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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Mar 08. 202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좋은 영화는 언제 어느 때 봐도 좋다 

넷플릭스에 드디어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들이 올라오면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업데이트됐다. 아마 내가 30년 남짓 살면서 제일 많이 본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개봉 당시 경주의 작은 영화관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좋아하던 사촌오빠가 친구들과 함께 간다며 들떠 있는데, 내가 같이 가겠다며 생떼를 써 따라가 본 영화였다. 


세상에 기발하고 재밌는 영화는 많지만, 언제 봐도 좋은 영화는 드물다. 언제 어떤 나이이든 나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영화. 나에게 이 영화가 그렇다. 내가 치히로 만한 꼬마였을 땐 영화를 다 보고 펑펑 울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정을 주고받았던 가마 할아범, 린 언니, 그리고 하쿠와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고 난 후 몇 날 며칠을 혼자 아련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고 다시 보니 치히로 참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 나이 때 걸스카우트 캠핑을 가서도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는데,  치히로는 요괴 세상 속 유일한 인간, 나 홀로 이방인이라는 외로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모든 걸 해결해낸다. 물론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도와준 것도 크겠지만, 결정적으로 유바바에게 일을 따낸 것도, 다친 하쿠를 살려낸 것도 모두 치히로의 몫이었다. 





돼지가 된 엄마 아빠를 살리기 위해 치히로는 고군분투한다. 린 언니를 따라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데, 처음에는 서툴기만 하다. 자신을 도와준 가마 할아범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할 줄 몰라 린 언니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하고, 어리바리한 행동 때문에 주변의 걱정을 산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를 구해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치히로는 용기를 낸다. 보기만 해도 오금 저린 유바바 앞에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온갖 차별적인 시선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낸다. 



치히로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갓 사회초년생으로 발을 내디뎠던, 뭘 해도 어리바리했던 그 시절, 퇴근할 때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다가 된통 욕을 먹었던 기억, 몇십 부나 되는 대본을 모르고 이면지에 덮어 프린트해 온 사무실이 종이로 가득 찼던 기억, 출연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것도 식은땀이 줄줄 흘러 어버버 거렸던 기억들... 


학생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인'이라는 무거운 추를 달고 나 혼자 인정받아야 하는 세계. 그 세계에서 어리바리 바둥거리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아가고 조금 더 단단해져 가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중하다. 그때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가마 할아범과 린, 하쿠처럼 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도 배울 것이 있었다. 



치히로는 몇 번의 시련을 거쳐, 마지막으로 하쿠를 구해내고 진짜 이름을 되찾아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선택하는 치히로의 모습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희생이라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어떻게든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으며, 받은 만큼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 속에서 나를 지키려면 나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치히로의 모습이 더욱 반짝인다. 자그마한 몸집의 아이지만 생각과 행동에 중심이 잡혀 있어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세상 살기 팍팍하다는 이유로 내 신념을 포기하진 않았는지, 내가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주진 않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 희생할 준비가 되었는지. 



영화 초반부만 해도 시골 마을로 이사 간다는 생각에 뾰로통한 철부지 꼬마 아이였던 치히로. 모험을 하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용기내고, 선의를 베풀며 훌쩍 크는 그녀의 모습이 18년이 지난, 내가 서른이 된 지금도 설레고 벅차다. 아마 이 영화는 내가 오십이 되어서도, 육십이 되어서도 언제고 가슴을 울리는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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