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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어로 Mar 15. 2024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맥도날드를 가보고 싶다면

햄버거로 풀어보는 극강의 노르웨이 물가 이야기

 여느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 번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빅맥지수로 따졌을 때 햄버거가 가장 비싼 나라는 어디일까? 정말 햄버거 세트메뉴 하나에 만오천 원이 넘어갈까? 물가 하면 한가닥(?)한다고 자부하는 노르웨이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맥도날드의 메뉴들은 - 최근 다각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 속칭 “정크푸드”, 즉 건강을 해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에서 여행자들이 이 세계적인 체인점의 햄버거를 찾는 이유는 바로 “내가 알고 있는 맛”을 현지의 식재료로 최대한 동일하게 구현해 내는 그들만의 비법과 “모르는 식당에서 생소한 메뉴로 실망하지 않겠다”는 위험회피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태국의 콘파이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도 판다고)나 한국의 불고기버거처럼 현지에 특화된 메뉴를 굳이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싸고 간단하게 한 끼 때우려고 고르는 메뉴가 햄버거일 수도 있겠으나, 노르웨이에서 햄버거는 그리 만만한 메뉴가 아니다. 일단 노르웨이에서 햄버거집의 이미지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수제버거를 취급하는 곳으로, 작은 패밀리 레스토랑을 생각하면 된다. 세트메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있더라도 버거와 감자튀김 정도만 함께 제공되고 음료는 별도로 주문해야 하는 곳이 많다. 틸베회르(tilbehør)라 불리는 “곁들임 메뉴”에는 소스, 케첩, 심지어 소금이나 후추까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음료는 됐고 그냥 수돗물을 달라고 해도 가격은 우리 돈 2만 원을 훌쩍 넘어가기 시작한다(물값을 받지 않는 것과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식문화가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탄산음료를 추가하면 총액은 3만 원, 호기롭게도 맥주를 마실 양이라면 5만 원이 넘어가는 지출을 생각할 정도의 배포가 있어야 한다. 맛있게 먹다가도 ”이 돈이면 재료를 사서 집에서 만들어먹는 게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외식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역시 이 나라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이런 일반적인 “버거 하우스“를 제외하면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그나마 금전적으로 접근성이 좀 있는 편이 속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이 확 싸지만도 않다. 일반 매장에서 빅맥세트는 오늘자로 109 크로네, 우리 돈으로 약 13,600원 정도 한다. 우리나라 맥도날드 빅맥세트가 2024년 1월 현재 6,900원, 점심시간에 주문했을 때 런치메뉴로 6,100원이니 두 배로 비싼 것이다. 저렴하지 않을 양이면 크기가 작지를 말던가. 딱히 한국의 빅맥버거에 비해서 사이즈가 크지도 않다. 업장에 따라서 매장 내 식사를 하는 경우 포장주문보다 가격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싼 메뉴를 주위에서 찾자면 푸드 트럭에서 서서 먹으라고 파는 메뉴나 식사라기보단 분식의 범주가 적당할 먹거리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Meny라고 적힌 가격이 한국의 세트메뉴에 해당한다. 20-40% 정도 더 비싼 메뉴도 있으니, 빅맥세트는 맥도날드에서 비교적 저렴한 메뉴에 속한다. 출처:노르웨이 맥도날드 앱

 상황이 이러니 외식 자체가 이 나라 사람들에겐 특별한 행사가 된다. 직장 동료들에게 외식을 얼마나 자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한 명이 ”글쎄, 3개월에 한 번 정도 할까?“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다른 동료가 “에이, 그건 너무 심하잖아.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하지”라고 말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정작 질문을 던진 나 혼자 고요히 침잔해 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다만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주말이 ”프랜차이즈 햄버거 먹는 날“이 되는 경우는 더러 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첨언하자면 노르웨이, 좀 더 넓혀서 북유럽은 일반적으로 한국만큼 외식을 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고, 대략 중위층 이상의 벌이를 하고 있는 나 스스로도 외식을 한 번 하기로 했을 때 마음이 그다지 가볍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개개인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며, 외식의 빈도가 가계소득과 식도락에 관한 관심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북유럽에서 맥도날드의 사회적 위상은 어떠할까. 맥도날드 브랜드가 노르웨이에서 규모가 좀 되는 모든 도시에서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있더라도 업장이 시내 중심가나 큰 쇼핑몰에 마치 미국 문화의 아이콘인양 들어가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해를 맞아 압구정에 문을 연 맥도날드 한국 1호점을 그려봄직하다. 혹여 그게 너무 큰 비약이라면 비교적 최근에 한국에 진출한 파이브 가이즈를 찾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햄버거를 먹는다기보다 “미국”을 소비한다는 느낌. 어쩌면 고작 정크푸드를 사 먹는 행위로 나도 미국사람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건대 1인당 국민소득이 9만 불인 나라의 국민에게도, 20세기부터 백 년을 넘게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잡은 힘센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을 만도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런 노르웨이에서 어제 세계 최북단의 맥도날드 매장이 영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르웨이의 트롬쇠 Tromsø에 문을 연 이 매장은 북위 69도에 위치해 있다. 이 상징적인 숫자를 기념하기 위해 단돈 69 크로네 (한화 8,600원 정도)의 행사가로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한 섬세함도 엿보인다. 종전 기록은 노르웨이 국경과 맞닿은 러시아의 도시 무르만스크가 가지고 있었는데, 2년 전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철수해 지금은 문을 닫았다. 무르만스크가 트롬쇠와 위도가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트롬쇠보다 약간 남쪽에 위치한 만큼, 이번 개업은 무르만스크 매장의 폐업과 상관없이 최북단과 관련한 새로운 기록인 셈으로 “맥도날드 어디까지 가봤니“를 얘기하고 싶은 여행객에게는 좋은 사냥감이 아닐 수 없다.

출처: 노르웨이 맥도날드 공식 앱

 햄버거 러버들이 노르웨이로, 콕 집어서 트롬쇠에 와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맥도날드와 함께 햄버거 체인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버거킹의 최북단 레스토랑도 트롬쇠에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롬쇠에는 버거킹 매장이 두 군데나 있다. 블로그나 여행기에는 트롬쇠 시내 중심가에 있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인증샷을 찍은 것이 많이 올라와 있지만, 사실 트롬쇠 공항 근처 Huldeveien에 있는 매장이 살짝 더 북쪽에 있다. 공항에서 걸어가기는 좀 멀고, 버스로 이동하면 1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다. 단,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할 용기 있는 자에게 도전의 문이 열려있다. 북유럽은 미식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다. 기대치는 낮게, 예산은 높게 잡아야 하는 곳이 북유럽이다. 사는 사람도 비싸다고 아우성인데 여행으로 방문하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한 번은 왜 이 나라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게 이렇게도 비싸냐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내 불평을 다 들은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신 이 깨끗한 물과 공기가 모두 공짜이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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