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커도 너무 컸다.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던 엄마 껌딱지라 엄마가 어딜 가든 쫓아오려고 하던 아이가 아니었나. 출근 때마다 밖에까지 따라나오거나, 창문을 열고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를 외쳐 불러 아파트 경비 아저씨, 이웃, 야쿠르트 아주머니까지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다섯 살이 끝나갈 무렵부터 눈에 띄게 엄마 없이도 잘 지내는 것이다. 이모 따라 외갓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도 아무렇지 않아하면서.
그 변화가 내내 적응이 안되고 못내 서운하던 차였다. 아이가 내게 딱 붙어 있을 때 힘은 들었어도 나 또한 아이와 얼마나 깊은 교감을 나누었나. 아이를 꼭 안고 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 뭉클함, 아이의 맹목적인 애정을 받을 때 느껴지는 감동. 아이는 제 속도를 따라 잘 커나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아이가 전과 같이 반응하지 않아 오갈데 없어진 나의 사랑은 아쉬움 속에서 허우적댔다. 곁에 어린아이로만 끼고 있고 싶은 마음에 내가 아이의 성장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나 하는 의문도 가져보았다.
이틀 전 하원을 하러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이야기를 전해주신다. 오후 통합반에서 같이 지내는 형이 아이에게 목을 조르는 장난을 해서 아이가 놀라고 무서워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그림도 그려주고 종이도 접어준다는, 늦게까지 같이 있어서 아이가 많이 좋아하고 따르는 형이었다. 선생님이 놀라서 그 형에게 단단히 교육을 했고, 아이도 도닥여 주었다고 했다. 여리고 섬세한 편인 아이는 몸으로 거칠게 부딪쳐오는 친구들에게 양껏 반격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 평소에는 힘들다고 손만 잡고 걸어오던 길을 아이를 번쩍 들어 집까지 안고 왔다. 문구점에 들러 평소 갖고 싶어했던 건담도 내가 먼저 두 개나 사주었다. 안쓰런 마음에 힘든지도 모르고 내내 안고 왔는데 집에 오니 두 팔이 후들거렸지만 그게 대수일쏘냐. 미리 소식을 공유해 놓은 신랑과 최대한 아이의 기분을 살피며 잘해주려고 애쓴다. 혹여 아이의 마음을 거슬리게 할까 우리끼리 나누는 잡담도 자제하기로 한다. 이틀 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번쩍번쩍 안아 들어올려 주고, 같이 하면 좋아했었던 기억들을 꺼내 몸싸움도 하고 함께 춤도 췄다.
온순하게 앉아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이가 불과 몇 달 전의 어린 아이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진다. 내내 꼭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이에게는 다가가 마음껏 뽀뽀하고 장난도 쳤다. 때문인지 어제까지도 풀이 죽어있는 듯 했던 아이는 밝은 모습을 되찾고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오늘 예정되어 있는 단독 생일파티가 쑥스럽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의 모습에 안도하며 생각한다. 아이가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돌아왔을 때 부모가 아이에게 쉼터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라고. 힘들었던 마음을 풀어놓고 부모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래서 세상에 다시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나는 내 품에 잠시 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아이의 애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