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보다 빛나는 루앙프라방의 작은 별
라오스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루앙프라방은 여행으로, 일로, 봉사활동으로 수십 번 드나든 도시다. 좋아하는 곳도 많은 익숙한 도시지만 일행들이 떠나고 홀로 남자 쓸쓸했다. 특별히 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없던 저녁. 그렇다고 마지막 밤을 숙소에 앉아 보내기엔 아까워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정처 없이 산책을 하려다 생각난 곳이 있어 들러 보기로 했다. 반짝이는 야시장을 지나 조금 한적한 거리에 이르면 곧 만날 수 있는 곳. 빅 브라더 마우스 Big Brother Mouse다.
매일 저녁 5시 넘어 이곳을 지나면 휘황찬란한 야시장보다 더 빛나는 작은 공간을 볼 수 있다. 채 10평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로 가득 찬다. 좁은 길가에도 플라스틱 의자를 두고 빼곡하게 둘러앉아 노트와 펜을 쥐고 대화하기 바쁘다. 그리고 그 젊은 라오스인들 사이사이엔 다양한 국적과 나이, 성별이 어우러진 여행객들이 있다. 라오스인들은 매일 아침 9시와 저녁 5시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여기저기서 온 여행객들은 시간에 맞춰 이곳을 찾아 영어를 가르쳐 준다.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프리토킹을 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합을 맞춘 경우에는 꽤 수준 높은 강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이야 대체로 일정이 짧아 이런 곳에 들를 기회도 적다. 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여행을 길게 하기도 하고 은퇴 후 정착한 사람들도 많다. 여행의 막바지에 여기가 떠오르게 된 이유도 그 전날 식당에서 만나 대화하게 된 한 벨기에 사람 때문이었다. 은퇴 후 루앙프라방에 정착했다는 그는 매일 사찰에서 스님들께 영어 교육 봉사를 하고, 저녁에 시간이 되면 이곳에 들른다며 추천했기 때문이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녹아들 수 있을까 걱정하며 그곳에 도착했을 때 운영자가 두 팔 벌려 맞아줬다. 왜 왔냐는 질문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듯 곧장 빈자리로 이끌었다. 방금 막 이야기가 시작된 테이블에서 한 외국인이 마침 잘 됐다며, 인원이 많아 버거웠으니 나눠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렇게 내 앞에 앉은 둘을 마주하니 둘 다 주황색의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었다. 너무도 앳된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던 둘. 라오스에서 스님들의 지위를 알기에 정중히 합장하며 라오어로 인사하고 서로 소개를 나눴다. 열다섯, 열여섯 고등학생 나이인 스님들은 의욕이 넘치셨다. 실력에 비해 의욕이 앞선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렇기에 아마도 빨리 실력이 느시겠지 싶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한 시간의 프리토킹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나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데 잘 받아줄 수 있을까 하던 걱정은 기우였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요즘의 고민은 무엇인지, 앞으로 계획은 어떤지 충분히 나누기에 부족한 시간이었다. 국적과 나이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지만 사람 사는 것은 생각보다 비슷했다. 스님들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어려움들을 느끼셨고, 미래와 진로에 대한 불안 또한 매한가지였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파하는데 인증샷을 찍자고 하시더니 당신들이 계시는 절에 가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늦은 밤 절에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닌가 싶었는데 구경시켜 주신다며 앞장서셨다. 루앙프라방의 저녁은 조용해서 길가에 위치한 담장이 낮은 사찰도 고즈넉하기 그지없었다. 법당에 들어가 이런저런 안내를 해주시곤 법당 앞 테이블에 앉아서 숙제를 시작하셨다. 어디나 학생들의 삶은 다 비슷한 모양새. 법당 앞에 앉아 하늘의 별을 보자니 이보다 좋은 마무리는 없었겠다 싶었다. 스님들은 홀로 여행의 끝을 잡고 있는 내게 SNS 친구 제안을 하셨다. 빅 브라더 마우스에 오지 않으셨고 영어를 못하시는 다른 스님께서도 냉큼 친구 신청을 하셨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 스님 친구가 생겼다.
귀국 직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혀 꼭 놀러오라시던 행사에 찾아가진 못했지만 여전히 SNS를 통해서나마 서로 좋아요 눌러주며 친구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여행객이 없어 영어공부가 힘드셨을 텐데, 조만간 하늘길이 열리면 다시 만나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