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위스키 - 01
시계가 발명되고 나서부터 사람들은 시간에 제어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전 3500년 경의 오벨리스크로부터 시작해, 17세기 기계식 시계의 보편화 후 20세기에 이르러 손목 시계가 상용화되기까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시계’란 것이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타임라인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기원전부터 우리 인간들은 앞으로 흘러갈 시간에 대한 예측과 대비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수능 대비 비문학 지문을 읽던 중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이 ‘시간의 측정과 통제’에 관한 글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시절,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분리가 명확해진 주요한 원인이 ‘시계의 보편화’라 했다. 본래 사람들은 약속을 잡을 때 ‘~시에 만나’가 아닌 ‘해가 반쯤 넘어갔을 때 만나’라는 식으로, 기계 작동에 근거한 정확한 시점이 아닌 자연 현상에 근거한 대략적인 시점으로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시계가 없었더라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시급’이나 ‘월급’이라는 개념이 생기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일 뿐더러, 그러니 노동의 개념이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 하는 것’이라기보단 ‘목표한 결과물을 낼 만큼 일하는 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시계의 발명은 곧 통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근로의 개념이 곧 ‘통제’라는 개념과 일치하게 된 덕에, 나는 밤과 싸우게 되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한 덕분에 밤에 깨있는 것을 더더욱 기피하게 되었다. 사실 다음 날의 근로 일정이 꼭두새벽 아침부터 시작되지 않는다면, 밤에 깨어 있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불면’이란 본질적으로 자야 할 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상태인데, 이 ’자야 할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불만이 생기고야 말았으니, 현상태를 개선할 노력보다야 괜한 반골 기질만 질겨지고 만 것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며?
그럼 깨어 있는 밤에 나는 무얼 하는가, 생각해보면 그야 말로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12시쯤 잠에 들지 못한 나는 기어이 위스키 한 잔을 따른다. 잠들기 용으로 한 잔,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아 또 한 잔, 애초의 목적성에서 벗어나 애매한 취기로 과거 여행을 떠나기 시작하면 또 세 잔, 네 잔… 낮엔 몽롱하고 도리어 밤엔 또렷한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차라리 이런 생활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밤과 싸우는 그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순수했으며, 그러나 밤이 지나면 생판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오늘 밤 마신 위스키가 내일 아침 붓기와 살로 붙어있을 걸 고민하던 나처럼, 지난 밤 즐겁던 그들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행여 지난 시간의 흔적이 오늘의 나에게 묻어 있을까, 지난 밤 쏟아 놓은 내가 오늘의 나를 신명나게 잡아 먹지 않을까, 그러니 결국 제멋대로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밤의 시간은 시계가 아닌 노래로 재곤 했다. 한 곡이 끝나면 위스키 세 모금, 위스키 열 모금이면 한 잔, 위스키 한 잔이면 네 곡째, 그렇게 스무 곡이 쌓이면 이제 다음 날로 갈 시간. 그러니 이 이야기는 노래처럼 흘러가 기록으로는 남지 않은,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남은 그저그런 사람들의 밤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