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역 Mar 14. 2024

내가 나를 기록하는 이유

거짓말을 못하는 기록의 힘

몇 년 만에 이 앱에 로그인을 했다. 마지막 글을 업로드 한 지도 꼬박 3년 만이다.


그 사이 나는 짝을 만나 결혼도 하고, 꼬박 10년 다닌 애정하는 첫 회사도 퇴사하고, 새로운 업종의 회사로 이직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했고 돈도 많이 썼고 새 취미와 즐길거리가 수도 없이 생겼다.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수백 개의 명함들이 모였고 내 앞에 많은 물건들이 버려지고 지나가고 또 다른 새 물건들이 쌓였다.


그 사이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기록해 둔 지난 매거진의 글들을 하나씩 쭉 읽어봤다. 안도했다.


3년 전 써둔 브런치북 매거진


이때의 내가 써둔 글, 내가 거침없이 나눈 생각들이 지금의 나와 많이 다르면 어쩌나. 읽기 전 내심 불안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들에 맞춰 변화무쌍하게 적응해 가는 새로운 내 모습들은 좋지만 내가 정의한 내 모습의 중심은 그대로 길 바랬나 보다.


“아직은 퇴사보다 퇴근이 즐거운 6년 차 직장인의 크고 작은 여행 에세이. '퇴사하고 0 0 살기' '퇴사하고 세계여행'의 먼 로망들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 묻어 두고, 지금은 퇴근 후 지하철역 사물함에서 캐리어를 찾아 공항 철도를 타러 가는 순간이나 서울역 기차를 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설렙니다. 매일 퇴근 후 새로운 삶을 꿈꾸는 나는 오늘도 크고 작은 여행들을 계획합니다”


매거진에 써 둔 소개글 문장이 수정할 단어 단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공감이 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안도했다. 6년 차에서 11년 차가 된 지금 읽어도 완전하게. 내가 썼으니 당연히 공감이 되는 거지 이게 뭘 안도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여전히 나는 퇴사보단 퇴근을 즐기고, 기록과 여행을 좋아하고 경험하는 것에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임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좋았나 보다.


지금 내가 나라고 인정하는 모습들이 수년간 켜켜이 쌓아온 나의 경험들, 시간들, 일로 느낀 효능감, 누리고 즐긴 것들, 내게 영향을 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내가 몇 년 전 기록해 둔 글을 보고 확인했다. 기록은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기록하지 않았으면 분명 몰랐을 것이다.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확한 문장과 단어들로 적힌 작고 미묘한 나의 생각까지 깊이 알 순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신기하게도 지금 11년 차 기업 홍보인인 나는 업무의 대부분을 글 쓰는 데에 쓴다. 회사의 상품, 서비스를 알리는 보도자료와 각종 기획기사, 인터뷰기사 등 내가 알려야 할 회사와 직원들을 기자와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소구 되도록 글과 말로 설득하는 일이 내 주 업무다. 일이 내 적성과 특기에 잘 맞는다는 건 참 행운이다.


간결한 문체와 복잡하지 않은 문장 속에 내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일에 익숙한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하고자 하는 말을 빠르게 글로 써내는 것이 가장 쉽고도 재밌는 일 중 하나다.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함과 동시에 인정 욕구와 사회적 효능감에 대한 만족도가 중요한 나는, 남을 알리는 글을 쓸 때 가끔씩 나를 알리는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남을 위한 글쓰기를 수년간 해오며 나를 위한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보다.


이유야 중요치 않지만 아무튼 이렇고 저런 여러 이유들에서 나는 기록 한다. 내 머릿속 정리, 내가 하고 싶은 말들, 내가 나를 정의하는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남기고 싶어서다. 떠도는 감정들, 무형의 생각들을 문장들로 정리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기록의 힘을 믿는다. 다시 기록에 대한 갈증이 생겨 몇 년 만에 이 앱을 열게 된 만큼, 꾸준히 뭐든 기록해야겠다. 기록이 힘이 되고 기록이 새 기회가 될 거라 믿으며.






매거진의 이전글 버리며 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