오거나 화장실을 찾다가 애매한 곳에 오줌을 싸 버리는 일이었다.

특히 대변은 밟고 나와서 소파에 올라가는 바람에 온 소파에 똥칠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나중에는 그게 쿤이 자기도 싫었는지 

대변을 참기 시작하며 매일 아침저녁 실외 배변을 위해 산책을 해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들은 가끔 우울증에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어 산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소리'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산책을 하는 내내 뒤로 걷기+이름 부르기를 하며

쿤이가 산책을 잘할 수 있도록 애썼다. 우리는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아마도 첸은 좀 답답했을 것이다.


변화는 조금씩 찾아왔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맑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빛에 대한 반응은 살아있네요'라는 결과를 들었다. 그게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가능하면 쿤이는 날이 밝을 때 산책을 시켜주려고 아침 출근 전에 1시간씩 산책을 시키고 출근을 했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대단한 변화였다.




어라? 이상한데?


치료가 3주 차에 접어들었을 즈음 조금씩 이상한 변화가 있었다.

하루는 쿤이가 혼자 안방 문이 열려있는 사이에 안방으로 들어가 늘 함께 자는 침대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우리 침대는 꽤 높은 편이라 쿤이가 감으로 올라갔다고 해도 그 침대를 찾아가기까지 꽤 어려웠을 텐데... 그때부터 쿤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조금 이상했다.


"오빠. 쿤이 말이야. 보이는 것 같은데?"

"왜?"

"봐봐, 이제 잘 안 부딪쳐"


확실한 증거는 첫 번째 실명 때처럼 계단이나 턱을 혼자 보고 올라가는 것인데 우리는 혹시 몰라서 산책을 시켜보았고

쿤이는 작은 턱을 혼자서 폴짝, 하고 뛰어올랐다.


"보인다!! 보여!"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웃었다. 그 이후로 쿤이는 점점 좋아졌다.


그리고 진료를 받는 날, 선생님께 기쁜 목소리로 '쿤이 시력이 돌아왔어요!'라고 말씀드렸고 검사 결과 안압도 염증도 모두 정상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눈 관리를 더 철저히 해 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쿤이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이제는 우리를 바라보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식이를 좇아가겠다고 나를 질질 끌고 가기도 했으며 낯선 강아지를 보고 엉덩이 털을 쭈뼛 세우기도 했다.

이 평범한 일들이 모두 대단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쿤이의 실명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다.


눈이 좋아져서 엄마 사무실에도 놀러갈 수 있게 된 쿤이



쿤이라 쓰고, 기적의 강아지라 읽는다


놀랍게도 이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쿤이의 시력소실은 한 달이 조금 넘은 뒤에 또 한 번 찾아왔다. 무려 세 번째 시력소실이었다.

그날은 아무 전조증상도 없이 찾아왔다. 그때처럼 충혈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염증으로 뿌옇게 된 쿤이의 눈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식이도 나도 두 번의 경험으로 쌓은 내공이 있어 섣불리 아무 병원이나 찾아가서 응급진료를 받거나

엉엉 울면서 자책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동물병원으로 찾아갔고 이번에는 염증이 심해져 시력이 없어진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정확히 3주 뒤, 쿤이는 또 한 번 기적적으로 시력을 찾았고 수의사 선생님도 인정하는 '기적의 강아지'가 되었다.

(선생님 피셜, 보통 이렇게 자주 시력이 없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회복되는 일도 드물다고)


언제 또 네 번째, 다섯 번째 시력소실이 올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쿤이가 우리를 보고 우리가 쿤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났다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에게는 충분히 기적이다.




#노견 #강아지백내장 #강아지실명 #강아지눈건강




매거진의 이전글 [너라는개행복해]3. 눈물의 생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