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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pr 27. 2024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송승훈/이일훈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몇 년 전, 첫 '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넣었던 청약의 당첨 문자가 오던 날 아침, 신랑과 저는 얼싸안고 큰 행운을 기뻐했지요. 그 때부터 지금 우리 집이 다 지어지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터가 닦이기 전부터 시작해 아파트가 하나하나 올려져 가는 모습을 매일같이 예비 입주자 카페에 들어가 확인하며 즐거워했고, 아파트 내부 VR 영상을 보며 어디에 무엇을 놓을지를 상상해보곤 했어요. 입주 전 사전점검 기간 때는 어서 집에 들어가보고 싶어 돌도 안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택시, 지하철을 타고 먼지 가득한 곳을 몇 번씩 방문할 정도였으니 참 못 말리는 애정이었지요.


첫 '내 집'이자 새 집의 감격도 잠시, 3년 동안의 코로나 생활을 거치며 집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구조에, 현관을 닫고 들어오면 바깥 생활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던 거예요. 거기에 조금만 뛰거나 소리가 커져도 들으란 듯이 바닥을 굴러대는 윗집 때문에, 이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야외 공간이 딸린 집에 대한 로망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바쁜 직장 생활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 등을 고려하다 보면 쉽게 현실로 옮기지는 못하는 상황이지만요.


이런 때에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어요.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건축주와 그 의뢰를 받아들인 건축가가 실제로 집을 짓기 전,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주고 받은 이메일 82통을 엮은 책이었지요. 집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묻고, 그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생각을 실제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긴 이 책은 잔잔하게 저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송승훈 건축주는 집을 짓겠다는 결심 후 건축에 대한 책 100권을 사다 읽고 나서 이일훈 건축가에게 꼭 집을 지어달라고 간청했다고 해요. 돈벌이와 일률적인 트렌드를 쫒는 시장 속에서, 건축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갖고, 그것을 우직하게 공간에 구현해내는 건축가를 발견해내자 그가 꼭 내가 살 집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을 겁니다. 건축가 이일훈 선생은 보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 공간을 쪼개어 살고(채나눔), 바깥에서 지내는 곳을 다채롭게 만들며(바깥 살기), 실내에서도 일부러 조금 더 걸어가게 만드는(늘려살기) 건축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사람과 공동체를 위하는 그의 건축관에 저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지요.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를 물으며, 이것은 결국 '어떻게 살고 싶은지'의 질문과 닿아있다고 말합니다. 건축주는 대답해요. 같이 살게 될 그의 어머니가 오르내리기에 무리가 되지 않는 계단이 있었으면 좋겠고, 직업적 특성 상 갖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수용할 공간이 아주 중요하며, 함께 모임을 갖는 국어교사들이 언제든 여기서 모임을 하고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요. 전원에 지어지는 만큼, 툇마루에 누워 바람을 쐬며 지친 몸을 회복하고, 2층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는 그림도 그렸지요.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삶의 방식과 앞으로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거대한 계획부터 수많은 사소한 부분까지 의견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점차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까지도 나누게 되지요. 현대건축의 거장인 김중업 선생이란 분이 했다는, "집은 어드메 한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 아래, 그 공간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에 대한 회한과 지난 인연의 아픔 등을 서로에게 꺼내놓습니다. 집이란 곳은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기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나눔이었을지도 모르나, 스무 살 차이가 난다는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아니었다면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을 이야기들을 읽으며 건축주와 건축가를 넘어선 이 아름다운 관계에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제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소망도 그려봅니다. 굳게 닫힌 현관문이 아니라, 자유롭게 바깥을 오갈 수 있는 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바깥이 꼭 내 집 마당일 필요는 없지만, 날 좋은 날에는 나무 테이블에 앉아 식구끼리 푸짐한 쌈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집처럼 벌러덩 드러눕거나 엎드려 책을 볼 수 있는 툇마루가 있었으면 하고요. 아이가 실컷 큰 소리로 말하고 뛰어다녀도 되고, 마음껏 함께 노래하고 악기도 연주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손님들에게도 편안한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고요. 아! 이건 너무 꿈일 뿐인가요. 여러분은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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