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inking of ending things (주관적 해석)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나는 완전한 집순이가 되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다. 하루라도 밖에 나가서 걷지 않으면 좀이 쑤셔 미칠 것만 같았는데 이젠 누가 등 떠밀어도 나가기가 영 귀찮다. 집에만 있어도 볼거리가 넘쳐나는 탓도 크다. 가끔씩 너무 많은 콘텐츠 때문에 구경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보는 불상사가 발생하긴 하지만, 한 번 각 잡고 보기 시작하면 어느덧 해가 져 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들락날락하다가, 4일 개봉한 따끈한 신작에 정착했다.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감독의 영화인데, 전작을 찾아보니 개성이 독특한 감독이었다. 게다가 이번 신작의 평점은 나를 더 궁금하게 했다. "앞 20분에서 이미 꺼버렸다" "내 아까운 금요일 밤을 다 날렸다" 등등... 날이 잔뜩 선 평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평이 너무 안 좋으면 오히려 더 보고 싶은 법이다.
*아래부터 '스포' 내용 포함
이야기는 일단 한 줄로 '요약은' 가능하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여자의 이야기. 쓰면서도 놀랐다. 이렇게 난해한 영화가 한 문장으로 딱 떨어지게 줄여지다니. 남자 친구의 차에 타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독백하는 여자가 나온다. 자연스레 여자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여자와 남자는 시에 대해 토론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와중 여자는 남자 입가의 버짐을 바라보거나, '이제 그만 이 남자와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이 얘기를 내가 왜 집중하고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드디어! 남자 친구의 집에 도착한다. 눈이 잔뜩 내린 시골집에서, 남자 친구는 추워 죽겠는데 바로 들어가지 않고 농장의 돼지 떼를 보여준다.
헌데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주요 줄기라면, 가끔 학교에서 일하는 백발이 성한 노인의 이야기도 끼어든다. 뭔진 모르겠는데 학교에서 청소를 하고, 여고생들의 놀림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도 남의 눈을 엄청나게 의식하는...어딘가 우울하고 세상에서 잔뜩 소외된 분위기의 노인이다. '이 노인은 혹시 남친의 늙은 모습일까... 혹시 이 노인의 머릿속 세계일까?' 아직 결론 내리기엔 영화가 너무 초반부다.
'산 채로 반쯤 구더기에 먹혀서 죽었다'는 돼지 두 마리의 시체를 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와 여자. 부모님은 한참 뒤에 내려오고, 넷은 함께 차려진 음식을 먹는데 어딘가 묘한 기류가 흐른다. 여자는 남친의 부모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부모는 남자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하고, 그런 도중에 여자의 휴대폰으로 에이미, 루시 등 다양한 이름의 전화가 걸려 온다. 휴대폰은 아이폰이지만, 벨소리는 무슨 고릿적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띠리링! 소리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름 단서일지도. 요즘 젊은이들 중 누가 띠리리리리링 하는 벨소리를 쓰나.) 이쯤 되니, 이 영화가 왜 공포로 분류됐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앞뒤가 묘하게 안 맞는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불길한 공포가 느껴진다. 마치 친절한 웃음으로 다가온 누군가와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근데 혹시 간이 안 좋진 않으신가요...?' 라며 종교 얘기를 꺼낼 때 느끼는...그런 불쾌한 공포다.
'아, 저 여자의 정신착란 상태를 보여주는 건가?' '치매 걸린 사람의 정신세계인가...?' 생각이 다다를 때쯤 갑자기 1층 거실에서 모두가 사라지고, 여자는 그들을 찾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간다. 위층에서 마주하는 남친의 부모들은 어쩔 땐 굉장히 젊고, 또 어쩔 땐 백발의 노인이다. 가끔 나타나는 강아지 지미, 직접 쓰다듬기도 했건만 남친의 방에서 유골함도 발견한다. 시간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고, 여태까지 나눈 대화들에 나온 소품이 중간중간 배치된 걸 보자 이제 앞서 한 생각이 슬슬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여자는 점점 불안감을 느끼고 남친에게 얼른 돌아가자 재촉해 결국 차를 타는 데 성공한다. 남자는 또 눈이 가득한 길을 가다 말고 '털시 타운'이라는 아이스크림 집에 들르자고 말한다. 추워 죽겠는데 아이스크림은 무슨... 하면서 갔더니만 웬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 나올법한 여자 둘이 짓궂게 남자를 바라본다. 손에 발진이 가득한 여자는 무언가 경고를 외친다.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남자는 갑자기 또 아이스크림 용기를 버리고 싶다며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향한다. 미칠 노릇이다. 결국 학교에 간 남자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여자는 남자를 찾아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앞에 나온 노인과 실제로 마주하는 여자. 여자는 노인을 한번 안아주는데... 또 이 장면에선 남자와 여자의 발레로 모든 것이 표현된다. 사랑하고 결혼하는 듯 보이는 여자와 남자, 그러나 도중에 늙은 노인이 둘 사이를 방해하는듯한 발레 씬이 이어지고...발레 속에서 젊은 남자가 죽는 걸로 끝이 난다.
이후부터는 노인의 이야기다. 노인은 차에 탔다가 돌연 털시 타운의 흑백 애니메이션 광고부터, 돼지를 본다. 그러더니 돼지를 따라 다시 학교 안을 알몸인 채 터벅터벅 걸어간다.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긴 한데, 저 돼지가 아까 농장에서 죽은 돼지인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남자의 뮤지컬 무대다. 여태까지 봤던 모든 인물들이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주름살 분장을 한 채 앉아 무대에 집중한다. 남자의 웅장한 노래가 이어지고, 그 노래가 끝나고 모두에게 박수를 받는 남자에서... 이 길고도 난해한 영화는 끝이 난다. '뭐야 이게 끝이야?' 싶다.
*주관적 해석
내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한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남자(남친)=노인이고, 노인의 다양한 인격체가 반영된 환상이 담긴 거라고 나름의 결론을 지었다. 자꾸 이름이 루시, 루치아, 에이미로 바뀌는 여자는 남자가 설정한 이상화된 여성이자 새로운 인격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뮤지컬 장면은, 이제 그만 (삶을) 끝내려 한다는 웅장한 고백으로 느껴졌다. 돼지를 따라 알몸으로 걷는 것 또한 늙고 추레해진 자신의 모습이 결국 '소외'된 채 산 채로 구더기에 파 먹힌 돼지와 같다는 이야기 같았다.
내 주관적인 해석으로 보면, 늙은 노인의 다중인격 혹은 알츠하이머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이제 그만 끝낸다는 제목은, 여자가 남자와의 관계를 끝낸다는 게 아니라, 노인이 이제 그만 산 채로 소외받는 삶을 끝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관.적. 해석이다)
최근 본 영화 중에 이렇게 길게 글을 쓴 게 있었던가. 이만큼 썼다는 건 그만큼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뜻일 테다. 사실 주말에 팝콘 먹으며 재밌게 볼 영화는 '절대' 아니다. 집중력이 100% 풀 충전됐을 때나 완주가 가능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이유는 일단 '호기심'을 끈다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다. 하지만 출중한 연기는 어디까지나 좋은 대본이 있어야 빛을 발한다. 고로 내 생각은, 이 감독이 직접 각색에 참여했다는 대본 자체도 굉장히 매력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작 소설도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고.
또 하나, '생각하는 재미'가 있다. 팝콘 무비와 짧은 유튜브 영상들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오랜만에 이리저리 뇌를 굴릴 수 있는 영화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에도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영화가 진짜 좋은 영화라면, 이 영화는 만점이다. 불길하면서도 찜찜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던 참 복합적인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