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보다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재일한국인 가족을 다룬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하버드대에서 강연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강연 중 한국 학생 한 마디에 함께 있던 모두가 눈물바다 된 이유'라는 제목으로 화제가 된 영상이었지요. 16세 대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한 한국 학생이 물었습니다. 언젠가는 돌아가 한국사회에서 일하고 싶지만,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는 취약점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요.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살았으면서도 한국 역사와 사회에 대해 쓰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도 이러한 취약성이 반영되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 머리를 쳤어요. 작가는 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한국어 실력도 형편 없다고 하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한국인에 대해서, 그것도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4대를 아우르는 한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본인에게도 '나보다 이걸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요. 지금 이 방에도 한국과 재일 한국인의 역사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을 찾고 그 느낌을 본인의 소설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제게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어요. 작가가 자신의 분야를 누군가와의 비교나 시장이 요구하는 것에서 찾지 않고, 자신이 거쳐온 경험과 감각에서 찾아 만들어왔기 때문이지요. 그 자신이 경계인으로서 또다른 사회의 경계인들에 대한 이해와 관찰을 거듭해오며 작가는 어느새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에는 미국 출판계에 한국과 일본에 대해 쓴 소설은 하나도 없었고,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먼저 찾아줄 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생에서 품은 질문에 끈질기게 응답을 완성한 겁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세상이 그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목소리의 귀를 기울이고 오롯이 그 작업을 해낸 사람의 이야기가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의 분야를 찾을 것을 정말로 권해드립니다."라고 한 작가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과 경험들은 남들은 가질 수 없는 그만의 것이기에 그가 만들어 가는 세계는 오로지 그만의 색깔과 경험을 담은 작품이 될테니까요.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 어찌 가슴 벅찬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덧. 소설 <파친코>는 시간을 뚝뚝 뛰어넘는 전개, 한 세대씩 옮겨간 무대에서의 인물과 사건의 변화가 무척 흥미로운 책입니다. 애플 TV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지만, 수려한 영상과 새로운 구성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도저히 원작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지요. 작가가 이 소설 이전에 썼다는 <백만장자의 공짜음식>은 현대 미국 자본주의 속의 한국인이 주인공이에요. 시간적 배경이 <파친코>보다 훨씬 짧아서인지 보다 촘촘하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현재 작가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3부작으로서 '교육'에 대한 마지막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지위 획득만을 위한 교육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교육관이 소설에 어떻게 담길지 퍽 궁금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