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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Mar 26. 2024

자녀교육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자녀교육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라는 주제로 회사에서 작은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이번달 책 편지는 그 원고로 대신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회사에서 이런걸 하게 되었다니 제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적어도 서울대는 보내놓아야 그런 얘기 할 수 있는거 아니냐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간 아이를 키우면서 가져왔던 생각들이 있어서 그걸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위 사진은 얼마 전 부문에서 진행한 오피스커밍데이 때 아이가 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 일곱 살이에요. ​


1. 태어나 3년이 가장 중요하다? →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란 없다. ​


혹시 '아이는 세 살 때까지는 무조건 엄마가 키우는게 좋다' 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아이가 태어나 3년  폭발적인 뇌 발달을 하는 동안 엄마의 절대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3개월 만에 복직을 한 엄마로서 가장 두려운 말이 바로 그런 말이었어요. 저희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이 굉장히 오래 걸렸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제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밖에까지 따라나와 울어서 야구르트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가 다 알았지요.


그때 제가 붙잡았던 생각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란 없으니 아이에게 평생 잘해줘야겠다는 다짐이었어요. 너무 어릴 때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어 버린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스트레스를 지속적인 사랑으로 메워주겠다는 다짐이었지요. 우리가 시기와 상관 없이 받았던 사랑과 상처를 모두 기억하잖아요. 지속적인 사랑은 상처를 치유하고요. 자녀에게 부모는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 사교육이 아닌, 사적 교육을 하자 ​


11만원.


저희집이 매월 아이 교육비로 지출하는 최대의 금액입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원비가 국가에서 지원되고요, 원에서 하는 체육, 음악, 사이언스, 영어 등의 특별활동에 월 87,000원이 들어갑니다. 그 외에 원에서 견학이나 뮤지컬 관람 등을 갈 때 드는 비용이 있습니다. 사교육은 하지 않고 있어요. 첫번째는 제가 하원하러 가면 이미 6시가 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렇고, 두번째는 아이가 아직 원하지 않아서 입니다. 대신 날마다 엄마나 아빠와 한 시간 정도씩 책상에 앉아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곤 하지요.​​


아이 방에 중구난방 책들 주목

아이가 두세 살 무렵에 시아버지께서 중고 책 몇박스를 보내주셨어요. 저희 남편에게 어릴 때 책을 마음껏 못사주신 것이 가슴이 아팠다면서 다니던 수영장 사람들에게 집에 안보는 아이 책들 있으면 다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주신 책이었지요.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책 정리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당장 읽을 일 없어보이는 초등학생용 책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공짜로 얻은 책이니 부담이 없었습니다. 뭣 모르는 아기 때는 아이가 책을 찢어도 그러려니 했는데, 좀더 커서는 아이가 아무 책이나 빼서 읽기 시작했어요. 연령과 상관 없이 초등 책도 많이 보았고(글이 아닌 그림이나, 일부만 읽어주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관련 책이 있는지 찾아보면 어김없이 그 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또 그 책을 펼쳐 같이 읽었지요.


그 때 제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혹시 이 책들을 다 돈 주고 샀더라면, 다 구비해놓아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전집을 몇 질씩 집에 들였더라면 본전 생각에 아이를 들볶진 않았을까 하고요. 나도 학습지를 할 때 첫권부터 마지막권까지 차례대로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혹시 그걸 어린 아이에게 강요하게 되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아이와 이런식으로 배움을 합니다. 아이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를 알게 되고 나서 이토! 하고 품에서 총을 꺼내 쏘는 시늉을 하곤 했어요. 아이는 안중근이 왜 자기 손가락을 잘랐는지 이해하지 못해 여러 번 물어봤고, 그럴 때 저는 아이에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웬만해선 그런 일을 하지 않지만, 그렇게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결연한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시대가 절박하고 암울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목적이 따로 있었다고 하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꺼내 왜 제목이 하얼빈인지를 설명해주고(안중근이 이토를 쏜 기차역), 안중근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재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쏜 이유에 대해서 일장 연설한 부분을 읽어주었습니다. 어려운 말들이 잔뜩 나왔지만 아이가 흥미롭게 듣더니 책을 다 읽어달라고 했어요. 네가 중학교에 가면 직접 읽으라고 했지요.


아이가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똥을 싸다 물은 적도 있어요. 물을 내리면 이 똥이 어디로 가는 거냐고요. 저는 하수도와 상수도의 개념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도시화가 되면서 이런 시설이 갖추어진 것이고, 그런 시설이 없었던 옛날에는 길거리에서 악취가 많이 났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지요. 여자들의 하이힐도 길가의 똥을 밟지 않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하자 아이가 흥미롭게 들었어요. 또 지금도 그런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고 얘기하자 아이가 "응 아프리카!" 하고 외쳤지요. 화장실에서 물을 콸콸 틀어놓을 때마다 아빠가 "아프리카에서는 물이..." 하던 말과, 네 나이에도 물을 길러 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글로벌 교육까지 연결되는 순간이었어요.


아마 이런 일상들 속에서 아이는 역사, 사회, 세계를 배울 수 있고, 주변의 것들을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배움은 일상적이어야 하고 지적 자극 또한 때를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3. 부모라면 아이의 재능을 찾아 키워줘야한다? → 진짜 재능이라면 자생력이 있다. ​


많이들 생각하는 통념 중 부모라면 아이의 재능을 찾아 키워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진짜 재능을 키워주는 방법은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는 걸요. 진짜 재능이라면 굳이 키워주지 않아도 자생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매일같이 각 교본마다 열 번씩 연습해야 하는 피아노가 지겨워서, 바이올린을 시작하면 더이상 피아노 연습을 안해도 된다는 말에 학교 특별활동으로 시작하게 된 바이올린이었다. 연습을 열심히 하지 않을 때마다 엄마는 그만둘거니 계속할거니 너의 생각을 말해봐라 물으셨고, 그냥 별 생각이 없었던 소녀는 이게 아닌 다른 길을 알지 못해서, 지금까지 한 것을 그만두기는 아까워서 계속하겠다고 했다.

(중략) 방 안에서 연습 소리가 나지 않으면 밖에서 바로 알 수 있었기에 소녀는 보면대 위 악보에 보고 싶은 책을 겹쳐놓고 책장을 넘겨가며 의미 없는 줄만 그어대곤 했다. " <직업으로서의 꿈> 중



조금 민망하지만 짧게 저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위 글은 제가 썼던 글이고, 이 이야기 속의 소녀는 저입니다. 제가 음악하는 사람으로 살길 원하셨던 엄마는 저에게 음악 교육을 시키셨어요. 그런데 여기 보이시나요? 저는 연습을 하면서도 하기 싫어서 보면대에 책을 올려놓고 보던 아이였어요. 심심풀이로 읽을거리들을 읽곤 했고, 학교에서 방학 때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국어책과 생활의 길잡이부터 꺼내 그 안의 이야기를 읽던 아이였지요. 문제는 제가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 아이인지 모른 상태에서 시키는 대로 음악을 했다는 겁니다. 제가 이걸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하고, 대학에 다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지요.



"언젠가 삶이 참 쉽지 않다고 느꼈을 때,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 나는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빠에게서 온 것임이 분명했다. 글 쓰는 재주 뿐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하는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동기까지도. 오랜 시간 어디서부터 나와야 할지 알지 못해 속에서 웅성거리던 목소리들이 글을 통해서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풀려나왔다. 그렇게 나는 점차 내 안에 작가의 정체성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그 첫 기억에 아빠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작지 않은 위안과 자긍심을 느낀다. " <작가의 시작> 중



위 글도 저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30살이 넘어서야 저의 재능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직장인이 제 직업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제 직업 못지 않게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큰 축입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사실이 제 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고, 직장생활을 하며 얻는 경험들이 저의 자산이 되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지요.

누가 꼭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하지요.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그 길을 찾아가는 힘을 섣부른 나의 잣대로 꺾지 않고 응원해 주는 것 아닐까요. 제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 내내 (성숙해진) 저희 엄마가 저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켜봐주셨던 것처럼, 저 역시도 아이가 길을 찾아가는 옆과 뒤에서 아이를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좋은 환경을 찾아가야 한다. →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잘 지내는 법을 익히는 게 먼저다 ​


아이가 다섯 살에서 여섯 살로 올라가던 무렵, 원에 아이들이 줄어들어 6-7세 반을 통합 운영하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유독 다섯 살 반에서 사이가 좋았던 아이들의 엄마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형아들과 있으면 치이거나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하나 둘 다른 원으로 떠나더니 나중에는 저희 아이만 그 원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희도 다른 원으로 옮기지 않았던 이유는, 한 살 정도 위아래의 사람들과 지낸다고 해서 그게 꼭 해가 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 그런 부분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큰 부분이 아닐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잘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했어요.

연장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형아와 같은 반이 되었기에 처음에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형은 너무 와일드 하고, 저희 아이는 적응이 오래 걸리는 성격에 그 형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서 그 형이 슬슬 우리 아이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넘게 원에 울고 갔던 것 같아요. 이미 출근을 한 저에게 영상 전화가 와서 하염 없이 울고 있었던 때도 많았지요. 저도 속이 타들어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다른 원 상담을 다니고, 원을 옮기자고도 했지만 아이가 끝내 싫다고 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른 형아 엄마들 전화번호를 받아오라고 해서 집에 초대해 같이 놀게 해주고 그저 아침마다 기도하며 출근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점차 다른 형아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관계를 넓혀가는 법을 스스로 배웠습니다. 저희 아이에게 함부로 했던 그 아이를 저도 모르게 싫어하는 티를 내자 제 앞에서 "엄마 OO형 착해" 하면서 옹호해 주는 의젓함까지 생겨났지요. 여섯 살이 끝났을 때, 아이는 누구보다도 학교에 갈 형님들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편지와 선물들을 준비했고, 형아들에게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와 선물을 되받았습니다. 지금은 7살 최고 형님이 되어 동생들을 돌보니 또 눈에 띄게 의젓해지고 원 생활을 즐기고 있고요. ​


우리는 쉽게 자기가 있던 곳을 포기하고 편리한 곳으로 옮겨가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은 언제 누구에게든 닥칠 수가 있지요. 어떤 환경에 있던지 그곳에서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해가는 것이 삶의 실력 아닐까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도, 아이도 분명 한 단계 성장할 것입니다.


5. 공부해서 남 주냐? → 단순 지위 획득을 위한 교육이 가장 위험하다. ​

이렇게 제목을 뽑아 놓았지만, 이 부분은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무리로 짧게만 얘기할게요.


'공부해서 남 주냐?'가 오해라면 '공부해서 남 주자'가 바른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그건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단순 지위 획득을 위한 교육이 가장 위험하다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씨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수와 이삭은 교육에 대해 아주 다른 이론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들이죠. 한수에게 교육이란 거래와 같습니다. 지식을 수집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획득하는 일종의 도구죠. 반면, 이삭에게 교육이란 변화입니다. 교육을 받아서 사람이 좋게 변화해야 한다고 믿죠. 단지 기독교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도덕적이고 고귀한 사람이 되길 바란 것이죠. 그래서 다음 소설 <아메리칸 학원>에서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하는 교육은 거래를 위한 교육인가, 변화를 위한 교육인가. 전자는 틀렸다고 전 믿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교육은 그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죠."



진정한 변화를 위한 교육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혹시 우리가 그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교육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뭐가 나빠?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교육을 받고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반드시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지요.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왜 아이를 교육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저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저도 부족한 것이 많은 부모이고 저희 아이도 그렇지만, 그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한번쯤 같이 생각해 본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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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두고두고 보는 육아서도 함께 소개합니다.


ㅇ전혜성,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

https://naver.me/xrcvbvGb


ㅇ박혜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https://naver.me/xSNWVWqO


ㅇ오소희, <엄마의 20년>

https://naver.me/GwIrurFX


ㅇ이재철,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싱어게인 30호 이승윤의 아빠인 이재철 목사가 아이들이 어릴 때 쓴 글 엮음

https://naver.me/5XTA1K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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