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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Hoon Lee Nov 16. 2024

인생 영화/책이 있어 감사하다.

인생 영화/책이 있다. 몇 년 주기로 계속 보게 되는 그런 영화/책.


나에겐 몇 가지 영화와 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철도원'이라는 영화이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이것 저것 한 이후 잠시 피로가 몰려오는데 잠은 오지 않아서 '영화 뭐 있나?' 검색해보다가, 영화 철도원을 발견했다. 철도원을 처음 본 것은 2001년이었고 (대학교 신입생 때), 그리고 BCG 시절 우연히 한 번 더 봤고, MBA 합격 후 한 번 더 봤었으니, 약 10년 만에 인생 영화를 다시 볼 기회를 얻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play 버튼을 눌렀다.


20대 때에는 설국과 일본영화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철도원이 좋았었는데, 30대 때에는 마스터(장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눈에 띄지는 않지만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한 사람 & 가장의 스토리를 2시간에 진짜 덤덤하게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어서 좋았었다. 그런데 40대에 본 철도원에서는, 사랑하는 아이가 생기고 난 다음이어서 그런지, 철도원이라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이와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함께 있을 수 없었던,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의 감정이 철도원 임무를 끝맺음하기 직전 밀려와 철도원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했던 주인공의 감정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특히 영화이기에 가능할 수 있겠지만, 어렸을 적 떠나보낸 딸이, 하루만에 유치원생의 모습으로,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그리고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찾아와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그 위로에 반응하는 주인공을 보며 여러가지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 영화/책은, 1) 우연히 주기적으로 보게 되는 것, 2)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삶의 아젠다가 바뀌고 경험이 쌓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바뀐 나의 감정/의식/생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인생 영화/책인 듯 하다. 같은 영화인데,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느낌이 다르고, 그 감정/느낌의 차이에서 '아.. 그 동안 내 인생에 이런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내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에게 이런 변화를 만들어 냈구나'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


나에게 인생 영화/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인생 영화/책을 우연히라도 주기적으로 보며 나이 들어감을 나름 아름답게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주기적으로 계속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  & 나무의 나이테처럼 친구와의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지는 만남 속에서 과거 나의 모습 & 관계를 떠올리고 그 감상을 웃으며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오랫만에 만난 철도원을 통해 또 한 번 '인생 something' 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내 인생에 다양한 경험/인연/추억을 쌓아간다는 것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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