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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Oct 26. 2024

Cry

프롤로그 

https://www.youtube.com/watch?v=yKO9i-7ALn8




병원 밖으로 나서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였다. 햇살은 여전히 따스했지만, 그 온기가 내 피부에 닿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췌장암 4기입니다. 6개월... 길어야 6개월입니다."     


숨이 턱 막혔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저 헛기침만 나왔다.      


"잠깐만요, 의사 선생님."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6개월이라니..."     


의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쉬었다.    

  

"미안합니다만 사실입니다. 고통이 심했을 텐데... 왜 이제야 오셨어요?"     

 

나는 쓴 웃음이 났다. 할 말이 없었다.     


의사는 마른 체형에 금테안경을 쓴 중년 남자로, 날카로운 턱선과 침착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암 선고를 내릴 때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며,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깊은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약으로 고통을 덜어드릴 순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생각해보세요. 우선 진통제랑 여러 가지 약 좀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담배는 좀 끊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비어있었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담배를 연거푸 피운 뒤 정처 없이 걸었다. 한숨 속에 섞인 담배 연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 때, 내 몸이 생명을 더는 거부하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갔다. 아름드리 큰 나무 앞에 멈추고 멍하니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주황빛 햇살 아래 시민들이 평화롭게 거닐고 있었다. 잠시 평온을 느꼈다. 하지만 곧 뱃속 깊은 곳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피 섞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손바닥의 붉은 얼룩을 보며, 처음으로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찔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죽음은 멀리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지금은 나의 현실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벤치에 앉아있는 만삭의 여자와 그 옆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어......?“     


한참 그 커플을 바라보다 여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나는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둘러 떠났다.      


청와대 뒤 북악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오르는 길이 숨 막히게 가팔랐지만, 그보다 내 안의 공허함이 나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서울 시내를 바라보았다. 남서쪽으로는 강남의 중심지인 역삼 타워가 우뚝 서 있고, 한강변 동쪽으로는 금빛으로 빛나는 63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인왕산 맞은편 무악재에 있는 안산의 푸른 숲이 펼쳐지고, 그 오른쪽으로는 고즈넉한 연희동의 골목길들이 이어졌다. 좌측으로는 남산 타워가 서울을 지키듯 서 있고, 그 아래로는 한남동의 고급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20년 동안 이 도시에서 살았는데..."      


서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흐릿한 빛의 덩어리로만 보였다. 마치 내 인생처럼.      

20년. 이 도시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남은 것은 흐릿한 기억뿐이었다. 성공도, 사랑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 흐려졌을 뿐이다.     


내 나이 서른 아홉. 스무 살에 영화를 하겠다고 상경해 무엇을 이뤘나. 돈도 못 벌고 작품도 남기지 못했다. 내 인생은 마치 상영되지 못한 필름처럼, 아무도 보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니 한숨만 나왔다.  화면 속의 그들이 내 과거였고, 나는 그들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내 손 안에만 머물렀다.     


"나는 이렇게 시시한 어른이 되기는 싫었는데...."      


내 목소리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갤러리를 열었다. 찍다 만 영화 스틸컷들, 완성하지 못한 시나리오 메모들...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화면 속에 갇혀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화창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비가 내렸다.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여우비는 어딘가 초현실적처럼 느껴졌다. 이내 비가 멈추자 마른하늘에 형형색색의 번갯불이 북악산 근처에 떨어졌다. 이윽고 서울 시내에 자욱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 습기와 건조가 뒤섞인 이 날씨는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참 이상한 날씨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의사가 준 진통제를 삼켰다. 약기운이 돌자 현실감이 조금씩 흐려졌다.    

 

날이 저물 즈음에야, 나는 산 밑으로 내려갔다. 오늘 만큼은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경복궁역 근처를 배회하던 중이었다. 그 때 안개 사이로 처음 보는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늘 편한 사람들' Music Bar B1     


"저 바가 원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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