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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jActivity Mar 19. 2019

감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2 (The Gambia)

2018/03  서아프리카, 감비아, 세레쿤다(Serekunda)


  교통표지판과 가게 간판들이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바뀐 것 말고는 딱히 세네갈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이 차창 밖으로 흘러갔다감비아의 미니버스 겔리겔리(gelli-gellis)도 세네갈의 카 라피드(car rapid)처럼 출발지와 종착지 말고는 딱히 타고 내리는 정류장이 정해져 있지 않다. 차가 달리는 와중에 길가에 사람이 있으면 나이 어린 차장이 차 밖으로 몸을 내밀어 종착지를 크게 외쳐가며 호객을 해 승객을 태우고, 이미 타고 있던 승객 중에 내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그때 아무데서나 내려준다. 방향이 맞는 겔리겔리가 지나다니는 도로까지만 나가면 아무데서나 잡아타고 내릴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편하기는 한데 정말 아무데서나 사람들이 계속 타고 내리다 보니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해서 느린 게 단점이었다. 그래서 도로상태도 나쁘지 않고 길이 막힌 것도 아니었는데 국경에서 세레쿤다까지 고작 40여 킬로미터를 가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세레쿤다 중앙시장

  감비아 최대 도시 세레쿤다 시내에 들어서자 좁은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들과 분주히 오가는 행인들, 그리고 2차선 도로 양방향을 가득 메운 차들까지 뒤엉켜서 혼잡스럽기 짝이 없었다. 길이 막혀 차가 가는 둥 마는 둥 했다. 길가로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와 노점상과 차 사이 좁은 틈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던 운전수가 길이 막혀 따분해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차창 너머로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약을 올리고 지나갔다.


  세레쿤다 겔리겔리 차고지에 내려 지도를 확인해보니 내가 가려는 호텔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굳이 서두를 이유도 없고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북적거리는 세레쿤다 시내를 사오십 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어제 미리 스크린샷을 찍어둔 구글맵을 따라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도저히 근처에 호텔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큰길에서는 이미 벗어난 지 오래였고, 딱히 눈에 띌만한 건물 하나 없이 이곳의 평범한 살림집이 골목골목으로 즐비해 있었다. 골목에서 저들끼리 왁자지껄 뛰어놀던 아이들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외국인의 갑작스레 나타나자 전부 전봇대 뒤나 골목 모퉁이로 달려가 몸을 숨기더니 고개만 삐죽 내밀었다. 내가 일부러 격하게 손을 흔들며 "헬로우~~"하고 인사를 했더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깔깔 웃었다.


  그렇게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에 제대로 도착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간판도 없고 건물 생김새도 호텔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확인을 해보기로 하고 철제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유니폼까지 제대로 갖춰 입었지만 얼굴에는 어린 티가 역력한 경비원이 문을 열어 나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호텔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근처에 내가 가려는 호텔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이 주변에 호텔 같은 건 없다고 했다. 세네갈 어느 숙소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여행 가이드북에서 봐 둔 호텔이었는데 아무래도 구글맵의 위치표시가 엉망인 모양이다.

"제가 방금 세네갈에서 와서 감비아 심카드가 없는데 혹시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호텔 전화번호는 알고 있거든요."

  경비원이 잠시 기다려보라는 말을 남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회사인지 뭔지 모를 사무실이 여럿 있을 법한 단층 건물이었다. 이내 경비원이 다시 나타나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따라 들어갔다. 경비원이 복도 안쪽의 한 사무실로 안내를 해줘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책상 앞에 플랫캡을 쓴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여행 왔나 보군? 그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내려놓고 일단 앉게."

나는 짐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간단히 내 소개를 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호텔을 찾고 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 온 것 같아서요. 괜찮다면 전화를 좀 빌려 쓸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호텔 전화번호가 뭔가? 내가 직접 연락해보지."

  아저씨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자 신호가 가더니 금방 누군가가 받았다. 아저씨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내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호텔의 번호가 맞는 모양이었다. 호텔의 위치를 물은 아저씨가 호텔 직원의 대답을 듣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는 상대방에게 영어와 다른 언어(나중에 알고 보니 만딩카어였다.)를 섞어가며 이것저것 묻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얘기를 나누는 게 괜히 신경 쓰였다. 통화를 끝낸 아저씨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히 호텔에 남는 방이 있다는데 여기서는 꽤 멀군. 내가 같이 가는 게 좋겠어."

"바쁘실 텐데 괜찮아요. 주소만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갈 수 있어요."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핑계로 경계심을 감춰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인터넷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점심이나 먹으러 집에 가려던 참이었거든? 그런데 마침 그 호텔이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지 뭔가? 재밌지 않나? 가는 김에 내 집에 들러 점심도 먹고 가게나."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기가 막힌 우연이고 타이밍이었다. 아저씨는 나갈 채비를 하면서 자기는 스포츠 잡지 기자 라민 톰봉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 어지럽게 잡지며 책자들이 널려있었는데 대부분 축구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아저씨가 기도를 해야 하니 내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마당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신발을 벗고 조용히 이슬람식 기도를 올렸다. 대문을 나서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가려던 곳과 완전히 정반대로 와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렇게 아저씨를 만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네요."

아저씨는 걸음을 옮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이유인 우리가 알 수는 없겠지만, 다 알라께서 뜻이 있어 오늘 먼 곳에서 온 자네를 나에게 보내신 거겠지."



  큰길로 나와 겔리겔리를 잡아타고 세레쿤다 중앙시장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에서 내렸다. 앞장을 선 아저씨의 익숙한 걸음을 따라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모퉁이 몇 개를 돌아 한 건물의 대문 앞에서 아저씨가 멈춰 섰다.

"아까 전화했을 때 호텔 직원이 알려준 곳은 여기야. 내 집이랑 정말 가까운데?"

아저씨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 리셉션으로 가시더니 친절하게도 하루 숙박비부터 이것저것 직접 직원에게 꼼꼼하게 물어보신 다음, 내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니 이곳에서 묶어도 괜찮겠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외국인이라 더 비싸게 부르지는 않을까, 너무 후진 방으로 나를 안내하진 않을까 신경이 쓰이셨던 모양이다. 방은 어느 것 하나 낡아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숙소에 까다롭지 않은 내가 당분간 지내는 데는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다.

  배낭을 던져두고 나오니 아저씨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아저씨네 집으로 향했다. 골목에서 놀고 있던 한 무리의 아이들 틈에서 한 남자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아저씨 쪽으로 달려왔다. 아저씨가 만딩카어로 아이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이 아이는 내 막내아들 술레이만이라네. 아직 학교에 다니기 전이라 영어가 서툴러. 그나저나 자네 닭고기 좋아하나? 점심은 닭고기라는군."


  정말 호텔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아저씨 댁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바로 옆 건물을 가리키며 지금 감비아 대통령이 예전에 운영하던 회사가 있던 건물이라고 했다. 아저씨네 집은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단층 다세대 주택이었다. 마당에서 이웃 분들과 마주쳤는데 아저씨가 나를 가리키며 멀리 서 온 손님이라고 했더니 다들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다.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안이 어두침침했다.

"이런 또 정전인가? 미안하네. 요즘 세레쿤다에 정전이 잦아졌어. 여기 편한 자리로 앉게나."

아저씨는 평소에는 본인이 앉을법한 안락의자에 나를 앉히더니 자기는 소파에 앉았다. 방에서 아내분이 나오셔서 인사를 드렸다. 아주머니는 아저씨한테서 내가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된 얘기를 들으시고 잘 왔다고 반겨주시더니 널찍한 스테인리스 접시에 쌀밥과 양념된 닭고기를 한가득 담아서 가져다주셨다. 아저씨랑 둘이 먹기에도 정말 양이 많았다. 아주 맛있었다.

"음식이 입에 맞을지 걱정했는데 잘 먹는 걸 보니 다행이야."

"쌀밥에 닭고기는 한국 사람한테 아주 익숙한 조합인 걸요. 정말 맛있네요."

 

  밥을 먹으며 아저씨에게 간단히 지금까지의 여정과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그런 어설픈 내 서아프리카 여행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아저씨가 물었다.

"세네갈에서 바로 말리로 넘어가도 되는데 굳이 이 작은 감비아에 들르게 된 이유가 뭔가?"

"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릴 때 제 이모님 댁에 다양한 나라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있어서 그 집에 갈 때마다 재밌게 읽었었는데 그중에 한 권이 세네갈과 감비아에 대한 책이었어요. 그 책에서 제가 뭘 읽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질 않지만 그 책에 있던 사진 하나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감비아 바닷가에서 일하는 어부들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게 저에게는 너무 생경한 장면이라서 '아! 지구에는 이런 곳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하게 언젠가 직접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너무 꼬맹이 때 일이라 내내 잊고 있었는데 모로코에 있을 때 서아프리카 여행을 결심하고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그때 일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책 없이 감비아까지 와버렸네요."

"그것 참 대단한 이야기로군!"

  내 얘기에 감탄한 아저씨가 책에서 본 사진 속 정경이 어떠했는지 물으셨다. 그럭저럭 설명을 해드렸더니 아저씨는 감비아에 아름다운 해변이 정말 많지만 내가 보았던 사진과 가장 비슷한 곳을 찾아가 보고 싶으면 '산양(Sanyang)'이라는 곳에 꼭 가보라고 하셨다.


"내가 오후에는 일 때문에 가 볼 곳이 있어서 슬슬 나가봐야 하는데, 괜찮다면 오늘 저녁에도 들러주지 않겠나? 자네 여행 얘기가 궁금하구먼. 나도 기자 일을 하면서 이곳저곳 다녀보긴 했지만 자네만큼 멀리 떠나본 적은 없어서 말야."

  아저씨가 굳이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시고는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그런데 내가 아직 감비아 심카드를 못 사서 아저씨가 일을 마치신 뒤에 호텔로 전화를 하고 오시기로 했다. 방에 돌아오니 아침부터 국경을 넘고, 처음 와본 나라의 혼잡한 도시에서 한참을 헤매고, 비록 도움을 받긴 했지만 내내 낯선 사람들을 상대해서인지 아직 오후 4시가 채 안됐는데 벌써 피곤했다. 마른 먼지내가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세레쿤다 숙소 옥상에서

  서너 시간 정도 잠들어 있다가 침대에서 기어 나와 톰봉 아저씨를 기다렸다. 8시가 조금 넘어서 아저씨가 오셨다. 아저씨가 저녁은 간단히 먹는 편이라며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 가자고 했다. 아저씨 집 앞 큰길 건너편 간단한 식료품을 파는 한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감비아는 이런 구멍가게에서도 간단히 조리도구를 구비해두고 타파라파 샌드위치를 파는 모양이었다. 손님들이 앉아서 먹고 갈 수 있게, 만듦새는 조금 조잡하지만 서너 명이 앉기에는 충분해 보이는 나무 벤치가 가게 앞에 있었다. 신문지로 싼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아저씨는 찻잎과 설탕을 샀다.


  다시 찾은 아저씨 집은 가족들이 모두 돌아와 있었다. 아저씨 부부와 두 딸 그리고 낮에 길에서 만났던 술레이만까지 다섯 식구였다. 아저씨와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딸은 수줍음 탓인지 아니면 어른들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 이곳 예절에 어긋나는 것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와 내게 일절 말을 걸지 않고 저들끼리 키득키득 웃어가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섯 살 막내아들은 아저씨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어공부 어플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더듬더듬 따라 읽으며 놀았다.

  아저씨랑 아주머니에게 여행 얘기를 한참 늘어놓다가 너무 내 얘기만 하는 것 같아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쩌다가 스포츠 기자를 하시게 된 거예요?"

"원래는 스포츠 기자가 아니었다네. 90년대 초까지는 내내 정치 사회 기자였어."

"아 그럼 지난 20년 동안의 독재 때문에..."

"정확히는 22년이지."


  감비아는 공화국을 선포한 1970년부터 내내 독재자들의 장기집권과 부정부패가 심각한 나라였다. 특히 1994년 군 장교 야햐 자메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후로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엄혹한 독재가 이어졌다. 2016년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자메가 패배하며 드디어 독재의 마침표를 찍나 싶었지만 자메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군인들을 동원해 독재를 지속하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감비아 국민들의 큰 반발을 샀다. 급기야 자메가 2017년 1월 17일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서 위기가 고조되었으나 인접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자메의 퇴진을 촉구하며 무력개입도 불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자 결국 자메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망명하는 걸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이게 불과 1년 전이다.


  아저씨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기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네. 나 같은 기자들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경찰이나 군에 끌려가서 험한 꼴을 많이 당했어. 멀쩡히 살아서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었지. 나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고 무엇보다 두려웠어. 그래서 정치니 사회니 하는 것들은 싹 집어치우고 스포츠 취재 기자가 되었다네."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자메랑 그 패거리들이 22년 넘게 나라를 망치기만 했는데 아직 멀었지. 감비아는 이제 시작이나 다를 바 없어. 새 정부 자메가 저질렀던 나쁜 일들의 진상을 밝히고, 그가 몰래 빼돌린 돈을 찾아 환수하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돌아가는 건 별로 없다네. 오늘 봤다시피 전기조차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데 다른 건 멀쩡하겠나."

"그렇군요."

"반줄에 가면 강 하구에 커다란 배 한 척이 떠있을 걸세. 그게 감비아 수도의 주 발전소라네. 심지어 우리 것도 아냐."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터키가 보낸 발전선이야. 직접 보게 될 걸세."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늦은 것 같아 돌아가 보겠다고 했다. 아저씨가 밤엔 길이 어두우니 바래다주겠다고 또 따라 나오셨다. 골목에 들어서니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정말 발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더듬더듬 앞을 살펴가며 천천히 걷고 있는 내 옆으로 다른 사람들은 성큼성큼 신기하게 잘도 걸어 다녔다.

  아저씨 집과 호텔의 중간쯤 되는 모퉁이에서 아저씨와 조만간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저씨가 돌아서며 말했다.

"낮이고 저녁이고 상관없으니 배고프면 언제든지 집으로 찾아오게나. 내가 집에 없더라도 아내가 먹을 걸 내어줄 테니."

  각박한 서울살이에 익숙한 나는 아저씨의 환대와 마음 씀씀이를 무척이나 감사하고 따뜻하게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아저씨 집에 찾아가 대뜸 '안녕하세요? 뭐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하는 일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고 미적지근하게 생각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리셉션에서 맥주를 한 병 사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바깥 층계참에 앉아 마셨다. 정전이 잦고 가로등이 부족한 세레쿤다의 밤은 비록 도시 답지않게 너무 어두웠지만 그 덕에 밤하늘이 아주 잘 보였다. 달이 선명했다. 잡생각이나 무상한 감상에 빠질라치면 모기가 나타나서 적절히 방해를 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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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에서 만난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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