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는 다섯 살 입니다. 외모는 아빠인데 내면은 저를 빼닮은 아이를 보고 남편은 '남자 서신혜'라고 말하기도 해요. 아이는 세 살 때도 제가 '엄마와 섬그늘에~'와 같은 서정적인 노래를 불러주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엄마, 이 노래는 슬퍼."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던 탓에 어린이집 적응도 매우 오래 걸렸고, 자기에게 가장 편안한 상대인 엄마에 대한 집착도 컸지요.
유독 섬세하고 예민한 성향의 아이를 키우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13개월 때부터 아이와 떨어져 직장에 나온 엄마로서 가장 두려운 건 '아이의 첫 3년이 일생을 결정한다'와 같은 말들이었는데,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어요.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으니 평생 잘해줄 거라고요. 아이가 어릴 때 겪었을 스트레스로 인한 상처를 지속적인 사랑으로 메워주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이는 아이의 학습과 교육의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당장 아이에게서 학습적인 성과를 뽑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관심과 탐구의 자세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을 잡고 걸어다니는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계절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밤하늘의 달이 왜 어제보다 더 뚱뚱해졌는지, 이 단어는 어떤 한자로 구성되어 있길래 이런 뜻인지.. 한창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엄마가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아졌고, 저는 아이의 연령과 상관 없이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아이에게 풀어주려 애썼습니다. 배움이란 꼭 과목을 나누어서나 정해진 나이를 따라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지금 보고 들은 것들이 나중에 본인의 머릿속에서 연결되어 공부에 좀더 즐겁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책 소개가 너무 늦었지요. <최재천의 공부>를 읽으며 이런 저의 생각들과 닿아있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책 속에는 저자가 한국과 미국의 최고 학부와 석박사 과정, 그 이후의 학문적 경험들 속에서 건져낸 '진짜 공부'에 대한 통찰이 곳곳에 가득했어요. 저자는 한 곳에 빠지면 다른 것을 모두 잊어버리는 성격 때문인지 공부를 하다가도 다른 끌리는 주제를 발견하면 한참을 외유하다 돌아오는 스타일이었고, 때문에 논문도 꽤나 늦게 마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요. 신기한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배움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느꼈고, 그 경험이 당시 하고 있던 공부의 진전에도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공부는 통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인데 사실 그런 경험, 우리도 종종 하지 않던가요? 좀처럼 터득되지 않던 부분이 살면서 겪는 다른 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우쳐지게 되는 경헙이요.
저자가 현재 석좌교수로 있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저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의 수업은 힘들기로 소문이 나서 수강 인원이 100명을 넘어본 적이 없다고 하지요. 학기 내내 이어지는 여러 활동의 모든 과정이 평가 대상이라, 최재천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 다른 과목은 모두 망한다는 말이 인터넷 게시판에 공공연하게 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배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교양 과목이었을 뿐인 그 수업의 학기가 끝나면 인생 항로를 바꾸는 학생들도 나오고, 배운 내용들과 그 방법론을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해요. 설사 학점 관리에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진짜 배움은 영혼을 깨우고 가슴을 뛰게 하여 장기적으로는 인생에 더 큰 자양분이 될 테니까요.
이 외에도 글에 다 담을 수 없는 인상적인 대목들이 참 많아요. 대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전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요. 이 큰 세상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공부, 공부의 속성에 대한 지혜로 꽉 차 있는 책을 덮으며 우리 아이들이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의 교육 과정을 밟아온 우리 자신들도,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도 한 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닐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