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탁주#3' 시음 후기
신약 개발자가 담근 ‘탁주’는 어떤 맛일까?
한여름 해 질 녘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 처음 ‘국화 탁주’를 받아 들었다. 석양 탓인지 투명 PET병을 뚫고 비치는 색이 마치 ‘마요네즈’ 색감의 부드러운 빛깔이라고 생각했다. 병 크기도 비슷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국화 탁주는 화요일 조찬 운동회 운친인 ‘국희’님이 홈브루잉으로 만든 술이다.
2분 일찍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8년 전 홈브루잉 맥주병으로 사용하다 어쩌면 참기름 병으로 쓸 수 있으려나 하고 보관하던 갈색 내압병 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병 겉 면에는 2013년에 담갔던 ‘Mexican Cerveza’라고 쓴 라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왠지 흐릿하게 주정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해넘이가 시작되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건널목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껑충 큰 키로 서 있는 ‘국희’님을 발견했다. 한 손엔 500밀리 정도 되는 병을 하나 들고 있다. 분명 오늘 받기로 한 ‘국화 탁주’ 일 것이다.
영상 3도 정도의 냉장고 안에서 잘 보관되어 오다, 국희님의 손길에 이끌려 35도의 무더위를 뚫고 10분 정도 상온을 지나왔을 ‘국화 탁주’를 처음 건네받았다. 시원한 냉기가 물방울 맺힌 병을 움켜쥔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진다.
‘국화 탁주’? 국화가 들어갔나? 국화 맛? 국화향?
국희님이 만들어서 ‘국화 탁주’인가?
여러 호기심을 일으키는 곧 처음 맛보게 될 홈브루잉 탁주!
‘국화 탁주’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오는 차 안. 마침 1시간 전 아파트 22층 정상현 운친이 문 앞에 두고 간 청주 내덕동 맛집 육개장이 식탁 위에서 대기 중이니, 멋진 조합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호들갑스럽게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재치고 들어서며 번개같이 의사결정을 시작한다. 냉장고에 다시 넣었다가 더 시원하게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한여름 열기로 생기를 되찾은 효모가 살아있는 ‘탁주’가 더 맛있겠다 싶어 바로 뚜껑을 열었다.
기왕이면 청자 사발을 꺼내 ‘국화 탁주’를 역동적으로 가득 담아봐야지. 엄지 손가락 슬쩍 걸쳐 한 사발 들이키는 상상도 해본다. 현실은 조신하게 사발에 반 정도 채운 뒤, 한 모금 입술로, 혀로, 목구멍으로 ‘국화 탁주’를 받아들였다.
아~ 빛깔이 맑다!
입술 사이로 스미듯 넘어온 ‘국화 탁주’
어! 새콤한 맛이 입안을 깨운다.
탁주 특유의 달큼한 맛도 강하다.
텁텁함은 ‘국화 탁주’에선 찾아볼 수 없다.
목 넘김을 끝내고 코로 내뿜는 되새김 향이
진한 풍미를 더한다.
마치 하나의 맛으로 잘 모아진 오미자 탁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팔아도 되겠다!”
홈브루잉 술의 묘미는 시중에서 파는 술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풍부한 바디감과 풍미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장난처럼 취향껏 다양한 재료들을 가미해 세상 하나뿐인 나만의 술을 담글 수도 있다.
‘국화 탁주_#3’은 아마 세 번째 주조를 의미할 것 같다. ’ 16’은 알코올 도수. 이 정도면 효모로 담글 수 있는 술 가운데 꽤 높은 도수이다(전에 18도 도수의 맥주 ‘발리와인’을 담갔던 적이 있다). 맛있다고 홀짝홀짝 들이키다 보면 금세 취기가 올라 얼굴이 벌게진다.
‘국희’님 : 다음엔 무로 만든 술을 맛 보여드릴게요. ㅎㅎㅎ
당분과 효모가 적당한 온도에서 만나면, 맛 좋은 술이 된다는 게 참 신기하다.
나는 무엇과 만나 더 맛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정말 ‘아제스러운’ 질문을 던지며 국희님의 홈브루잉 ‘국화 탁주_#3_16도’ 시음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