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타키타니> - 늘 그렇듯, 혼자이며, 평화로이
그 레코드 더미가 사라지자, 토니 타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외톨이가 되었다.
외로움의 종류;
평화를 두려워하는 인간과, 평화로부터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인간-
평화를 가장한 무료함이 두려워,
상실감으로 무료함을 잊는 사람들이 있다.
‘중독’은 본질적으로 어떠한 ‘결핍’에 기인하는 것이라 했다. 중독자들은 안정되고 평안한 상태를 무료함으로 오인하여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다니는데, 그 대상은 물건이 될 수도(가령, 에이코의 옷 중독과 같은), 어떠한 행위가 될 수도, 또 어느 때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중독자들은 내면의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물질이나 타인에게 의존하지만, 해당 대상이 사라지거나 행위를 중단했을 때에는 더 큰 공허함과 맞닥뜨리게 된다. 결국 그러한 상실감에 매몰되는 것도 중독 행위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
상실감은 역설적이게도 꽤나 강렬한 감정이다. 상실에 빠진 사람은 무력하다. 하지만 그러한 상실감과 무력감의 영향력은 한 인간의 삶을 장악할 정도로 강렬하다.
무언가의 부재에 대한 반응도는 사람에 따라 상이하지만, 중독자들의 경우 애착 대상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아주 강렬하게 표출되는 과정을 겪으며 잔존하는 기억이나 물질적인 흔적들에 과하게 집착하여, 종극에는 지나간 과거의 것들을 남은 삶의 코어로 삼아버릴 수 있다. 평화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은 다음 중독 대상을 찾기 전까진 도리어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의 마음은 늘 그렇게, 무겁게 가득 채워져 있어야만 한다.
그와 정반대 선상에,
평화로부터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인간이 있다.
평화를 가장한 무료함- 무료한 일상과 외로움의 타성에 젖어, 도리어 강렬한 감정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무거운 마음을 견디지 못한다. 무겁게 잔존하는 과거의 흔적들까지도.
토니 타니타키의 기계와 그림, 가변적이지 않은 것들. 달리 말하면 완전히 ‘예측 가능한’ 것들이며, ‘부재’라는 말보단 ’처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늘 과거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될 것들. 토니 타니타키에게 물건이란 어떠한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었다. 늘 그렇게 ‘살아 있지 않을’ 것들.
무료한 평화와 무생물같은 외로움에 정착한 그에게, 에이코가 남기고 간 옷들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살아 숨쉬던 에이코의 몸에 얹혀진 옷들은 날개처럼 가볍기 그지없었으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옷들은 상실감으로 남아 검은 그림자처럼 무겁게 그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얹혀진 그림자가 하나, 둘, … 백 몇 개. 토니 타니타키에게 상실감이란 강렬한만큼 무거워서 차라리 기계처럼 처분해버리고 싶은 어떤 것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상실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에이코의 옷장을 비워내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남기고 간 레코드 더미까지 태워 없애버렸을 때,
토니 타키타니는 그때야말로 정말로 외톨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외로움은 옷장에 주저앉아 우는 히사코로,
강렬한 상실감의 현신으로 남아-
그림처럼 가만히, 또 평화롭게,
텅 빈 옷장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