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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로 Mar 08. 2024

루프트한자 파업과 (비)노동의 권리

유럽에서 여행을 하려는 자의 올바른 자세

 유럽, 특히 쉥겐 지역 안에서는 한 회원국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불씨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 며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항공사 루프트한자, 철도사업자 DB가 동시에 파업을 결정하면서 여러 불편함이 야기되고 있는 모양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이자 주요 도시로 가는 관문이기도 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파업 사태는 이 공항을 경유해 파리로 이동하려던 내 계획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전날 자정 무렵에 기습적으로 항공편 차질과 관련한 메일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것이 오전 7시였다. 챗봇으로 출발일 전후 2일간의 대체 항공편을 알아봤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상황, 24시간 연결이 가능하다는 상담센터에 접속했지만 이미 수백 명의 대기자들이 줄을 서있다.

항공권 재예매를 위해 238명의 대기 순서를 기다려 겨우 담당자와 채팅을 시작했지만, 한 마디도 나눠보지 못하고 튕겨나왔다.

 심지어 화면에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대기자 수가 줄어들다가 다시 늘어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누가 디지털로 새치기라도 한단 말인가. 더욱 한심하게도 채팅창 구석에 만족도를 선택할 수 있는 엄지 모양의 아이콘이 있는데, 만족하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주기 위해 눌러봤더니 없는 페이지로 연결이 된다. 업무를 하면서 몇 시간에 한 번씩 체크해 봤지만 끝내 아무런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이런 일이 여기에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이라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는 빈도로 일어난다. 유럽에 살거나 장기간 여행을 한다면 누구나 항공편이 결항해서, 연착해서, 연결편을 시간부족으로 탑승하지 못해서 곤란함을 겪을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항공사나 공항의 파업은 한국에선 생소할지 몰라도 여기선 매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일이다. 항공사 내에서도 파일럿, 정비사, 내근직이 돌아가면서 파업을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파업 같은 경우 지상직 근무자들이 단체행동에 들어간 결과라고 한다. 2019년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이 파업에 들어가 승객들이 연결편에 실을 자기 수화물을 공항의 통제구역 안에서 직접 찾아야 했고, 2022년에는 스칸디나비아 항공사(SAS)의 파일럿들이 단체로 출근하지 않아 사측 관계자가 TV 인터뷰에서 “이제 갓 코로나 시기를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직원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공항이 되었든 항공사가 되었든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항공 서비스를 구매한 쪽과 판매한 쪽이 모두 보기 마련이겠거니와, 역시나 개인적인 시간과 비용의 손실로 얘기하자면 항공기 탑승 예정자가 받는 타격이 훨씬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나 역시 5년이 조금 안 되는 짧은 유럽살이에서 항공편이 딜레이 되어 공항에서 9시간 동안 발이 묶여있었던 경험, 연결편을 놓쳐 그날 밤에 예약한 뮤지컬 관람 일부를 포기해야 했던 경험, 짐이 도착하지 않아 추운 지방에서 외투를 비싸게 샀던 경험, 비행편이 취소되어 다음 스케줄로 예약을 했는데 그 비행편이 또 취소된 경험 등 평생 겪었을 법한 일들을 단시간에 많이도 겪었다. 또한 이를 통해 항공사와 승객 간의 계약 조건과 보상 조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급속히 쌓을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유무형의 보상으로 어떤 여행은 교통비가 0에 수렴하기도 하고, 비싼 북유럽에서 사비로는 타지 않을 먼 거리를 택시로 이동한 적도 있었으며, 30kg에 달하는 수하물을 힘들이지 않고 집 앞에서 받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항공권을 끊을 때마다 금액이 과하다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사건•사고로 보상해 주는 비용이 이미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럽에서 국가의 기간사업에 종사하는 필수인력들은 정부를 압박하거나 여론을 조성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수의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악의 사태로 가지 않기 위해 노사가 물밑작업을 벌이기도 하겠지만 유럽에서의 파업은 사측이 노동자를 오랜 시간 억압해 노동자가 참다 참다 반기를 든다기보다는, 계약서에 적힌 조건과 다르게 현재의 노동조건이 불리해지기 시작하면 노동자가 이에 사보타주(sabotage) 형식으로 갈등 초기에 빠르게 반응한다는 느낌이다. 쌓아놓고 터트린다기보다 바로바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명하나, 매번 누군가는 불편함을 겪어야 하고 그로 인한 손해비용을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지난 2022년의 스칸디나비아 항공 조종사 파업은 15일 만에 일단락된 바 있다. 나도 항공편 환불여부의 결정을 15일 안에 완결지으라는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엉망진창인 유럽 시스템에 기대기보다 내일은 한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루프트항공 한국 지사에 연락을 한 번 부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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