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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ug 07. 2018

폭염을 나는 법

가을을 기다리며

폭염은 폭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나가는 건 꿈도 못꾸고 하루종일 집 안에 갇혀 있어야 버틸 수 있으니. 아들이 태어난 후 아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폭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바깥 온도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은 예상을 능가한다. 어쩌다 외출을 하고 오면 불볕에 열 받은 몸이 한참 동안 뜨끈뜨끈해서 열병이 날 것 같으니 나도, 6개월 된 아들도 최대한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거실엔 에어컨이 없어서 서너평 남짓한 안방에서 하루종일 아기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둘이 침대 위에 앉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놀다가, 같이 누워 안고 뒹굴다가, 화장대 거울에 비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놀다가, 업어주면 좋아하는 아이를 업고 방 안을 뱅뱅 돌다가,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면 푸른 나뭇잎이 간혹 있는 공기의 움직임에 살랑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깨끗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창 밖 풍경은 저 밖이 뜨거운 여름인지, 아니면 푸르른 가을 날씨인지 언뜻 보면 알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간혹 양산을 쓰고 얼굴을 찌푸리며 다니는 사람들만 아니라면 저 밖이 그렇게 뜨겁다고 믿을 수 있을까.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창 밖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밖이 가을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착각이 아니라 바람일 것이다. 폭염을 나기 위한 방법으로 한참 남은 가을을 쭈욱 앞당겨 마음에 그려본다.



BGM 아이유 가을아침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지네
텅 빈 하늘 언제 왔나 고추잠자리 하나가
잠 덜 깬 듯 엉성히 돌기만 비잉비잉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동기동기 기타 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이
심심하면 쳐대는 괘종시계 종소리와
시끄러운 조카들의 울음소리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뜬구름 쫓았던 내겐


가을이 오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높고 파란 하늘을 만날 수 있겠지. 구름 한점 없는, 구름이 있다 하더라도 끝간데 없이 높이 올라갈 것 같은 기적같은 하늘을. 뜨겁고 습한 공기는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슬슬 시원해지는 공기에 하나 둘 꺼내입은 긴소매 옷은 움직일 때마다 기분좋게 살갗을 스쳐주겠지.


가을이 오면 추석을 맞을 수 있겠지. 할머니할아버지댁에 처음 가보는 아가와 함께 거닐 울산의 가을 공기는 얼마나 청량할까. 아가가 혼자 앉을 수 있고, 별 걱정 없이 식구들 틈에 두고 나와도 되는 추석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랑의 두툼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잡고 가을밤 내내 걸어봐야지.


가을이 오면 전복장을 담궈보아야지. 10월까지도 맛있다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복을 한줌 사서 가을 공기를 담아 쪄내고 여러 채소를 넣고 끓여낸 간장을 부어 냉장고에 넣어놓아야지.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전복장을 밥에 얹고 쓱쓱 비벼 한입 넣어봐야지. 밤조림을 만들어 손님들이 오면 따뜻한 차와 같이 먹다가,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이 되면 유자청을 담그며 겨울을 준비해야지.  


상상이 모락모락 번져가는 사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벌써 가을이 된 것 같다. 어제 내내 이앓이 하며 떼를 쓰고 울던 아들은 어느새 애교미소를 보내며 까르르 웃고 있고, 에어컨 바람은 가을 바람으로 느껴지는 듯 하다. 그래 지금 이곳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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